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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무개 Sep 20. 2023

회계의 ㅎ도 모르는데 수익률을 산정하라니

이사님도 못하면 전 누구에게 도움을 받죠

 어떤 재활용쓰레기라도 가져갈 수 있는 업무를 맡게 된 것은 다행일 수 있다. 재활용도 안되는 매립/소각만이 답인 쓰레기를 결과물로 가져가야 했을 땐, 쓰레기는 쓰레기가 되기 전 쓰임을 당하고 소임을 다했다는 부러움마저 들었다. 상무가 내게 주니어에게 통상 시키는 일로 짜증을 냈다면, 전무는 최소 대리는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을 요구했다. 투자의 수익률을 산정하는 일이었다. 물론 그 당시 인원이 충원되며 내 위에 있게 된 팀장과 이사 선에서 커버 가능한 일이여야 했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관련 업무 경험이 없고 숫자에 밝지 못했다. 


 즉, 나와 마찬가지로 수익률에 대한 개념 하나 바르게 서있지 않았다는 말이다. 수익률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투자과정에 들어가는 수익과 비용 각 항목에 대한 이해와 구체적 숫자에 대한 감이 있어야 했다. 회계를 알아야 했고, 최소 1회라도 투자 사이클을 겪어본 실무 경험이 있다면 더 좋았다. 해당자산을 개발하여 운영까지 할 것인지, 이미 지어져있는 자산을 매입하여 운영하는 것인지 투자구조에 대한 이해 또한 필수였다. 특히 전자의 경우 개발사업비까지 검토해야 했는데, 이는 다시 공사원가, 공사성경비, 토지비, 설계인허가비, 분양경비, 제세공과 및 기타, 판매관리비, 금융비 등의 큰 분류에서 세부 분류로 또 나뉘게 된다. 

 

 문제는, 전무는 이 모든 항목에 대한 법령근거 및 시세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직접 숫자를 넣고 가져오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당장 공사성경비의 한 항목에 해당하는 미술장식품설치비 하나만 봐도, <미술장식품설치에 관한 법률>을 검색해본다면, 주거와 상가의 계산식이 다르고, 또 어느 법령이나 그렇듯 예외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산운용사도 어떤 투자를 하는지와 윗선의 성향에 따라 재무모델을 돌리는 정도가 다르다. 세부사항은 우리가 이름을 들어본 회계법인에 맡기고 정말 개략적인 숫자만 넣어 소위 말하는 간단수익률만 산정하는 곳도 많았다. 


 난 윗선이 요구하는 수준의 업무를 하며 밤을 새도 내 능력치 밖의 일은 할 수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밤을 새도 결과물을 낼 수 없는 나와 주임에게 투자자에게 보고할 숫자를 요구하는 윗선 중 누가 더 답이 없는지 답을 낼 수 없어 주위에 문의한 결과, 연습용으로 재무모델을 돌려보라고 하는 곳은 있어도 그 어느 곳도 주임에게 쓸만한 숫자를 요구하는 곳은 없었다. 내 전 팀을 생각해도 그랬다. 차장과 팀장이 투자 전이나 투자 과정에서 모델을 돌렸고, 예상수익률을 보고했다. 한 번도 내게 숫자의 책임을 지운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와 함께 페어로 일했던 이사는 나만큼이나 숫자를 몰랐고, 내가 교수님께 똥을 던지는 심정으로 제출하는 대학생들의 에세이 수준의 결과물을 자신에게 공유하면 그걸 그대로 상무에게 포워드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위의 과정이 가혹하긴 해도 때때로 빡센 윗선을 만나면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성장의 지름길이라고 말할 이들을 안다. 그러나 난 이들이 그런 건설적인 이유로 일을 시키지 않았음을 안다. 전무가 내게 안되는 일을 요구했던 이유는, 아무것도 모르는 본인도 눈칫밥 먹고 맞아가며 어떻게든 해내야 했던 억울함을 답습하기 위함이며, 내가 본인이 뽑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자가 추측이라면 후자는 사실인 것이, 본인들이 뽑은 인턴에게는 나에게 요구한 정도의 수준을 단 한번도 요구한 적이 없으며, 실제로 전무가 내게 권고사직을 논하는 순간에 직접적으로 물어봤기 때문이다. 내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그에게 왜 같은 직급인 주임에게 같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는지 물었을 때, "너는 우리가 뽑지 않았으니까"라고 말한 그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지를 나는 똑똑히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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