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달래 보는 밤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지만 밤만 되면 우울감과 불안은 나를 흔들어댄다. 불면증이란 친구를 데리고 오면서 말이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의사 선생님께 이 부분에 대해 심각하게 얘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약은 이미 최대의 역치를 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나머지는 내 마음에 달려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불안 때문에 생을 마감하고 싶었던 적도 많았고 기대에 부풀었다가 다시 우울해지기를 반복하며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유는 이미 한 번 경험해 봤기 때문에, 내가 나아진 후 다시 밝아져서 힘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굳건히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아진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가끔은 외로움에 몸부림칠 때는 연락을 간간히 이어가고 있는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의 꿈을 응원해 준다. 사실 친구들에게 응원을 해주는 것도 맞지만 사실상 나 자신에게도 해주고 싶은 것들을 친구들에게 해주는 것 같다.
도태되고 싶지 않아서, 남들처럼 아무 생각 없이 달리고 싶어서 몸을 혹사시킬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 방법은 역효과를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신, 내가 하는 일에,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겠지. 그렇기에 나는 충분한 잠과 좋은 강의를 많이 들으려고 하고 있다. 그 하나하나가 나를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나는 내 20대를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기에 욕심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불안이란 친구를 단짝으로 만들어 버렸고 원래 있던 친구들을 멀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마음이란 공간은 그런 것으로 이루어지기엔 너무 곪았기에 비우고 다시 채워야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치르는 대가는 거대했다. 내 자존감과 열등감, 외로움, 사라져 버린 소속감 등과 싸워야 했다. 그러기 위해 여유라는 무기가 필요했고, 이 무기는 억지로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여유를 가지기 위해서는 욕심을 덜 필요가 있었고, 쉽게 지치지 않기 위해선 조금씩 꾸준히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모든 일에 대해 성급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나는 항상 내가 부족하다고만 생각하며 자책했다. 하지만 언제나 나보다 더 잘나고 똑똑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은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자책하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 내 욕심에 걸맞은 노력을 하기엔 내 욕심은 이상적이고 너무 가득 차있는 정리가 안 되어 있는 창고와도 같다. 나중에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때 하나씩 꺼내서 채워야 하는 냉장고가 되어야 한다. 냉장고 속 재료들과 음식들은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정리를 주기적으로 해줘야 한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멘털 관리를 하다가도 마음대로 안 돼서 낙담할 때도 생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게 정신적으로 단단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요즘은 스스로 뮤직 세러피를 진행하고 있다. 자존감을 높여주는 음악들이 부담스럽지 않은 단계에 도달했다. 영화 ost나 드라마 ost, 그리고 흔한 대중가요나 팝송도 가사들이 이젠 와닿기도 하고 더 이상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는 자기 암시의 효과도 주고 있다. 남을 돕는 건 지금의 우선순위가 아니다. 내가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기 위해노력해야 남도 도와줄 수 있다.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처럼. 가끔은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을 정도로 몸에 힘이 빠지고, 응급실에 입원했던 그날 코끝에 배긴 약들의 냄새가 아직도 코 안에서 맴돌기도 한다. 마치 그날을 잊지 말라는 것 같다. 잊을 수가 없다. 그 후로도 꽤 힘들었지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도 이제는 수용이 된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자, 만약 잘 안 되는 것이 있더라도 더 작게 나눠서 해결해 보도록 하자. 미리 걱정해서 일을 그르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젠 흔들리더라도 내 중심을 잡을 줄 아는 오뚝이가 되어가는 것 같다. 하지만 이젠 오뚝이 보단 깎여서 맨들 맨들 해지는 예쁜 돌덩이가 되고 싶다. 단단하지만 아름답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돌덩이, 내 몽돌은 점점 예뻐지고 있다. 조금만 더 깎되, 천천히 깎자. 섬세하게 꾸준하게 깎아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