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지키면서도 나를 잃지 않는 법

by 가오가이

서른아홉, 잃어버린 ‘나’를 되찾기 위한 아주 작은 반란

어느덧 서른아홉. 퇴근길, 숨 막히는 2호선 지하철 창문에 비친 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많아졌습니다. 잔뜩 피곤에 절어 미간을 찌푸린, 낯선 중년의 남자가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김대리님’, ‘팀장님’,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여보’, ‘아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불리는 내 이름들 속에서, 정작 ‘나’ 자신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날들이었습니다.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 매달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월급과 아파트 대출금, 두 아이의 학원비 고지서는 어깨를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였습니다.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깊어만 갔습니다. 이 길이 맞을까, 5년 뒤, 10년 뒤 나는 어떤 모습일까.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가장이라는 책임감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텨냈습니다. 가족들의 웃음소리는 제게 가장 큰 행복이자 위안이었지만, 문득문득 공허함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모두를 위해 살고 있는데, 왜 나는 점점 희미해져 가는 걸까. 늦은 밤, 모두가 잠든 거실 소파에 홀로 앉아 무의미하게 TV 채널을 돌리던 그런 밤들이었습니다.


“아빠는 뭐가 제일 좋아?” 다섯 살 아들의 한마디

변화는 아주 사소한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그날도 야근으로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와 겨우 아이의 잠자리를 봐주고 있었습니다. 스르르 잠이 들 줄 알았던 아들이 제 눈을 말똥말똥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아빠, 아빠는 뭐가 제일 좋아?”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졌습니다. 당연히 “우리 아들!” 혹은 “우리 가족이랑 함께 있는 거”라는 모범 답안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럴까? 물론 가족은 제 삶의 전부이자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대답은 ‘아빠’로서의 대답이지, 온전한 ‘나’의 대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한참을 우물쭈물하는 제게 아들은 “나는 공룡이랑 자동차가 제일 좋은데!”라며 해맑게 웃고는 이내 잠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던 사람이었을까. 대학 시절, 낡은 통기타를 붙잡고 밤새 노래 부르던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유 없이 친구들과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걷는 것을 좋아했고, 주말 내내 쿰쿰한 냄새가 나는 소파에 누워 90년대 홍콩 영화를 몰아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 모든 ‘나’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가족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나 자신의 즐거움과 욕구를 스스로 봉인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날 밤, 저는 처음으로 ‘나’라는 사람의 안부를 진지하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아빠의 행복이 가족의 행복이 되는 순간

며칠을 고민하다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여보, 나 요즘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냥… 아빠랑 남편 역할만 남은 것 같아.” 괜한 소리를 했나, 아내가 서운해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아내는 의외로 담담한 표정으로 제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그랬구나. 당신 혼자 많이 힘들었겠네. 당신도 당신만의 시간이 필요하지. 당신이 즐거워야 우리도 즐거운 거야.”


아내의 따뜻한 한마디는 굳게 닫혀있던 제 마음에 용기를 주었습니다.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나를 되찾는 것’이 가족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길일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때부터 제 삶에 작은 반란, 아니 ‘나를 위한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잃어버린 나를 되찾는 아주 사소한 방법들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되찾는 방법들은 사실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작은 틈을 만들어 나를 다시 채워 넣는 연습이었죠. 아래는 제가 직접 실천해 본 작은 방법들입니다.


먼저, 하루 30분 ‘나를 위한 시간’을 예약했습니다. 퇴근 후 혹은 잠들기 전, 방해받지 않는 짧은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하는 거예요. 스마트폰은 멀리 두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짧은 글을 읽거나, 그저 창밖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중요한 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니라,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순간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내는 30분은 소진된 감정을 회복시키고, 복잡했던 생각을 정리하는 작은 쉼표가 되어주었습니다.


또 하나는 잊고 있던 나의 조각들을 맞추는 일입니다. 어느 날, 먼지 쌓인 창고에서 15년 만에 기타를 꺼내 줄을 갈았는데, 손가락은 굳어 예전처럼 코드를 잡을 수 없었지만 둔탁한 소리만으로도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좋아했던 영화 감독의 작품을 다시 찾아보거나, 학창 시절 즐겨 듣던 앨범을 정주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죠. 이런 순간들을 통해 잊고 있던 취향과 열정을 발견하면서 삶이 다시 생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족 안에서 ‘나’로 존재하기를 시도했습니다. 주말에 아이와 제가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을 보고, 차 안에서는 아내가 즐겨 듣던 팝송 대신 제가 좋아하는 밴드 음악을 틀어보았습니다. 처음엔 가족들이 낯설어했지만, 이제는 아이가 먼저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네!” 하고 말해줍니다. 그럴 때 단순히 ‘아빠’라는 역할을 넘어, 나라는 한 사람의 취향과 개성을 존중받는 기분이 들어 참 따뜻했습니다.


이 작은 실천들은 대단한 변화처럼 보이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길을 잃었다고 느꼈던 시간을 지나 다시 나를 찾게 해주는 소중한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오늘 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문득 생각해봅니다. 훗날 아이가 자라 자신의 길 위에서 방황할 때, 저는 어떤 아빠로 기억될까요. 모든 것을 희생한 아빠가 아닌,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가족과 함께 행복을 가꾸어 나간 아빠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혹시 당신도 잊고 있던 이름이 있지는 않으신가요? 오늘 밤,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봐 주세요. “가족 말고, 당신은 지금 무엇이 제일 좋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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