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이 무척 소중하다는 걸 깨달은 날
처음에는 어디에서도 나를 받아주지 않을 것 같은 막막함을 느꼈다. 직장도 아닌 알바에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런 막막함이 아닌 따뜻함에 눈물이 흐른다. 초등 영어말하기 대회반을 맡은 지 이틀째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암기를 그나마 재밌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대회 준비 기간을 이벤트 기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우선 캔바에 들어가서 포스터를 제작했다. 아이들에게 퀘스트지, 즉, 숙제를 내주고 기준은 얼마나 정직하게 얼마나 늘었는지다. 그렇게 해서 나한테 테스트를 계속 받으러 아이들이 오면 나는 들어보고 교환권을 내주는 시스템을 생각했다. 공정하게 하기 위해, 속상한 아이들이 없게 하기 위해 실력이 아닌 퀘스트지, 즉, 노력에 따라 상품을 주기로 했다. 퀘스트지 개수에 따라 주는 상품도 다르다. 그리고 대체 상품도 있다고 공지해 두었다. 만들고 나서 포스터와 상품 목록을 학원 문에 붙이니 다른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보셨다.
좀 부끄러웠지만 도전해보고 싶었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이 열정을 가지고 조금 더 과정을 즐기길 바래서 만든 이벤트다. 학원에 미리 오면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건 바로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더 라포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찍 온 한 학생이 나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내 어깨에 기대던 그 아이는 내 유튜브 채널을 물어봐서 구독했다. 그리고 수업 중간에 대본에 낙서를 하길래 뭘 그리냐고 물었더니 나를 그리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귀엽다면서 그림 잘 그려서 부럽다고 했다. 다른 학생들도 하나하나 챙기며 응원도 해주고 지도해 주면서 난 양가감정을 느꼈다. 뿌듯하면서도 아이들이 잘 안 외워져 답답해져서 풀이 죽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유독 마음에 걸리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수업을 마치고 원장님께 얘기드렸더니 따로 봐주시겠다고 하셨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에너지를 쏟으니 집에 와서는 기절할 것 같았다. 모든 아이들의 마음에 드는 선생님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잘 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나의 완벽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이 널 좋아해 줄 수는 없어. 그렇게 하나하나 다 신경 쓰면 세상 못 살아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는데 이제야 그 뜻을 알 것 같았다. 난 아이들이 답답해하고 속상해하는 걸 견딜 자신이 없었다. 보면 나도 같이 축 처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대회 준비든 공부든 모든 순간이 재밌기만 할 순 없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잘 아는 사실이겠지. 그러니 나는 옆에서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것도 봐내면서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가르치면서 더 친해지니 내가 너무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는 순간들이 잦아졌고, 고민은 늘어났다. 아이들 눈빛 하나 말 하나가 다 기억나서 행복하고 동시에 괴로웠다. 행복과 고뇌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이 감정을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소중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가르치기만 하고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내가 주게 될 영향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러워졌고, 아이들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내 응원과 칭찬 한마디에 행복해하는 걸 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원장님은 초반이라서 아이들이 가끔 잘 안 돼서 신경질을 부릴 때도 있다고 원래 그게 정상이라고 하시며 나보고 잘하고 있다고 해주셨지만 나는 여전히 혼란 속에 있었다. 정식으로 누군가의 선생님이 되는 건 나도 초보라서 실수해서 아이들 마음에 상처를 주기 싫었다. 그러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상태로는 오래 못 한다는 걸 잘 안다. 내가 중심을 잘 잡고 감정적으로 굴지 않아야 아이들도 그걸 느끼고 대회 준비에 매진할 수 있겠지. 어쩌다 보니 오늘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 외웠다. 사실 아침부터 USB도 잃어버리고, 지난밤에 이벤트 준비하느라 밤도 새워서 힘든 데다가 덥기도 무척 더워서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신나면서 불안했다. 그냥 날 믿어주신 원장님이 감사했다. 내가 하는 고민을 응원해 주셔서 감사했고, 가까이 다가와주는 아이들에게 고마웠고,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없어서 미안했다. 이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검사받을 수 있는 때는 지나고 스스로 깨지고 부딪히면서 성장해야 하는 때가 왔음을 절절히 느낀다.
그러면서도 계속 잘하고 있는지 확인받고 싶어서 원장님께 기대게 되는 것 같다. 불안감 때문이니 나 자신을 더 믿기로 했다. 잘하고 있다고 하는데도 걱정을 하는 건 내가 진심이기 때문이겠지. 어쩌다가 온 마음을 쏟게 됐는지 모르겠다. 분명 나는 내 학업도 있는데, 한 달 뒤면 개강인데. 그때는 학업과 알바를 병행해야 해서 에너지를 나눠서 잘 써야 하는데 왠지 그게 안 될 것 같아 벌써 걱정이다. 미리 걱정하는 걸 잘 알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성장시키는 건 현재 아이들이다. 내가 성인으로서 성장하는데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이 나에게 많은 감정과 깨달음을 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분명 행복한데 눈물이 난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나는 어쩔 줄 모르며 감정을 추슬렀다. 조급해하지 말고 조금씩 더 나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할 거다. 이젠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다. 무겁고 소중한 마음을 지니는 게 어떤 건지 깨달은 순간, 난 진정한 성인으로의 길로 한 발짝 가까워졌다. 아이들이 나중에 상을 받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하루빨리 보고 싶다. 대본 하나하나를 녹음하면서 아이들 각각의 소중한 꿈을 엿볼 수 있었고 내 어릴 때도 떠올랐다.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