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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리를 찾아서 May 16. 2023

니 애비 보러 가자

5월 17일은 할아버지의 생신 날이다.

나는 항상 생신 전날 친가로 방문하여 다음날 아침식사에 할아버지께 술 한잔으로 생신을 축하드렸다.


하지만 2009년 고등학교 졸업반이었고 바쁘다는 핑계로 생신 전날 방문은 미루고 17일 당일날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다음날 새벽 일찍 나는 할아버지 댁으로 향했고 나를 보자마자 당신께선 "00아 니 애비가 보고싶다. 니 애비 보러 묘지로 가자!"라고 하셨다.



북한은 주 이동수단이 자전거이지만 연로하신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시거나 태우고 이동하기엔 위험하다.

그래서 걸어서 가야하지만 우리 아버지의 묘는 젊은 사람 기준으로 도보 2시간 거리에 있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못 가신다고 한사코 말렸지만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그렇게 걷고 걸어 나의 아버지이자 당신의 아들의 묘비 앞에 섰다. 할아버지는 아버지 묘소를 한번도 오신 적이 없었기에 오랜만에 마주한 3대의 오붓한 시간이었다.


아버지의 머리 맡에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있었고 앞으로는 붉은 해를 업고 마치 자기가 최고의 푸른색이라고 할 듯한 동해바다가 있다.



시도때도 없이 들리는 갈매기 울음소리.

어부들을 대변하듯 짙게 풍기는 엔진 기름 냄새.

전기줄 위에 참새들처럼 길게 늘어선 수평선 위 낚시 배들.



그곳에서 3대가 마주 앉아 소주 한잔씩 기울였다. 어느덧 해는 서쪽에 크게 있었고 나는 빨리 하산 해야 한다고 할아버지를 다그쳤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한시간만 자고 가자고 하셨고 내가 여러차례 만류해도 끄떡 없으셨다.

그런 실랑이를 얼마나 했을까..해는 이미 산등선을 넘어 보일락 말락했고 결국 나는 혼자 하산하게 되었다.


그렇게 눈을 떳을 때 새벽 4시쯤 이었다. 느낌이 이상했고 등골에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바로 일어나 할아버지 댁으로 페달을 달렸고 내가 꿈을 꾸었던 시간에 할아버지께서 영면에 드셨다.



할아버지는 나를 통해서 아들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손자의 꿈을 통해 당신의 아들과 현세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날 이후 내 꿈에 한번을 나오지 않으셨지만 나는 그날 나의 꿈을 잊을 수가 없다.


아마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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