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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인도령 Dec 27. 2023

중학교 은사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들

연예인들의 자살을 보며 도대체 산다는 게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각주) 중학교 은사님 모임을 10여 년 운영하고, 은사님의 과거 카페 글을 관리하면서 몇 해 전 스승의 날 선물로 보내드린 인상 깊었던 은사님의 글입니다. 2000- 2010년까지 글 중에서 엄선해 봤습니다


나는 제자 OOO군에게 <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_ 또 다른 도약을 하려면 공부를 조금 더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해주었다. 이제 세상은 인간게놈을 이야기하고 있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너희들의 상대는 한국의 김서방이 아니라 제임스 딘이 될 수도 있고, 장쩌민이 될 수도 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항상 한 발 앞서 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역사를 바꾼 사람들은 그래서 외로웠고 힘들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선각자들이 왜 그렇게 교육을 역설했을까? 나는 조금 더 많이 알수록 남에게 조금 덜 피해를 주고, 조금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짧은 생각 때문에 사람을 죽인 일이 허다하지 않더냐? 나는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죽일 뻔했던 무지가 너무 무섭다. 편견과 오만과 독선은 무지에서 온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2000.7.2- 위대한 궁수는 과녁보다 더 높은 곳을 겨냥하여 활을 당긴다 >




여행의 귀로는 출발의 반대 방향이지만, 새로운 출발. 좀 더 머무르고 싶은 아쉬움과 서운함을 안고, 육체는 돌아오고 있으나 마음만은 조금씩 떼어 그곳에 남겨 놓고 오는 길. 그것은 육체로 가는 길이 아니라 마음으로 가는 길, 꿈꾸듯 설렘으로 가는 길. 내일의 현실을 위한 삶의 힘이 불끈불끈 솟아나 배낭 챙기는 손에 괜스레 힘이 주어지고 내일은 무엇인가를 채울 수 있도록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고..... 휴게소에서 사 먹는 가락국수와 그 뜨끈뜨끈한 국물 맛에도 정이 흠뻑 묻어나고 진한 사투리 한 마디에 삶의 피곤이 싹 달아나는 것...... 여행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그냥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남들이 정말 일상이 지겹고 지루하다 할 때 나는 추억을 한 입 베어 물며 빙긋이 웃으면 되는 것이다. <2000-7.10- 여행>



나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아메리칸대학교 로스쿨로 유학을 떠나기 위해 오늘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정든 교정, 사랑스러운 얼굴들, 무려 16년간 익숙해있던 출근길, 이제와 생각해 보니 너희들의 소란스러움마저 정겹구나. 교육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작한 교직 생활이었기에 제자들에게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는 않은지,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은 친구는 없는지 반성을 해본다…. 해마다 하던 이야기이지만 지금 당장 인기 있는 선생이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정말 새록새록 생각나는 선생이고 싶었다. 열심히 살려고 한다. 인생은 결국 선택이니까. 너희 모두를 사랑한다 <2000.7.14- 광운중학교를 떠나며>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직업의 다양성을 인식하고 또 그렇게 귀하게 여기던 직업들의 사회적 인식도 많이 바뀌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바꾸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다만 공익에 어긋나는 일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음은 너희들이 알겠지) 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헤어디자이너, 만화가, 요리사, 웨이터, 환경미화원 등등 어디서든 우리는 한몫을 차지하고 그렇게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얄팍한 마음으로 자기의 출세를 위해 남을 짓밟고 그리고도 정작 자신은 그것으로부터 삶의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서야 되겠느냐. 사람은 죽을 때 그의 인덕이 얼마만큼이었는지 알게 된다지 않더냐. 선후배들끼리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얼마나 그들이 행복한지 행복지수를 재보렴 <2000-7.20>



오늘은 서울 시립대 박 OO 교수가 미국으로 떠나는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씀 중에 산의 정상만을 바라보다가는 지레 겁이 나서 오를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 있었다. 물론 인간에게는 원대한 목표가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여러분들 중에는 그 목표를 바라보다가 덜컥 겁이 나는 바람에 시작도 해보지 않고 포기한 경험을 가진 자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끔 가까이에 눈을 둘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때로는 산을 오르는 앞사람의 발뒤꿈치만 보면서 미련스럽게 묵묵히 걸을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또 한 가지, 제자가 스승을 버릴지언정 스승은 제자를 결코 버리지 않는 법이라는 말도 하셨다... (중략) 마지막으로 낮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정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하느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자신의 역할을 주셨다. 너희들이 신고 있는 신발 한 짝조차도 너희들의 발밑에서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지 않더냐. 하물며 사람은 말해 무엇하랴. 그들이 아무리 가난하고, 배우지 못하고, 장애가 있더라도 그들은 우리의 모습을 한 인간인 것을 <2000-8-8, 산의 정상만을 바라보면>



세상에 태어날 때, 완전한 사람은 없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의 불행은 말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후천적으로 불의의 사고에 의하여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이 가질 비통함과 불편함은 오죽할까? 그런데 미국에 와서 가장 인상 깊게 느끼는 것 중의 하나(아니 선진국에 갈 때마다 느끼던 것이다)가 장애인들에 대한 우대 정책이다. 도시 어느 곳에도 휠체어가 다닐 수 없는 곳은 없다. 턱이 없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수업시간마다 너희 모두가 잠재적 장애인임을 강조해 왔다. 왜 우리는 서양의 개인주의가 갖는 장점을 모르는지 모르겠다. 분명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다른데도 말이다. 혹시 이 시간에도 편견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거들랑 다시 한번 자신이 잠재적 장애인임을 잊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구나. <2001.1-18, 장애인의 천국>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 말이 맞는 것 같구나. 40이 넘으면서 내 얼굴이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 20대에 찍은 사진은 매우 마르고 날카로운 눈매를 갖고 있는데 이제는 둥근 얼굴로 변하면서 날카로움이 사라진 느낌이 들거든. 이곳에 와서 느낀 것인데 한국 여자들이 유난히 화장을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성형미인들 이야기도 유난히 한국이 심한 것 같고...... 예뻐지겠다는데 누가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자꾸만 씁쓰레 해지는 것은...... 내 이야기의 요점은 어떤 생각과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관상도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2001-6.11>



이 방에 있는 수많은 총각들도 그처럼 착하고 예쁜 아내를 맞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평소의 내 지론을 적고자 하니 참고 바란다. 여자는 많지만 진정한 여자는 그리 흔치 않은 법이니 여자 보는 눈을 기르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외모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크나큰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은 오랜 역사가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특히 낭비벽이 심한 여자나 상대편에 대한 배려의식이 없는 여자는 나중에 화근이 되는 법이다. 또한 여러 번 이야기 한 바 있지만 언어는 사람의 사고방식을 지배하는 법이니 그녀의 언어습관도 유심히 관찰해 볼 일이다. 기품이 있는 여자는 언어에서 그이 됨됨이를 금방 알아볼 수 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치고 착하지 않은 사람 없으니 이 또한 좋은 판별법이며, 화장이 너무 진한 여자는 허영심이 많고, 아이들 좋아하지 않는 여자는 이기심이 많은 여자이며, 자주 사랑을 확인하려 하며 의심이 많은 여자는 의부증을 나타낼 우려가 있고, 상대가 챙겨주기만을 바라며 무사태평인 여자는 여자는 게으를 가능성이 많다. 게으름은 부지런한 남성이 견디기 어려운 부분이며 쉽게 고쳐지지 않는 천성이니 아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한편으로 너무 계산적인 여자는 큰 부자가 되기 어렵다. 베풀 줄 아는 여자가 나중에 큰 부자가 될 수 있음은 당연한 이치이다. 정주영 씨 같은 거부 뒤에는 묵묵히 자신의 일에만 열중하며 남편의 사기를 북돋아 준 아내 변중석 씨가 있었다. 지혜로운 여자는 자신보다 남자의 기를 살려주는 일에 적극적인 법이며 남자를 믿고 따른다. 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여자는 남자가 하는 일에 제동을 거는 일이 너무 많다. 부자들의 부인은 남편을 봉급쟁이 생활자로만 있게 하지 않는 과단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정말 지혜로운 여자는 남편에게 남을 돕고 살라고 말한다. 남에게 옷을 벗어주고 온 남편과 며칠간 이야기도 하지 않는 여자는 남자를 크게 만들 수 없는 여자이다. 특히 종교집단등이나 사상등에 대해 깊이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여자는 가정을 등한히 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이 또한 주의할 일이다. 아내 고르는 일은 인생의 반쪽을 얻는 일이며 매일 보고 살아야 할 사람이기에 가장 신중해야 한다. 세월은 인간에게 경험이라는 좋은 선물을 준다. 그런 경험으로 적어 본 글이니 항상 맞을 수는 없지만 통계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 <2001-8.14. 아내를 고를 때>



경찰이 로스쿨과 메인캠퍼스에 쫙 깔리고 셔틀버스에서도 경찰이 ID를 보자 하는 걸 보니 무슨 큰일인가 싶어 학교 security 담당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었다. 두 번의 폭파위협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사건 당일을 제외하고는 그저께 정상적으로 수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을 줄로 알았었다. 하지만 전철에도 칸마다 경찰이 있고 학교가 그 모양인 것을 보니 갑자기 불안해지더라. 더구나 방송에서 많은 아랍사람들이 테러를 당하고 있고, 유태인들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으므로 유태인들을 치자는 이야기도 있다 하니 더 그랬다. 


AU는 1986년에 유태인이 세운 학교이다. 미국이 아직 안정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늘도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메일과 방송으로 상황을 체크하고 있다. 다행히 방금 학교총장명의로 메일이 왔는데 두 번의 폭파위협이 모두 루머로 밝혀져서 기숙사와 기타 학교 시설물에 머물다가 나이트가운만 입은 채 긴급히 소개되었던 학생들이 돌아와 오늘은 정상적으로 학교가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내가 가끔 미사를 보는 국립대성당에서 부시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추모미사가 얼마 전에 끝났다. 부러운 것은 이처럼 나라가 어려울 때 여야를 막론하고 전직 대통령들까지 한마음 한 뜻으로 뭉치는 이네들의 단결력이다. 


우리는 어떤가? 현직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초청해 고견을 듣자 하면 속알머리가 밴댕이 만도 못한 인물 한 명(?)이 꼭 빠지고, 야당은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여 협력하기는커녕 상대방의 약점만을 찾아 공격하기 바쁘고,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기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남북간의 통일은 무슨 말라빠진 통일이더냐? 과거 우리나라의 대북한 정책은 강경 일변도였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느 때가 더 테러가 많고 분쟁도 많았는가는 자명한 일이다. 이번 미국에서 일어난 엄청난 재앙을 보면서 왜 자꾸 북한을 생각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정말 슬픈 일이다. 단 두 주일 전에 들렀던 빌딩이 이제는 흉물스러운 몰골로 주저앉은 모습과 실종된 가족을 찾아 울먹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 KBS의 이산가족 찾기를 보며 울며 밤을 새우던 때가 생각난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는데 우리 국민 모두가 바로 그런 형제애로 뭉칠 날은 언제쯤일까? <2001.9.15, Bomb threat for AU>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그리워하고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싫어한 나머지 그것을 떨쳐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방법은 그것들로부터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발을 내디뎌 달리면 달릴수록 새로운 발자국 소리가 늘어만 가고 그의 그림자는 조금도 두려움 없이 그를 따라왔다. 그는 이 모든 재난이 아직 자기의 달리는 속도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더욱 빠르게 달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힘이 다해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는 이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만일 그가 단순히 그늘 속으로만 걸어 들어갔어도 그의 그림자는 사라졌을 것이다. 그가 자리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어도 그의 발자국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그대는 모른다. 그대가 서 있는 자리가 지평선인 것을... 그대는 순수함에서 그대를 찾아야 할 것이다. 내적 순수함에 육체를 잃을 것이다. 파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그대의 몸을 만지고 느낀다. 여기에 나의 몸이 있구나 그대는 평범하므로 <2002-4.10, 누군가가 보내온 이야기>



 오늘 '상도'라는 드라마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정치수라는 송방 대방이 그 자신의 그릇된 욕심과 장석주라는 참모를 잘못 둔 덕택에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는 장면에서 나는 김윤수 공보특보를 떠올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이상한 논리에 젖어 살고 있다. 그 말속에는 적당히 비리를 눈감아 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사고방식이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세상물정이 어둡다느니, 사회경험이 부족하다는 등의 말로 폄하하려 한다. 나 또한 욕심 때문에 많은 실수를 하고 산다. 그래서 꾸준히 반성하며 나 자신을 다스리려 한다. 여러분들은 어떤가? <2002.4.18, 見利思義>



어제는 서른한 살의 나이에 직장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러분의 선배이자, 동기이자, 후배인 제자를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일 것이다.


누구나 개성이 다른데도 우리나라와 같은 동양문화에서는 개인차를 잘 인정하지 않고 전체의 일부분이 되기를 강요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보니 직장생활에서 얻는 스트레스도 그만큼 클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과거에 비해 개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늘고 있지만 아직은 서구 사회에 비해 몰개성의 강요가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무엇보다도 상대편의 기분을 헤아리지 않는 언사와 뒷말들은 넌덜머리가 날만큼 직장생활을 힘들게 한다. 그 사람이 가진 실력보다 얼마나 상사의 눈치를 빨리 보느냐와 얼마나 그의 구미를 맞추느냐에 따라 승진이 결정되는 것은 더더욱 직장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되는지도 모른다. 간판이 중시되는 세상은 미국도 마찬가지더라만 우리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고 해야 할 것인데 미리 결정되어 버린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싶은 의지가 없어지는 것은 불문가지일 테니 잘못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 사회는 엘리트만이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처럼 유도하는 부류들이 더 많은 듯하니 그런 부류들에서 소외된 계층 은 얼마나 세상 살기가 힘들까 싶다. (중략). 우리는 너무 빨리 과거를 잊는 못된 습성 이 있다. 어려운 직장생활을 하며 오늘도 고생하고 있는 친구들 힘내렴. <2002-8.11, 산다는 것>



어차피 인생은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것이고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법이니 무엇 인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가끔 제도나 인간의 오해나 선입견, 빈부의 차이 등이 인간의 능력을 구속함으로써 좌절에 빠뜨리는 일이 일어나지만 젊음은 그런 왜곡된 현실을 부수는 데 있지 않는가 싶다. 아직 기성세대에 물들지 않고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어야 할 젊은이들이 썩어빠진 기성인들과 너무도 닮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며 심한 좌절감을 느낄 때가 많다. 그들은 항상 '무시할 수 없는 현실 '에서 논리의 근거를 찾곤 한다. 우리의 희망인 젊은이들마저 부조리를 '거역할 수 없는 현실'의 논리로 덮어버리려 하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2002-8.26 여름의 끝자락에서>



(생략) 카피라이터들은 히트 칠 수 있는 한마디 말을 만들어 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짠다지 않더나. 세상을 거꾸로 보거나 남들이 놓치기 쉬운 것들에서 또는 지극히 평범한 것에서 남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라는 말이다. 특히 장사를 하는 친구들은 신용을 첫째로 하되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이 무엇일까 연구해야 한다. 돈을 벌려고 하지 말고 사람을 벌어야 한다. 그러면 진정한 부자도 될 수 있는 법이다 <2002-9.25, 너희가 게맛을 알아>



우리 모두 세상이 아름답게 바뀔 것이라는 꿈을 꾸어 보자. 아니 그것이 현실로 바뀌도록 힘을 보태보자.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아니 더 빛을 발하는 말들이 있다. '생명', '사랑', '진리', '정의', 등등 그런데 그것들은 포장된 것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이고 언젠가는 베일을 벗고 우리 앞에 영롱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세상이 어수선해도 너희들만은 그런 것들을 믿어주기 바란다. <20003-4.15, 봄 그리고 희망>



모두들 추석 잘 보냈는지? 매미가 너무 시끄럽게 울어 우리네 가슴 다 멍들었다.

<2003-9.15, 추석과 매미>



시간이란 인간이 만든 하나의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할지 모르나 이것으로부터 우리 가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인생을 성공으로 이끈다는 말을 많이 듣고 산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과연 인생의 성공이 무엇인가 회의를 느낄 때가 있다. 오히려 건강하게 제 자리 지키며 소박하나마 행복하게 사는 것이 훨씬 더 소중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2003-12-31. 2003년 을 보내며>



2004년을 맞이하여 모두들 나이 한 살 더 먹는 기분들은 어떠냐? 나이가 어릴 때는 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이 먹는 일이 힘겨워질 때가 있다. 아마도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척받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젊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나이가 어릴 때는 잘 모른다. 그래서 그 젊음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들 열심히 살아야 한다 <2004-1-18. 내리는 눈을 보며>



오늘 김춘수 시인이 먼 길을 떠나셨다고 한다. 무의미 시를 쓰던 그는 시대의 아픔에 몸으로 항거하던 김수영 시인과 대비되는 삶을 살았던 분이다. 그분이 일제 강점기에 고문에 못 이겨 모든 것을 털어놓은 아픔 때문에 탈이데올로기적인 삶을 살다 가셨다 하는데 그것도 이데올로기는 아닌지 생각해 본다. 그분이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낸 걸 보면 이데올로기와 절대 무관하게 사신 분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모르겠다. 내가 그분은 이 아니고 돌아가신 분을 내 편견으로 폄훼하지나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내가 왜 이런 말을 꺼내는고 하면 사람은 결국 무엇인가 자신이 가진 주관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게 마련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 신념이 사람의 인생을 어느 쪽 방향으로든 끌고 가기 마련인데 나는 아직도 내 신념을 버리지 못한다. 강단에 서서 생활고 걱정 안 하고 오로지 연구와 가르치는 일에만 몰두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신념, 그래서 나는 아직도 내일이 기다려지는가 보다. (중략)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즐거운 일이 무엇인지 <2004-11-30. 12월을 맞이하며>



가장 구속이 적어야 할 연구실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자기 입맛에 맞는 연구물들만 요구하는 그런 자가 있으니 숨이 막힌다.


내가 아침부터 왜 이런 말을 하는고 하니 여러분들 중에도 이제는 제법 부하를 거느리는 자리에 있는 자들이 생겼을 거라는 이유에서이다. 지금은 군사정권 하의 세상이 아니다. 과거 절대적 빈곤에 찌들어 살 때는 조직 문화가 국가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게 사실이고 또 지금이라고 해서 그런 문화를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정보화 사회이고 개인의 창의력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이다. 부하들의 사기를 높여 주는 일뿐만 아니라 그들이 정말 직장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실적도 오르는 법이다. 혼낼 때는 강하게 그러나 위로해 주는 따뜻한 인간미가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모자란 자일 수록 열등의식이 많은 자일수록 군림하려 한다 <2004-12-23. 너희들은 그러면 안 된다>



올 한 해에는 여러분 가정에 건강이 깃들기를 빈다. 건강하면 모두 이룰 수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게 있으랴. 힘내자! <2005-1-3. 올해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기도 하고, 나 자신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는지 되돌아본 2004년, 그러나 아직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연구하고 가르치는 직업에 있는 나로서는 오직 골방에 틀어 박혀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전부이다. 지율스님의 단식이 훌쩍 90일을 넘기는 것을 보면서 나는 왜 저렇게 단단하지 못한가 반성해본다. <2005-1-3, 다시 2005년을 회고해 보며>



일상이 피곤해서 맨날 얼굴에 짜증만 가득 찬 사람들에게 휴일 아침은 그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충동을 느끼게 하면서 어떻게 하면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하는 꿈을 꾸어 보는 자들도 많을 것이며 그들에게는 수십 번 마음속에서 사표를 썼다 지우는 일을 반복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상관으로부터 말도 되지 않는 일로 질책을 당하거나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거나 동료들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할 때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잘 웃어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상황을 곱씹으며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별의별 유형의 사람들도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나쁜 유형 이 있다면 오직 자신만 알고 타인을 이용하려 들거나 심지어는 자신을 위해 타인을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 자들일 것이다.


오늘 일요일 아침에 이제는 남들 밑에서 아니꼬운 일상을 살 것이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오너가 되는 꿈을 꾸어 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이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바도 클 것이다. 그런 꿈도 없으면 미래는 너무 암담하지 않겠니?


괜히 일요일 아침에 몇 자 끄적여 본다. 오너를 꿈꾸며 <2005-2-20. 일요일 아침에>



참 세월이 빠르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의 빠르기를 더 실감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살 날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에 대한 초조함도 있을 것이고, 팍팍한 삶에 지쳐서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꿈이 줄어들기 때문인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여유를 잃어 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중략) 오늘은 벌써 한 시간째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으나 아직 한 명도 출석하지 않고 있다. 나이가 들면 이처럼 시간을 내어 여유 있게 공부를 하기 어려워진다. 조금 더 젊을 때 분투하기 바란다. <2005-5-20. 벌서 5월이 간다>


지난 목요일에는 제자들과 종로 목포 집에서 삼합과 홍어찜, 막걸리 등으로 1차를 마치고 인사동에 있는 맥주집에 들러 2차를 하다가 나 먼저 일어났다.


그 전날에는 인사동에서 24명의 고교 동창들과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3-40대까지는 무척 바쁘게 자신만의 삶을 위해 살다가 40대 후반쯤 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살 날 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옛사람을 그리워하게 되는 것 같다.


그간 소식도 없던 친구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 모임을 갖는 게 어떠냐고 묻는 일이 잦아지는 걸 보면 그렇다. 사람들 모두의 시간을 맞추기 어려운지라 24명의 친구들이 참석한 것은 대단한 것이었고 친구들도 너무 흡족해했다. 이제는 직장에서 밀려 나는 때인지라 더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제자들을 만나는 기쁨은 친구들과의 만남과는 아주 색다른 것이다. 세계적인 성악가인 마리아 칼라스는 아무리 실력 없는 연주가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게 마련이란 말을 했다. 나 또한 제자들을 통해 이제 배워나가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다만 제자들이 나를 죽어도 따라오지 못하는 것은 연륜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세월을 통해 얻은 세상사에 대한 관조와 미래를 읽는 능력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대단히 유쾌한 자리였다. 그날 참석한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05.9.4, 사람을 만나는 기쁨>


나는 후배들에게 세상사를 살면서 실력이 정말 중요하지만 사람을 사귀고 그들에게 신뢰를 얻고 그들을 자신의 자산으로 삼는 것만큼 중요한 실력도 없다는 말을 누누 히 강조하였다. 살다 보니 학교에서 배운 지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인간관계를 잘 헤쳐 나가는 능력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는 생각을 매일 하기 때문이다. 어려울 때 달려와 줄 친구나 이웃, 직장 동료가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말에는 불의에 적당히 눈감고 출세를 위해 상사에게 아첨하며 살아가는 처세술에 능한 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정의를 내세워 사사건건 남들과 부딪혀 싸워 적을 만드는 자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사는 자기 생각만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한 길만을 굳세게 고집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늦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지혜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2005-10-19. 실력이라는 것>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가 많다. 이러한 경우 그 사람이 가진 가치관이 행동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지만 현실과 원칙 사이에서 고민을 해야 할 때가 있어 곤혼스러울 때가 허다하다. 그런데 마흔일곱 해를 살아오며 내가 내린 결론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 현실을 택하는 것보다 명분도 서고 나중에 더 큰 실리를 가져다준다는 점이다. <2005-5-11, 원칙을 지키는 것이>


새해에는 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뭉텅이로 다가오기 간절히 바란다. <2006-1-1>


세월이 가면 다리에 힘도 빠지고 얼굴에 주름살도 생기고 기억력도 감퇴된다.


그런데 무엇보다 시간이 매우 빨리 가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면서 추억이 새로워지고 옛사람들이 그리워진다는 점이다.


아직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느라 바쁜 여러분들에게는 그리 와닿지 않는 이야기일 터이지만 곧 그것을 실감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은 이 방의 열기가 식어 버렸지만 하나둘씩 이 방을 찾아 노크하며 근황을 전하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라 믿어 본다 <2008-3.5. 세월이 가면>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는데 어제 밤늦게 탄 택시 기사님은 죽을 맛이라 하더라. 더 이상의 말은 않겠다. 밤이 깊으면 새벽은 그만큼 더 가까이 온 법이다. 모두들 힘내기 바란다. 나도 힘내서 열심히 연구하며 열심히 가르치려고 한다. 모두들 힘들더라도 즐거운 한가위 맞이하기를. <2008-9-7. 우울한 한가위>


최근 연예인들의 자살을 보며 그리고 현 경제적 위기 상황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도대체 산다는 게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산다는 말 앞에는 으레 ".....으로 산다", 또는 ".... 답게 산다"와 같이 수식어구가 붙는 게 일상적이다. 예를 들어 교수로 산다는 것, 교수답게 산다는 것, 혹은 부모로서 산다는 것, 부모답게 산다는 것과 같은 말이 그러할 것이다.


그만큼 산다는 말에는 아무리 자신의 삶이라 할지라도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할 수 없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얼마나 힘들면 죽음을 택했을까 하는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겠지만 자신의 죽음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받을 고통에 눈감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자식을 놓아두고 떠난 어느 연예인의 죽음이 그렇다. 악성 댓글의 폐해야 두말할 나위조차 없지만 연예인은 공인이고 그 정도의 댓글에 단련되어 있지 않으면 팬들의 사랑을 받는 공인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른다. 


 (중략) 


하지만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기 전에 저승보다 이승의 삶이 더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이유도 생각해 보고 자식의 입장, 부모의 입장 등을 다각도로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세상이 너무도 원망스럽고 힘들더라도 반드시 살아갈 방도는 있다는 것이 내 경험칙이다. 자식 죽은 부모 심정보다 10개월 같이 산 부부의 정이 더 깊을까? 시부모를 오해의 늪에 빠뜨 렸다면 그러한 부모 심정을 헤아려 만나 설득하고 같이 부둥켜안고 울어 주어야 옳은 것이 아닐까?... 세상에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만큼 큰 실력도 없다. <2008-10-14. 산다는 것>


나이 40이 넘어가면 우리 몸 어디서든 고장 신호를 보내기 마련이다. 자동차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여러 곳이 망가지고 새 부품을 교체해 달라고 하지 않던가 말이다. 그러나 자동차야 언제든 새 부품으로 갈아 끼우면 될 일이지만 인간의 몸은 그러한 장기를 쉽게 구할 수 없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줄기세포 등 대체 장기를 고대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이다.


자동차도 주인을 알아보는 법이라 갈고 조이고 닦으면 수명이 오래가듯이 우리도 열심히 운동하고, 소식하고, 거칠게 먹을 일이다. 그런데 그게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니 욕심을 줄이고 유유자적할 필요가 있다. 화나는 일이 있어도 툴툴 털어 버릴 수 있는 담대함이 요구되는 데 나부터 그게 잘 안되니 문제이다. 정치인들 또한 국민들의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여 주어야 하는데 오늘 아침 빅마우스 한 분이 또 사고를 쳤다. 대통령은 그런 분이라 치더라도 야당 국회의원들을 모두 사이코패스로 몰아 버린 진정한 사이코패스가 있었으니..... 웃기라도 하자.   <2009-1-31. 어떻게 살 것인가?>


사회적으로 참 시끄러웠던 한 해다. 좌절을 느낀 한 해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역사에 대해 항상 긍정적이다. 여러분의 2010년도 긍정적인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2009-12-31.2009년을 보내며>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고 나는 나이가 들수록 그 말이 갖는 의미와 위력을 실감하고 산다. 지금 당장 어려운 일도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잊히고 또 다른 일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만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제 자신의 방안에 자기를 가두어 놓아서는 안 된다. 어렵고 힘들수록 밖에서 길을 찾는 것이 좋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스쳐가는 말 한마디에서 길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언제든지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다오. <2010-7-18. 힘내라>


나이가 들면 왜 추억에 잠기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이들은 남은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으니 미래에 더 관심을 갖는 반면에 나이 든 사람들은 살아온 날이 살 날보다 더 많고 미래라는 것에 대한 possibility가 적다 보니 미래보다 자꾸 지나 온 과거에 더 집착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너희들도 나이를 먹는가 보다. 나를 찾으니 말이다. <2010-9-24. 추석 잘 보냈는지?>


l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선생님이 싸이월드에 올리신 글 중에 <감명 깊었다고 생각되는 글을 스승의 날을 맞아 발췌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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