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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만남

동굴 밖을 나와 타인을 통해 마주한 나

by 몽도리

컴퓨터 학원에서 수업을 같이 받는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는 내 오빠와 동갑이었다. 우리는 어느 날 ITQ스터디를 같이 하기로 했고,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연습을 같이하고 밥을 같이 먹으면서 많은 대화가 오갔고, 나는 점점 마음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성격도, 느끼는 것도 비슷한 사람이었다. 관심사도 비슷하고 행동 패턴도 비슷한 사람을 만난 것이었다.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우리는 우리 같은 성향의 사람이 세상에 몇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MBTI로 치면 INFJ, 물론 우리 둘 다 맹신하진 않았다. 하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어떻게 이렇게 비슷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랄 때가 많았다. 서로 공감을 하면 할수록 접점이 생겼고, 그중 하나는 심리학이었다. 대학 때 심리학을 전공했던 언니는 첫 만남만에 연애사와 살아가면서 느끼는 심경의 변화 등을 내게 말해주었다. 자신도 내 나이때 했던 고민과 감정이 비슷하다고 말이다. 언니는 자신이 23~24살 때 느끼던 것을 내가 미리 겪고 있는 듯하다며 참 성숙하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조용하지만 예의 없는 행동과 선을 넘는 언사는 싫어한다는 점, 심리학을 좋아한다는 점,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중요시한다는 점 등 많은 공통점들 사이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심지어 살면서 답답한 것들조차 비슷하자, 어떤 확신이 들었다. 그건 바로 내가 유별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만나면 새로운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진로 캠프에서 느꼈던 그 신선했던 느낌을 또다시 느낀 것이었다.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 그게 우리였다. 그것 때문에 혼자 속을 끓이기도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성숙해지는 대기만성형인 사람들, 선을 긋는 것처럼 차갑고 개인주의처럼 보이지만 누구보다 함께이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그게 우리였다. 1:1로 만나는 건 처음이었는데 언니를 보면서 왠지 내 미래도 기대가 되었다. 성숙한 생각과 밝은 미소, 그리고 많은 고난을 건너온 듯한 얘기들, 그 속에서 나는 비슷한 내가 보였다.


맥도널드에서 점심까지 사준 언니는 내 말을 잘 경청해 주었고 우리는 티키타카가 맞아서 2시간 넘게 얘기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누군가와 얘기를 나눈 건 오랜만이었다. 동굴 속에 들어가 있다가 밖을 향해 빼꼼 쳐다보다가 용기 내서 발을 내딛는 순간, 대인관계에 있어서 긍정적인 경험을 한 셈이었다. 나는 밖에 나가서 주눅만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그냥 상호작용이 다른 것이었다. 내 사회성을 내가 스스로 판단하기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보지 못한 내 모습과 생각의 방향을 타인의 말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고 공감받았다. 그리고 비슷한 느낌의 슬픔과 고충, 성격적 딜레마 등을 첫 얘기에 다 담아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만큼 잘 맞았다. 확실히 나이에 따른 생각의 성숙도는 차이가 났다. 그리고 경험의 폭도 달랐다. 나보다 7년을 더 살았으니까. 하지만 얘기를 나누는 순간만큼은 나 자신을 비교를 하지도, 언니의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그저 나 자신을 똑바로 마주 보는 연습을 하다 보니 타인에게도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걸까. 언니는 내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아픔을 통한 성숙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물론 ITQ에 관한 것도 서로 묻고 가르쳐주었지만 서로 얘기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오늘, 나는 새로운 자기 확신이 생겼다. 정확히 어떻게 생긴 건지도 어떤 자기 확신인지도 모르겠지만 나 자신을 믿는 마음만은 확실했다. 새로운 도전을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자격증 시험 결과가 어떻든 그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것들이 참 많았다. 내가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그 언니를 만날 상황도, 그리고 컴퓨터 활용능력도 얻어가지 못했겠지. 하지만 이제는 컴퓨터도 제법 다루고, 타인과의 대화가 그리 힘들지도 않다. 친구들과도 잘 연락하고 지내며, 형제자매와의 사이도 좋다.


뭐라도 한 것이 좋아지는 하루였다. 나는 오늘 언니가 추천해 준 영화인 '케빈에 대하여'를 보고 나중에 감상평을 또 쓸 생각이다.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기에 좋은 영화라고 추천해 줬다.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변하게 될 나 자신도, 내 미래도 기대되고 설렌다. 이젠 학교에 정말 가고 싶다. 단지 집이 지긋지긋해서 떠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성찰을 통해 단단해졌으니 더 부딪혀보고 싶다. 가족들은 전부 나보고 조급하다고 하지만, 나는 저 멀리 달리고 싶다. 이번에는 숨을 차분히 고르며 천천히 달리며 완주할 자신이 있다. 지금의 나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그저 나의 자만과 오만이라 해도 상관없다. 이제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 삶은 내 것이고 나는 이제 성인이기 때문이다.


Playlist : 윤하 - 태양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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