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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도리 Aug 30. 2024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선

마침표가 필요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받아들인다. 나는 꽤 감정적인 사람이다. 어제도 엄마에게 들은 심한 잔소리 때문에 그 뒤 나의 일정을 다 놓아버리고 싶었다.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쉽게 요동치는 사람. 그러고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 그게 나다. 계획은 11년으로 잡았다. 나는 20대에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기로 했다. 모두 20대를 즐겨라, 20대는 가장 빛나는 시기가 아니냐. 적어도 내 주변 어른들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의 20대는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스럽다. 다시 좋은 시기가 올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지만 이렇게 좋고 나쁜 시기들이 파도처럼 넘나들 것이라는 게 점점 확실해지고 무너지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면서도 대미지가 너무 크기에 피하고 싶어지는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애매한 시기. 엄마는 신체적으로 힘듦을 느끼면 감정적인 사람이 된다. 평소에는 현실적이고 따뜻하고 헌신적인 엄마이지만 자신이 힘들 때는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 정서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느낌이다.


 우리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말들에 크게 요동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스타일인데 그 말들이 나오는 곳이 가족이라면 어떡해야 하는가. 상황 상 같이 살아야 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한쪽이 참고 살아야 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틀렸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할 말을 했다. 집안일 한 번 딱 안 했다고 우리가 왜 '엄마가 죽어도 아, 죽었구나 하고 무시할 X들이 되냐고.'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딱 말했다. 물론 엄마가 힘들어서 그냥 마음대로 말하는 걸 알고 있다. 힘들면 사람이 난폭해진다.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구는 사람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책할 필요가 없다. 할 말은 하고, 행동은 수정하자.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나 밥을 차렸다. 반찬을 만들고 밥을 퍼서 아빠와 동생에게 내주었다. 하지만 엄마의 심한 말에 대한 어두운 기분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20년 내내 들어왔던 말투와 정서인데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빠도 엄마의 이런 면이 감당하기 버거워서 내 나이 때 집을 나와 할머니 집에 가서 재수준비를 했다. 엄마는 외동으로 자랐다. 그래서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 내며 살아왔다. 말도 꽤 거친 쾌녀라고 생각하고 동경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나이를 점점 먹으면서 아이의 모습을 더 드러내는 것 같다. 엄마가 감정적으로 통제를 잃을 때 말이다. 사소한 일에 울고 아이처럼 입을 삐죽 내밀 때도 있으며 갱년기 때문인가 생각하다가도 내가 스스로 힘들 때 엄마가 폭언을 하면 화가 치솟는다. 하지만 엄마를 미워하면 죄책감이 들기에 결국 자책으로 돌아가고 우울해진다. 그래서 남은 시간들을 쓸데없이 감정을 어루만져 주는데 보내 버린다. 하지만 어제는 기분이 안 좋다고 내 감정, 본능에 따라 노래방으로 가지 않았다. 사실 적금에 돈을 다 쏟아부어서 통장 잔고가 0원인 것이지만 노래방에서 뛰어나와 요가 학원으로 달려갔다. 조금 늦었지만 1시간 동안의 신체적 고통과 명상으로 인해 감정이 사그라 들고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나 자신을 폭풍 칭찬했다. 잘 참았다고. 어린애처럼 떼쓰는 내면의  우울을 피해 나를 위한 선택을 한 것이었다. '인내'를 가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내적 성장을 또 이루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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