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면

2021. 12. 16.

by midsunset


밤새 비가 내렸다.

아침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나서 창문을 열어두니 집안 공기가 상쾌하고 맑아졌다. 베란다 샷시에 맺혀있는 동글동글한 물방울들을 구경하다가 아파트 화단의 나무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초록은 더욱 초록으로, 나뭇가지들은 더욱 진한 갈색으로 젖어있다. 새들의 지저귐이 유난히 경쾌하다. 연일 건조했던 날씨에 단비가 내렸다고 서로 반가워하는지, 짝짓기 시즌이라도 된 건지 종이 다른 나는 아무래도 모를 일이다.


날씨와 계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라 서늘하고 가라앉은 날에는 많은 것들이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지나간 시간들, 복잡했던 인간관계, 소란스럽던 말들, 뒤척이던 새벽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던 생각들, 머물고 고이던 타인의 시선이 나의 주위를 맴돈다.


시원한 바람을 한껏 들이마시고 가슴을 펴면, 조금은 객관적이고 단순한 관점으로 나를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 그리 무거울 필요도, 그리 복잡하게 고민할 필요 없이 가장 지켜야 하고 지키고 싶은 것들을 한가운데 놓고 주위 정돈을 시작한다.


마음 정돈을 차곡차곡 마쳐가면, 미뤄뒀던 집안일과 청소가 하고 싶어진다. 세세한 작은 고민들은 굉음을 내는 청소기를 움직이는 동안 같이 빨려 들여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미쳐 빨려 들어가지 못한 남은 얼룩과 실먼지는 물걸레로 박박 닦아버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존재를 크게 인식하지 못한 둥둥 떠다니던 잡생각들은 맞바람이 불게 잘 열어 둔 창문 틈 사이로 날려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비가 그치고 공기가 깨끗하고 맑은,

너무 춥지 않은 어느 겨울날의 아침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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