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퉁이에 부딪히다
새로운 대학, 새로운 학과에 갔다고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문제들이 달라지는 것도, 다 풀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여전히 풀고 넘어가지 못한 문제는 장소를 바꿔도 남고, 그저 외면하고 살아가다 보면 결국 다시 맞닥뜨리게 된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균형, 그곳을 우리는 동경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현실적으로 얻어지는 것도 얻고 싶어 한다. 모든 것을 가질 순 없는데 말이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현실적인 보상도 얻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또 다른 무언가를 희생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과외를 하려고 했고, 난관이 있을 거라고도 예상은 했지만 처음부터 너무 뻔한 걸로 이렇게 막힐지는 몰랐다. 학생이 구해지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내 학교, 학과, 내가 살아온 배경 등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예전처럼 또다시 정신적인 늪에 빠지는 건 아닐까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애써 덮은 채 알바를 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바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심지어 시험기간에, 종강하기도 전에 구하는데도 마땅한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내가 피하는 건지, 못 찾는 걸지도 모른다. 예전에 해본 거라곤 물류, 공장 알바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쪽 계열의 알바를 계속 찾기 시작했다. 진로 상담 선생님은 나에게 내 진로와 관련된 알바를 해보라고 권해주셨지만 학교 쪽에서 제시해 주는 기회나 알바는 일당 밖에 없었다. 서포터스를 할까 생각도 해보고 자격증 관련 장학금도 찾아봤다. 어째서 다 시험기간 안에 들어있는지, 미로에 빠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해보겠다고 시험기간 안에 자격증 시험날짜를 잡았다. 장학금 한 번 타보겠다고, 주변 사람들은 또 소득 산정 구간에서 잘릴 거라고 못 받을 테니 너무 열심히 할 필요 없다고 했다. 학점도 자격증도, 그냥 쉬엄쉬엄 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은 내게 가만히 있으라는 말처럼 들렸다. 몸이 고달픈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무기력이다. 무기력이 찾아오면 우울도 곧 뒤따라온다. 그전에 걷어내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을 하지만 안 되는 때에는 눈물이 터진다. 원래 인생은 힘든 거다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만 말해주지 않아도 이미 알 것 같다. 밤을 새 가면서 이런저런 노력을 하는데 이게 노력은 맞는 건지,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이럴 때 보통 사람들은 그냥 버텨야 한다고 하던데 나는 작년처럼 또 무너질까 두렵다. 똑같은 일을 두 번이나 겪었다. 세 번은 겪고 싶지 않다. 그래서 힘들어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다른 사람도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을 거라고 되뇌면서. 그렇게 나는 말 그대로 그냥 버텨보기로 했다. 그리고 포기하거나 지지 않기로 했다. 현재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했다. 유튜브 활동도 시작해서 언어 공부에 대한 영상을 4개나 올렸고, 토익 공부도 하고 있는데 800-900점대를 왔다 갔다 하며 심기를 건드린다. 장학금은 차등지급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경제적 잔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경제적 자립을 하고 싶어서 찾고 있는 알바는 아직 확정된 게 없다. 그래도 계속 찾아보고 구해내고 말 것이다. 학점도 이전처럼 따는 게 쉽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누적되면서 실수도 많아졌고, 솔직히 1학년이지만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다른 곳에서 성취감을 찾으려 노력했다. 연애, 유튜브, 인스타, 블로그 활동 등에서 작은 성취를 가져오려고 했지만 곧 시들해져 버렸다. 연애는 4일 만에 끝나버렸고, 유튜브, 인스타, 블로그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뭐든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니까. 방법을 강구해 보려고 손을 대는 순간, 시험이 닥치고 과제가 닥치고 다른 고민거리가 날아왔다.
교수님은 쉽게 좌절하지 말라고 하시고 세상을 살아가려면 이유 없는 긍정성을 지녀야 한다고도 말해주셨다. 이것저것 하느라 거의 탈진할 것만 같은 순간이 왔을 때, 난, 잠시 쉼표를 찍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싶은지 말이다. 너무 먼 지향점을 찾기보다 맨 앞에 있는 것부터 바라보고 동기를 정하기로 했다. 나는 '그냥'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무조건 스스로 동기를 만들어서 하는 사람이다 보니 시작에 에너지가 많이 들어갔다. 나에게 이유 없는 노력이란 없었다. 그건 꼭 억울함으로 돌아오니까. 물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 하기 싫은 일을 해내야만 하는 동기를 만드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이유는 취업, 자립, 미래 이런 단어들 말고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전에는 뭔가 풍부했는데, 왜 껍데기 같은 노력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지 이렇게 가다간 또 멈춰 설 것만 같았기에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로 했다. 동기를 찾기로 했다. 그 동기는 내가 만들어내야 했다. 그렇게 쥐어짜 내서 만들어진 동기는 과거에 느낀 좌절감을 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서라는 동기였다.
이제는 정지도 일시정지도 만나고 싶지 않기에, 천천히 가더라도 재생이기를 바랐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기를 설정하고 있던 와중에 오랜 친구와 연락을 나눴다. 그 친구는 소설도 쓰고 음악도 만드는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친구였다. 자신의 우상에게 연락도 서슴없이 취하고 유명한 사람한테 레슨도 받는 처음엔 작게 시작하는 걸 내가 옆에서 봤는데 지금은 성장하고 있는 친구였다. 그 친구와 대화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시렸다. 과거 학교에서 봤던 정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포기한 길을 저렇게 멀쩡히 그것도 재밌게 걷고 있는 친구가 부러워서일까. 아니면 지금 나는 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못 느끼는데 친구는 이미 그 안에 푹 빠져있어서일까. 어떤 이유가 되었든 나는 그냥 응원해주고 싶었다. 나중에 더 자라서 만나면 각자 성공해서 만나서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길 바랐다. 친구가 시기 질투의 대상이 아니라 동경과 선한 영향력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자극을 받은 나는 국제문화교류전문가가 되고 싶고, KOFICE와 같은 곳에 입사하길 바란다는 마음에 불을 지폈다.
문화와 예술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것저것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고, 도전 의식도 피어난 것이었다. 높은 목표 설정은 독이 된다고 예전에 누가 나에게 말해준 적이 있다. 그 말을 부정하고 싶어서 일부로 높은 목표를 잡고 높은 곳을 향해 노력하려 했다가 내려와 포기해 버렸다. 그때 비참함을 느끼며 내가 내려옴과 동시에 그 말은 독이 되어 나를 물들였다. 포기하면 독이 되는 게 높은 목표 설정이다. 하지만 대체로 내가 꿈꾸는 이상은 다 그쪽에 있다. 그 괴리감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게 또 나를 성장시키는 걸 알기에 포기하고 싶진 않다. 그렇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렇게 사는 거다. 돈에 쪼들리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도 꿈이 있어서 한 없이 다시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밤을 새워도 희망이 있고, 행복으로 포장이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