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잘하고 싶은 건 욕심일까...
학원 가기 전, 잠깐 들른 카페. 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책상 위엔 대본이 펼쳐져 있고, 그 앞엔 휴대폰을 꼭 쥔 아이. 내가 맡은 영어 말하기 대회 특강반 아이였다. 나는 멀찍이 자리를 잡았다. 열심히 하나 보고는 있었지만 속마음은 ‘귀여워서 웃음 터질 뻔’이었다. 아마 그 아이는 모를 것이다. 그렇게 웃으며 하루를 시작했는데, 학원에 도착하니 전혀 다른 공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학부모님이 원장님께 어떤 카톡을 주셨다. 아이 대본에 내가 발음을 적어준 걸 보고, “그렇게 다 해줄 거면 학원의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는 항의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의도는 분명 아이들이 더 정확하게 말하도록 돕는 것이었지만, 그 과정이 ‘혼자 못하니 선생님이 다 해준다’로 보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변명보다 행동이 먼저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보여드리자.” 그날, 학생 전원의 영상을 하나하나 찍었다. 발음, 억양, 표정, 태도…각 아이의 현재와 변화 가능성을 담아 실장님께 보냈다. 원장님은 “오히려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는 부모님이 좋다”라고 하셨다.
안도와 동시에, 한 가지를 더 배웠다. 교육의 필요성은 말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때로는 ‘보여주는 것’이 가장 빠르고 강력하다. 카페에서 본 제자의 모습은 내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었고, 학부모님의 항의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원장님이 자신의 선에서 해결해 주셔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훗날 같은 일이 반복되면 안 되었기에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기로 하고 다음 날, 원장님께서 시범을 보여 주셨다. 아이에게 어떻게 피드백을 주고 코칭하면 되는지 말이다. 나는 열심히 메모했다. 확실히 보니까 감이 왔고, 왜 미리 도움을 청하지 않고 스스로 다 하려고 했는지 후회가 됐다. 조금이라도 잘 안된다고 말씀드렸더라면 더 빨리 아이들을 위한 제대로 된 코칭을 해줄 수 있었을 텐데... 집으로 가는 버스에 타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원장님은 괜찮다며 카톡으로 하나 하나 가르쳐주신다고 하셨다. 아무리 수습기간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에게 대회는 소중하다. 그걸 무엇보다 아는 나였기에 나는 온몸이 아파올 정도로 나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자책하지 않고 그저 최선을 다하기로 했는데 아이들의 암기 속도는 너무 더뎠다. 원장님이 하시는 대로 하기 시작했지만 대회 날짜는 야속하게 뛰어오고만 있었다. 조급해진 마음과 학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기 시작하자 겁이 났다. 돈을 받고 일하는데 이렇게 되면 나는 무능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이제는 열심히 하겠다는 말 대신 잘하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원장님은 예전처럼 한 없이 좋은 상사셨지만 내가 스스로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각자의 자리에 앉게 해서 모여있을 때의 주의력 분산을 막고 중간중간 피드백은 바로바로 해주는 걸 통해 아이가 바로 피드백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교수법도 해봐야 느는 게 맞지만 나는 그렇게 혼자서만 성장할 시간이 없었다. 아이들이 대회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감사한 분께 민폐를 끼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내게 많은 기대를 걸어주었던 사람에게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걸 들켜버린 것만 같았다. 여태껏 대회를 나가보기만 했지, 코칭을 해본 적은 없었다. 확연히 달랐고, 어려웠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처음 이 어학원에 고용되었을 때부터 나는 진심이었으니까. 그냥 알바가 아니었으니까. 진심이었던 만큼 직접 가르쳐주신 원장님께 감사했고, 마음이 아팠다. 시간을 건너서 빨리 연차를 쌓고만 싶었다. 불가능한 얘기인 걸 안다. 모두 다 처음이 있고, 처음부터 잘 하진 못했을 것이다.
대회가 다가올수록 힘든 날이 많지만, 아이들의 귀여운 표정과 작은 성장,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나 자신 때문에 나는 계속 이 자리에 선다. 아이들과 같이 올라가기 위해. 한없이 부족한 선생님이라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아이들이 즐겁게만 연습하면 좋다고 생각해서 결과를 너무 배제한 게 아쉽다. 이제는 그 균형을 잘 잡고 좀 더 단단해진 강사가 되어야겠다. 갈 길이 멀지만 언젠가 수고했다고 이때의 실수는 나중의 나를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는 좋은 강사가 되고 싶다. 아이들의 성과에 웃고 때로는 단호하지만 말랑한 마음을 잃지 않는 그런 이상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아이들을 보며 내가 웃게 되고, 울게 되고, 아프다가도 행복해진다. 그리고 무너지기 직전에 좋은 상사가 내 롤모델이 내게 괜찮다고 좋은 어른으로서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그러니 절대 이 정도에 무너져서는 안 된다. 내가 겪는 성장통이 아이들을 위한 밑거름, 나 자신을 위한 선물이 되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밤을 새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