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

2021. 12. 27.

by midsunset


제주도에 내려오기로 결정할 때쯤만 해도 코로나의 ‘코’ 자도 문제가 되지 않을 시기였다. 아이와 국제학교 인터뷰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내려왔던 초겨울의 어느 날, 차가운 바닷바람에 콧물감기라도 걸릴까 싶어 아이만 마스크를 착용시켰었다. 그때는 그냥 약국에서 구입한 뽀로로 천 마스크를 썼고 나는 마스크를 하지 않은 채로 이곳저곳을 다녔다. 인터뷰를 같이 보는 친구들과 엄마들의 얼굴도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하고, 덕분에 기억에 남은 이들과 인연이 되어 등교 후에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설 명절을 보라카이에서 보내기로 정해놓고 여행을 떠났을 때 코로나 바이러스는 뉴스의 한 부분을 채우기 시작했다. 일부의 사람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변함없이 마스크 없는 생활을 했다. 지나가는 독감처럼 여겼던 터라, 혹시 모르니 마스크를 넉넉히 구매해서 챙겨 여행을 다녀왔다. 마스크를 꽉 낀 채 돌아다녔지만 그래도 여행을 즐겼다. 보라카이에 다녀와서 공항에 도착했을 때 열감지 시스템을 지나왔고 신천지 교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속출하고 뉴스는 온통 방역과 확진자의 동선 공개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내용으로 가득 찼다.


아이의 학교 입학을 앞두고 제주로 이사를 왔을 때 세상은 코로나에 묻혀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어디도 출입할 수 없었고, 확진자가 나오면 동선을 체크하며 불안에 떨었다. 같은 반 친구가 누구인지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로 아이는 등교를 시작했다. 근처에 확진자가 발생하면 등교는 중단되고 온라인 수업을 진행했다. 줌을 이용한 수업을 할 때 비로소 담임 선생님과 아이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라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지만 걸음걸이나 인상착의, 눈매와 목소리로 엄마들의 얼굴을 구분했다. 멀리서 보여도 아는 이에게 손을 흔들고, 소리로 서로의 웃음을 감지하며 일상을 지냈다.


큰맘 먹고 외식을 하는 날에는 식사시간을 피해 한적한 식당의 창가 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사방이 트인 바닷가를 거닐 때 비로소 마스크를 내리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마스크를 쓴 채로 운동을 하고, 미용실에 다녀오고 병원을 드나들었다.


쉬이 지나갈 줄 알았다. 잠깐의 유행일 줄 알았다. 이 시간이 지나면 그때 참 힘들었노라, 웃으며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어느새 익숙해졌다고 할 만큼, 이 정도면 유행이 아니라 그저 시작이 있었다고 기억될 정도의 오랜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마스크를 자주 쓰니 화장을 하지 않는 날도 많고, 모자라도 쓰면 얼굴이 거의 드러날 일이 없어 기분 내어 꾸미지 않는 날이 많아져간다. 만나기 불편한 사람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핑계 삼아 약속을 미루고, 가끔 너무 보고 싶은 사람도 전염의 위험성으로 서로 피해를 줄까 싶어서 만남을 미뤄둔다.


언제쯤 예전 모습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백신 접종도 완료했고, 치료제에 대한 기대도 주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하루하루 가족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분명한 것은 이 일기가 오래 지나 그땐 그랬지, 하며 회상하는 글로 읽히는 날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란다는 것이다. 별일 없이 산다는 것이, 별 걱정 없이 산다는 것이 꽤나 큰 욕심이자 바람이라는 것을 매일, 새삼 유난스럽게 느끼고 있다.


코로나야, 제발 좀 사라져라, 훠어이.


(코로나는 그저 맥주 이름이었던 시절의 사진을 한 장 덧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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