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예상치 못한 일행과 일정

by 박종호

험난했던 로마행 – '로마가 이렇게 멀다고?'

피렌체에서 로마까지는 생각보다 가까운 듯하면서도 먼 거리였다. 지도상으로는 별로 멀지 않아 보였고, 기차로는 1시간 반이면 도착한다고 했다. 반면 버스는 4시간이 걸렸지만 가격은 절반 수준. 고민 끝에 나는 기차를 선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시간 절약. 여행 초반이었고, 체력도 남아 있었기에 ‘빠르게 도착해서 더 많은 것을 보자’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인생은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도착 예정 시간이 가까워졌을 무렵, 기차 전광판에 ‘Delay’라는 빨간 글씨가 떴다. 처음엔 30분. 그러다 1시간. 다시 1시간 반. 그렇게 지연은 2시간을 넘어섰고, 나는 그 긴 시간 동안 기에 앉아 있었다. 처음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다음엔 책을 폈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게 됐다.

신기했던 건, 그 공간에 있던 유럽인들의 반응이었다. 한국 같았으면 여기저기서 항의가 터져 나왔을 상황이지만, 그들은 대체로 조용했다. 어떤 이는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어떤 이는 아이와 놀아주고 있었다. 아무도 짜증내지 않았다. 처음엔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자 나도 점점 그 분위기에 스며들었다. ‘그래, 여행 중엔 이런 일도 있는 거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내려놓게 됐다. 그리고 결국 4시간 뒤, 기차는 느릿하게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원래는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근처 레스토랑에서 와인 한 잔을 곁들인 식사를 하려 했지만, 그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결국은 숙소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히 샌드위치와 음료를 사서 방 안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피곤하고 허탈했지만, 이상하게도 속상하진 않았다. 차라리 하나의 사건, 하나의 에피소드가 된 것 같아 나중에 떠올렸을 때 더 기억에 남을 듯한 하루였다. '럭키 비키'자나를 외칠 수 있었던 내 성격에 조금은 감사했다.

‘유럽 기차가 다 그렇지 뭐’라는 말이 이렇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지만, 덕분에 책 한 챕터 분량이 생겼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겠지.

KakaoTalk_20250720_234509695_03.jpg 115분에서 140까지 딜레이가 길어졌다. 처음보는 딜레이 숫자였다.


다시 찾은 로마, 그때보다도 더 따뜻했다

로마는 내게 두 번째 방문이었다. 예전에도 한 번 다녀간 도시였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이미 본 풍경을 또 본다는 건 설렘보다는 익숙함을 먼저 떠올리게 하니까. 그럼에도 로마를 일정에 넣은 이유는 간단했다. 이탈리아 여행의 최종 목표였던 아말피 해변 투어가 로마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지도로 보면 좀 더 남부 도시에서 출발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인을 위한 세미 패키지 투어는 오직 로마에서만 가능했다. 그래서 계획을 바꿔 로마에서 3박을 머무르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 로마를 여행한 시간은 단 하루에 불과했다. 첫날은 기차 딜레이로 밤 늦게 도착했고, 둘째 날은 아말피와 폼페이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시간순으로 따지자면 아말피 이야기부터 해야겠지만, 이건 나의 에세이이고 나의 여행기이니, 마음 가는 대로 로마의 기억을 먼저 꺼내본다.

이번 로마 여행은 특별하게도 사람들과 함께였다. 아말피 투어에서 우연히 알게 된 동행자와 함께 하루 동안 로마 시내를 돌았다.

먼저 아말피 투어 이후 3명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로마 구경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로마역에서 로마의 밤 투어를 시작했다. 먼저 알아본 근처의 파스타 맛집에 갔다. 뭐 맛이 특별하다고 생각은 안 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셋이서 다니니 알아볼 것도 적고, 무엇보다도 안심이 됐다. 혼자 다닐 때는 사기 당할까 봐, 강도한테 당할까 봐 등 다양한 걱정을 하면서 다녔다. 하지만 셋이 다니니 그런 걱정에서는 자유로웠다. 또, 같이 음식을 시키고 나눠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과 그렇게 밥을 먹고 같이 다닌다는 것을 상상도 못 하는데 외국이니 가능했던 것 같다. 저녁 후에는 콜로세움 야경을 바탕으로 사진을 찍었다. 멋진 구도, 예쁜 풍경, 좋은 사람들과 함께 완벽한 저녁을 보냈다. 사진 찍은 후 우리는 각자 숙소로 흩어졌다.


IMG_0283.HEIC 콜로세움 야경!

원래 로마를 깊게 둘러볼 계획은 없었지만, 동행했던 분 중 한 분의 제안에 자연스레 로마 투어를 이어갔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인연이다. 나처럼 내성적인 사람이 낯선 이와 단번에 어울리게 된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 이게 아마도 혼자 여행의 묘미일 것이다. 낯선 곳에서는 낯선 인연마저도 반갑고 특별하게 느껴지니까.

우리는 아침부터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어렸을 때 봤을 땐 그냥 돌무더기처럼 느껴졌던 그곳이, 이번에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시간이 흘러 내가 조금은 자란 덕일까. 눈앞에 선 거대한 원형경기장을 보며 ‘이걸 수천 년 전에 만들었다고?’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고대 로마인들의 기술과 상상력은 정말이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사람은 참 위대한 존재다.

콜로세움을 나와서는 시내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길 위에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거리에는 다양한 언어들이 섞여 들려왔다. 판테온 앞에 섰을 때, 그리고 조국의 제단 앞에 섰을 때, 동행자가 연신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혼자 다닐 땐 거의 찍지 않던 사진을 그날만큼은 유난히 많이 찍었다. 덕분에 이탈리아 여행 전체 중 로마에서 찍은 사진이 가장 많았다. 덕분에 좋은 사진을 많이 남겼고, 자랑할 사진들도 많이 남겼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하기도 했다.

점심은 트라야누스 시장 근처에서 이탈리아 현지 음식을 먹었다. 사실 맛은 평범했다. 인상적인 음식은 아니었지만, 대화는 꽤 맛있었다.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낯선 도시에 대한 인상을 공유하는 그 시간은 음식 맛 이상의 기억으로 남았다. 따뜻한 햇살과 유쾌한 동행자, 그렇게 로마는 다시 내게 따뜻한 도시로 자리 잡았다. 예전보다 더 따뜻했다.

KakaoTalk_20250720_234509695_01.jpg 콜로세움 내부에서 찰칵!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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