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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의 대화 - 인생은 끝까지 가봐야 안다

by 월인도령

아버지를 뵈러 부모님댁에 다녀왔습니다.


어머니는 약속이 있으셔서 외출 중이셨고, 집에는 아버지만 계셨죠.


저는 아버지 만날때마다 사가는 맥주와 편육을 앞에다 놓고,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대화의 시작은 자연스럽게 직장 생활 이야기였습니다. (아버지는 현재 저의 퇴직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아버지는 70년대 국민은행에 입사해 1997년까지 근무하셨습니다. 은행 다니실 때는 늘 선두에서 이끌던 엘리트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타고난 리더십에 완벽하게 일을 마무리 하는 스타일이셨기에 언제나 동료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운 분이셨습니다


이날은 아버지는 직장생활의 ‘위기’를 중심으로 말씀을 풀어가셨습니다.


"무책임한 리더들, 학력으로 으스대며 사람을 무시하던 이들… 그런 사람들이 제일 견디기 힘들었지."


아버지는 직장시절의 한 가지 일화를 꺼내셨습니다.


가장 바쁘던 은행 업무 시간에, 은행을 진두지휘 해야 하는 지점장이 혼자 은행을 빠져나가 한참을 놀다가 퇴근 무렵에야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당시 지쳐 있던 아버지에게 그 지점장은 “왜 인사를 안 하냐”며 트집을 잡았고, 아버지는 참지 않고 그 자리에서 지점장에게 화를 내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일을 책임지고 잘하시는 아버지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고, 나중에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게 되었을 때, 아버지에게 인사고과 점수를 보여주면서 ' 자신은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보여줬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시기를 회상하며 “그래도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2년 동안 매주 북한산 등산을 다녔지. 지금은 폐쇄 되었지만, 그때 백운산장에서 먹던 막걸리, 잔치국수가 정말 꿀맛이었다.” 며 옛기억을 말씀 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또다른 일화도 말씀 해주셨습니다.


실적을 위해 직원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일삼던 상사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이자가 높았던 시절이라, 통장을 만들고 없애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하는데. 그것을 너무 무리하게 지시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지시에 정면으로 반발하셨고, 그 일로 그 상사는 지점장에게 아버지를 고발하듯 지점장을 찾아갔지만, 지점장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고 했습니다.


"이 대리 말대로 하시오."


그렇게 상황은 정리되었다고 했습니다.


* 그게 가능했던 건 지점장을 과거에 다른 직장에서 모셨던 분인데, 그때 아버지를 많이 신임하셨다고 했습니다. 당시 아버지를 괴롭히던 상사는 대학졸업에 기고만장 했던 인물인데,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을 무시했었다고 했습니다.


그 모든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예전 직장은 힘들고 고된 일이 많았지만, 그 안에 나름의 의리와 질서가 있었던 시절이었구나 싶었습니다 (확실시 제가 직장생활 하던 2000- 2010년대와는 분위기 자체가 위계가 있으면서도, 한편에서는 직장동료들끼리의 정도 깊었던거 같구요. 그때도 못되먹은 인간들이 많구나! 라는 걸 보면서. 사람은 시대가 흘러도 바뀌지 않는다'라는 공감도 얻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께서 가장 강조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인생은 끝까지 가봐야 안다.”


당시에 잘나가던 사람들, 대학을 나와 승진도 빨랐던 이들은 하나같이 오래 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회식 자리에서 늘 폭탄주에 취해 있었고, 결국 그런 습관들이 그들의 생을 갉아먹은 것일지도 모른다며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겉보기엔 잘나 보였지만, 마음을 곱게 쓰지 못한 사람들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지금은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차이가 있어 보여도, 정말 중요한 건 건강이야. 철학이야.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하지."


그렇게 말씀하시며 아버지는 독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사람은 끝까지 배움의 길을 놓아선 안 돼. 내가 너랑 이렇게 대화를 오래 나눌 수 있는 것도, 네가 직장을 겪고, 퇴직하고, 그것을 극복해나가고 있기 때문이지. 책도 많이 읽고 하니까 지금 나와 말이 통하는 거야."

그리고 ,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성경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아버지는 퇴직 후 오히려 삶이 윤택해지셨다고 했습니다.


은행에 근무하셨을 당시는 주 6일제 뿐만 아니라, 년차도 제대로 못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나마 있던 2박 3일 휴가는 가족여행 대신 할아버지 제사로 대체되었습니다. (1983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저희 집 여름휴가는 늘 할아버지 제사였습니다)


그렇게 일만 하셨던 아버지는 퇴직후 , 기독교 신앙을 만나셨고 구리에 있는 두레교회에서 5년간 중요한 직책을 맡아 봉사하셨습니다. 이후, 지금은 가정예배를 드리시면서 성경 필사, 기독교 방송 섭렵 뿐만 아니라 수많은 고전을 읽으시고, 주 1회는 친구분들과 등산을 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80이신 아버지는 등산 다니던 친구들이 하나둘 다리가 아프면서 떠너가고 있다며 아쉬워 하셨습니다) 또한, 전 세계 56개국을 여행하셨고, 전국의 산과 둘레길을 다니며 인생의 후반부를 누구보다 멋지게 살아가고 계시는 중입니다


“지금은 힘든 시간이겠지만, 인생은 아무도 몰라. 나는 네게 쌀과 연탄 정도는 공급해줄 수 있어. 하나님을 믿고, 자신을 아끼며 건강을 챙기다 보면, 반드시 기회는 온다.”


그렇게 어제도 아버지와 4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었고, 아버지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엔 근처 고깃집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자.”


돌아오는 길, 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다시금 용기와 위로와 힐링을 얻었습니다


인생은 끝까지 가봐야 안다는 그 말씀.


그 말 안에 담긴 세월의 무게, 고비를 넘기며 다져진 인생의 철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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