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을 이겨내는 법

선택과 결정 사이에서

by 칼미아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대학 이름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문제는 대학에서 개개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고. 하지만 대학 순위는 왜 존재할까. 엄마는 왜 내게 100위권 밖으로 나간 대학들은 가지 말라고 하는 걸까. 오빠는 왜 학과가 어느 날 사라져서 전과를 하고 기숙사로 차별을 받은 걸까. 심지어 코로나로 등교도 못한 기간의 돈도 그대로 뱉어내라 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다. 나는 이를 보면서 항상 대학은 학교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스스로 심고 다녔다. 그러면 다니면서 만약 실망해도 적어도 배신감은 가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경험자들은 대부분은 조금이라도 더 공부해서 더 좋은 대학을 가라고 말한다.


대학 재학 중이 아닌 성인이 아닌 사람들, 대학 재학이 저 먼 세월의 한 파노라마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대학 이름이 결국에는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서 모순되게 나중에는 중요하다고 무의식 중에 말한다. 더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남이 놀고 있는데 그 시간에 공부해서 얻어낸 결과는 인정해줘야 한다. 그 부분은 누구도 반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의구심을 가지는 건,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모순이 되는 사회에서 나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이다. 어느 대학은 시설이 좋은 대신에 낮은 대학이라느니, 어디는 순위권이 높아도 결국에 지잡대라느니, 도대체 어떻게 판단을 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결국엔 다 내가 선택하기 나름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모른다.


내가 아는 건 단 하나다. 나는 수능을 위해서 내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고, 어디를 가든 그 경험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 좋은 책을 쓰고 싶다는 사실, 최종 목표는 변하지 않을 수도 변할 수도 있지만 내 신념과 추구하는 가치는 그대로 가지고 갈 것이라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이미 경험했다. 모순되지만 둘 다 맞는 말이다. 학교가 중요한 부분도 있지만 결국에는 그것도 개개인에게 달려있다. 상황에 따라 적용되는 것이 다른 것이다. 모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초점을 나 자신에 맞추는 것이다. 주변 말고 나만을 위해서 설렘을 가지고, 이때는 조금 더 먼 미래를 생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세상에 모순 덩어리인 것이 이것밖에 없으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모순에 대항하는 제일 좋은 무기는 나 자신만의 세계이자, 자아이다. 난 끌려가지 않는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으로 군림하면서 내 정체성을 더 다져나갈 것이다. 흙 속의 진주이건, 보물상자 속 다이아 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둘 다 아닌, 저 하늘에 떠있는 별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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