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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인도령 Nov 26. 2023

조상님들에 대한 시제(시향) 단상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내일은 원주 이씨 사용공파 시제를 지내는 날입니다 ^^ 오실 분들은 11시까지 오시면 됩니다" (사촌형님)


어제 고향에 계신 사촌형님으로부터 시제를 한다는 문자한통이 도착했습니다. 지난 50년을 살아오면서 시제는 어르신들만 다녀오는 것으로 생각이 들어서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제작년부터 작은 큰아버지가 지역문중 일을 맡게 되면서, 시제를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사촌형님에게 참석을 한다고 전화를 드리니, 부담 갖지 말고 올 수 있으면 오라고 하더군요. 1) 같은 항렬 분 들이 4-5명 참석 예정이며 2) 시제(시향)은 30-40분 정도 간단히 제사를 지낼 예정이며, 3) 뒤풀이는 없다 고 하셔서 내용을 들은 뒤에 동생에게 연락을 해서 같이 시제를 지내러 고향에 내려가게 됐습니다.


제가 내려가게 된 동기는 조상에 대해 예의도 있겠지만, 사라져 가는 전통에 대한 아쉬움과 작은 큰집이 큰 역할 을 맡게 되었으니.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함이 컸습니다. (또, 말만 번드르르 하기 보다는 한번 참여 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거라는 개인적인 가치관도 한 몫 한거 같습니다)  


그렇게, 동생과 의기투합이 돼서 고향으로 내겨가게 되었고,  시향을 지내러 가는 차 안에서 동생과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 (시제, 시향)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차에 동생의 의견이 시사하는 바가 커서 복기를 해서 적어 봤습니다.


* 시제 (시향). 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

시제 모습. 2023.11.26


<동생과의 대화 일부>


동생 : '형. 뭔가 일이라고 한다면 연속성과 의미가 있어 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면 굳이 조상들 제사를 지내는 것이 맞는 걸까? 전통이라고 한다면 후대에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 나이대에서 끝난다면..  내가 사업을 해보니까, 요즘 젊은 친구들이 그만두는 건 자신의 하는 일이 의미가 못찾으면  지치게 되고. 그러 다가 나가더라구. 무엇보다도 무슨 일을 할 때는 의미와 희망이 필요하거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떻게 이어져 가는 건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해줘야 하거든. (그렇 지 않으면 요즘은 잘 움직이지 않으려고 해)


나 : 의미가 있어야만 움직인다는 것은 지금의 젊은 세대 에게는 당연한 태도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는 목적만을 따지기보다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를 (가치) 가지고도 살지 않았나 싶어. 그것이 전통인 것이고, 지금은 그것이 마치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로 인해 다양한 친족들이 관계 맺고 이어져 온 것도 인정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만약, 과거 산업시대라면 이런 생각을 못했을 테지만,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다 보니 생각들도 저마다 달라지는 것이고. 그래서 오늘날 '제사는 필요 없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지.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조상들에 대해 예를 갖추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


동생 : 앞으로 더 많은 변화가 생길 거야. 큰 집도 어느 날 코로나가 터지니 갑자기 제사를 안 지낸다고 했고. (물론 그 사이에 큰어머님이 아프셔서 못하게 된 것이 크지만) 아예 제사 자체가 사라지잖아. 그러면 그동안 내가 3-. 40년 해왔던 일이 무엇인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동안 한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나. 이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도 소중한 게 아닐까 싶어. 물론, 후대까지 연속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끝이 있기에 지금이 더 소중한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당연히 자손까지도 조상들을 섬기는 전통이 이어지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지. 하지만 시대의 변화도 이해하고, 그것을 거부하기 보다는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는데


동생 : 어르신들이 벌초갈때마다 산소를 가리키면서 말씀하시는 '9대조, 10대조 할아버지께서는 ~ ' 이야기 나 들으면서 선산이 있는 양평과 이천 그냥 따라만 다닌 거지. 우리가 30-40년 동안 해온 것들을 후대가 알아 줄까? 이제는 전 국민이 90%가 제사를 안 지낸다고 답변을 하는 세상인데.


나 : 코로나가 많은 걸 변하게 해 줬지. 그전에는 어느 누구도 그런 얘길 못하고, 해왔던 거니까 불편해도 가족,  친지들이 만나서 제사를 지내고 전통을 지내 왔는데. 코로나 때 모이지 말라고 하니까.. 편하거든. 서로 얼굴 안 봐도 되고.. 그래서 가조묘가 없으면 아예 친척들과의 관계도 끝날 거 같아


동생 : 부모님들은 우리에게 ' 누군가 영웅이 나와서 집안을 일으키고 , 이어갈 거라'라고 희망적으로 얘기 하시지만, 내가 봤을 때는 장관정도 되면 모를까? 어느 누구도 총대를 메고 집안일을 할 사람은 안 나올 거라고 봐.


물론, 조상을 섬기는 건 인정해. 작은 큰아버님과 사촌 형님들이 조상들을 모시는데 있어서 힘을 보태는 것도  맞다고 봐. 그러면 50,60대가 주축이 돼서 하고, 70, 80대 어르신들은 뒤에서 응원을 해줘야 하는데. 아직도 어른들은 자식들을 어리게 보고, 명확하게 권한을 준 것도 아니니... 우왕좌왕하게 되고..


하지만 정말 일이라는 건 의미가 있고 명분이 없으며  움직이지 않아. 제사, 벌초를 왜 하는지? 그냥 '제사' 라고 하면 안 돼. 이제 말로 먹히는 시대는 끝났다고 봐. 그리고 상징적인 것이 있어야 해. 친척들끼리 소통이 안된다면 얼마도 안돼서 흩어질 거야. 우리보다 더 젊은 세대는 의미도 없는 거 같고, 재미도 없어 보인. 참여 하지 않는 거고. 결국 우리 나이대에서 끝나겠지


이런 대화를 듣던 사촌형님이 한 말씀하시면서 대화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사촌형님 :  부모님 돌아가시면 , 제사 지내는 것보다 중요한 건 자식들이 잘 모이는 거라고 생각해. 제사는 어쩌면 살아 있는 사람이 자기 위안을 하려는 거야. 진정한 마음이 효도지. 때가 돼서 찾아뵙고, 음식을 준비하는 건 나를 위한 것이지 진정한 효도는 아니라고 봐.


- 대화 일부


요즘 곳곳에서 시제 (5대조 이상 조상들에게 지내는 제사)가 한창입니다. 그러나, 한 번도 보지 못한 친척 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건설적이지 못합 니다. 몇해전에는, 어느 집안은 종중재산 때문에 다툼이 있어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희도 같은 항렬자들만 모였지만. 가장 큰 형님이 70 이 넘으셨는데, 하시는 말씀들의 공통점을 정리해 보면


'이제 이런 전통이 얼마나 가겠느냐?'는 거였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본인들께서 살아 있는 동안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로 보였습니다. 아마 많은 곳들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전통을 이어가야 할 중년들도 더 이상 전통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나마 뿌리 깊은 전통 이나 선산이 있어서 재산적 가치가 있다면 모를까? 아무런 이익관계가 없이 순수하게 과거의 전통을 이어 간다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제 동생이 말한 대로 세상은 변했고, 그것을 거부 하기보다 바꿔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조상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살아계시는 부모님과 형제, 친척들이며, 명절 때마다 형식적으로 다니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그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은 그 뒤에 챙겨도 늦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조상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더 잘하지 못하고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 입니다.




사진.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 .원주이씨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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