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파도가 이제 시작이라는 세상에게
2번째 하향인 곳을 떨어졌다. 국립이라서 아무리 하향이라도 붙게 해달라고 빌고 있는데 엄마가 옆에서 대놓고 말했다. "너 지금 거기 붙게 해달라고 빌고 있는 거니? 줄 서면 들어가는 국립대야." 그렇게 생각했다. 결과를 보기 전까지 말이다. 불합격이 뜨고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게 너보다 열심히 공부한 애들을 이길 거라고 바라면 도둑놈이지 안 그래?" 엄마가 말이나 못 했으면...... 가끔 가족이 남보다 더 멀다고 느껴지는 때가 이런 때이다. 아빠는 하향인 이곳이 대기가 떴으니까 다른 상향인 곳들은 접어야겠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겼고, 오늘 나는 과외를 집어치웠다. 내 속을 알리 없는 동생은 평소와 같이 노래를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렸다. 참으려고 했는데 동생 앞에서 울 수도 없었고 동생에게 "언니가 대학 떨어져서 기분이 나쁘니까 조용히 해줘."라고 말하기도 쪽팔렸다. 엄마한테는 오늘의 멘탈을 회복해서 보강하겠다고 했다. 역시 노력한 시간에는 내가 우울했던 시간과 약을 먹었던 시간과 자살시도를 했던 시간과 아파했던 시간은 포함되지 않는다. 나는 이기적 이게도 그 시간들까지 쳐주기를 바랐다.
이래서 내 진짜 꿈인 작가를 위해서 생계업 꿈에 도달할 수 있을까. 돈을 그만큼 언제 모을 수 있을까. 자꾸만 멀어지는 것 같다. 점을 봐주신 분이 맞았다. 뿌리내린 나무에 도끼가 날아들어 뿌리내리는 족족 베어버리는 구도. 그 도끼는 아마도 내가 과거에 날린 도끼들인 것 같다. 나의 과오임에 분명하다. 며칠 전에 정신과 약을 끊고 싶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복용량을 줄였다. 행복한 마음으로 이제는 혼자 버티는 훈련을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 잠시 큰 고비가 왔다.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처럼 몸이 굳고 위축되어 버렸다. 내가 바랬던 건 내 지인들과 주변에 쪽팔리지 않을 만한 대학 간판 하나였다. 수도권과 지역 상위 국립대도 바라지 않았다. 역시 생기부에 마지막 학년에 내 진짜 꿈으로 도배한 것이 죄라면 죄다. 일관성 있게 가지 못한 죄. 하지만 나는 마지막 학년이었던 만큼 나 자신을 속이고 노력하기 싫었고, 비로소 내 꿈에 대해 확신을 가졌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확신을 일찍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받았다. 실기로 나를 받아주는 곳은 그 어디도 없었다. 고3이라 늦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다. 아직 어른 아니면 늦은 게 아니라고. 맞는 말이긴 한데, 작게 보면 틀린 말인 것 같다. 앞으로 나아갈 목표가 사라지면 무너지는 내 자아가 아직까지 건강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절대 나 자신과 화해할 수 없다. 아이유의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곡처럼. 문득 서울에는 한강 다리가 있다는 점이 부러워졌다. 내가 사는 곳에는 그런 다리가 없다. 마치 영화 '헤이즐'에 나오는 어거스터의 담배처럼, 피우지는 않는데 죽음의 상징을 가짐으로써 삶의 희망을 가지는 것처럼, 나도 뛰어내리진 않을 거지만 다리에 가서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의 나를 죽이고 새로 태어나는 장소가 필요하다.
앞으로가 기대되지 않아서 너무 괴롭다. 마치 첫 단추에 문제가 생겨서 버벅거리고 있는데 무대에 10초 뒤에 올라가야만 하는 심정 같달까.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죽지 못해 또 회복하겠지. 그런데 남이 준 상처보다 더 아픈 건 내가 내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다. 내 자신을 끝까지 소중히 여겨야한다고 하는데 지금 내 자신 즉 그애는 정신이 나가서 멍만 때리고 있는 시스템 다운 상태란 말이다. 자아 중 절반이 죽어버렸다. 아예 시도하지 않았다면 슬프지도 않았을까. 인생을 너무 바보스럽게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무서운 건 내 자신이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이게 제일 공포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내 자신은 고정된 것만 같다. 이 창을 깨고 나와야 하는데 넋만 나가서 바라만 보고 있다. 그 참에 흠집을 내면 그 충격에 다시 가만히 있다가 더 단단하게 만들어버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