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의 주인이 아닌데요
부동산 팀의 주니어로서 가장 많이 하는 업무 중 하나는 입지분석이었다. 예를 들면 시청의 오피스빌딩, 이천의 물류센터, 왕십리의 학생 기숙사라면 배후에 어떤 인프라가 존재하고, 유동인구가 얼마나 되며, 주변에 있는 기자산에 비해 신축으로서 적정 임대료가 얼마인지 산정해 투자 자료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나는 생초보로서 입지분석에 위의 흐름이 적용되는 것조차 몰랐다. 차라리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이런 것들을 자연스레 익힌 부모님이 내 자리에 대신 앉아있는 것이 더 효율적일 판이었다. 물론 일전에 들었던 수업에서 해봤던 일이지만, 실전은 별개였다. 막연히 주변의 임대료를 조사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그 과정에도 논리와 경험이 필요했다. 도로 하나를 두고도 접근성과 주변 인프라가 갈릴 수 있었고, 30년 전에 지어진 아파트는 준공년도가 너무 오래됨에 따라 비교사례에 포함되기 부적절했다. 글으로 읽었을 땐 당연한 사항들이지만 실제로 조사를 시작하면 '짬에서 오는 바이브'가 필요한 부분들이었다.
조사를 해갈 때마다 왜 무쓸모한 정보인지 신랄하게 비판(혹은 비난)하는 상무를 보며 어쩜 무쓸모의 원인도 이렇게 가지각색일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신입때는 혼나면서 배우는게 일이라고 하지만, 본인의 말을 스스로 번복할 때는 일을 위해 혼나는 것인지 그저 내게 화를 풀고 싶어서 혼을 내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왕십리에 들어설 오피스 임대료 산정에 필요한 기자산 정보가 적으니 을지로를 조사해보라는 그의 말에 의아함이 들어 다시 한 번 확인을 했을 때, 그는 그럼 비교사례가 없는데 어떡하냐며 짜증을 냈다. 그리고 실제로 을지로 사례를 조사해갔을 때, 왕십리와 을지로를 비교하는 게 상식적인 일이냐며 다시 짜증을 냈다. 자기 얼굴에 침뱉기를 하는 그의 면전에서 웃지 않아 다행이었다.
말의 끝엔 항상 내가 직접 투자하는 건이었다고 해도 이렇게 조사할 것인지, 스스로를 투자자라 생각하고 조사에 임할 것을 요구했다. 그럴 때마다 0.1초안에 반박할 문장들이 뇌의 제어를 벗어나 입으로 새어나오지 않게 제어해야 했다. 최소 100억 단위로 투자를 하는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업무의 투자자라고 생각하라니. 소위 노예로 불리는 회사 근무자에게 회사의 주인처럼 일하라는 말을 하려면 최소 주인이 버는 돈만큼 주고 말하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 것은 퇴사준비를 하며 연차휴무에 대한 법령을 찾아 헤매게 되었을 때다. 본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면 어떤 무논리라도 진실로 여기는 인사팀 과장에 내 권리를 요구하려면 내가 정확히 아는 수밖에 없었다. 미사용연차휴무는 퇴사 시 수당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법에도 우리 회사는 그렇지 않다며 법 위에 회사 있음을 논파하는 그녀였다. 인사팀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니 (법을 어겨서라도 비용 절감을 하는 것이 본인의 업무라고 생각했다면 예외다) 인터넷을 뒤져 블로그 100개를 살피고, 그 100개의 내용이 다르거나 확실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실제 노무사에게 질의를 하기도 했다.
확실할 때까지 파고들며 법령을 파고들었고, 이렇게 변호사를 준비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며, 상무가 했던 본인의 일처럼 생각하라는 말이 이해가 됐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나는 100억이 통장에 없고, 실제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그의 1/10,000도 되지 않는 연차수당을 주기 싫어 버티는 과장의 무논리에 화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다시 한 번 확인 부탁드린다며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야 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