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25.
아주 어렸을 때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가진 어떤 시련이 특별한 관심을 얻는 일이 된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던 때가 있다. 친구들과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속상한 일이나 슬픈 일을 이야기한 친구에게 모두의 관심이 모이고 그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다른 친구들이 잘해줄 때 나는 묘한 질투를 느꼈다. 내게도 속상한 일이 생기고 마음 아픈 일이 일어나서 관심과 애정을 한 몸에 받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아주 작은 아픔도, 지나버린 속상한 일도 꼭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엄마한테 혼난 일, 물건을 잃어버린 일 등, 친구들은 서로 앞다투어 자신의 아픔을 말하고 위로받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어리고 어리던 그 친구들의 착한 마음을 가끔 떠올린다. 연필로 꾹꾹 눌러쓴 힘내라는 글씨가 적힌 쪽지, 손에 쥐어주던 콜라맛 사탕, 문구점 게임을 한 번 더 할 수 있는 메달이라 부르던 금색 동전.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 사춘기라 부르는 시기에 들어섰을 때, 어린 시절과는 달리 각자의 아픔의 종류와 크기가 다양해지고 그것을 향한 시선과 마음도 다양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떤 아픔은 여전히 위로받고 다독여지지만, 어떤 아픔들은 차갑게 외면받고, 어떤 아픔은 더 아픈 화살이 되어 마음을 찌르고, 어떤 아픔은 절대 말할 수 없거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갔다. 아픔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때로 친구가 내게서 멀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것도. 나 역시 나의 아픔을 꺼내기가 두려워지고, 친구의 아픔을 다독여줄 수 없어서 외면하거나 도망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공식적인 성인의 나이에 가까워지면서 고민, 시련, 좌절 등과 같은 내면의 생각들은 눈치게임을 시작했다. 이것을 말한다면, 혹은 말하지 않는다면, 가깝게 지낸 이가 그것을 위로해줄지 혹은 나를 멀리하게 되는 이유가 될지.
사실 나는 그때까지는 아픔을 가진 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픔’이라는 단어 속에 각종 속상한 문제들을 담아본다면) 아픔이 있는 사람인지, 아픔이 없는 사람인지 두 가지로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 아픔을 밖으로 굳이 꺼내는 사람은 아픔이 있는 사람, 그것을 굳이 언급하지 않으면 아픔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 단순하게 믿고 싶어 했다. 내 눈에 그 무렵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과는 반대로 아픔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인기를 얻고 관심을 받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의 아픔을 알게 되어도 떠나지 않고 변함없이 애정을 주는 사람을 만나면서 지나온 감정들과는 다른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됐다. 나 역시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알게 되어도 도망치거나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고 위로해주고 다독여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을. 오랜 시간을 지나고 지나 아픔이 있어도 괜찮다는 말을 서로에게 할 수 있는 특별한 관계가 생기는 것이 사랑이고 그것이 꽤 위대하다는 것을.
사실은 요즘 ‘그 해, 우리는’이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각자가 지닌 아픔이 시기마다 사람들과 만든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해보게 됐다. 다른 무엇보다, 주인공들이 서로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에 ‘아픔이 있어도 괜찮아’라는 말이 들어있는 것 같아서 그 드라마가 유난히 애잔하고 따뜻하다.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여전히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인연들은 그런 관계 속에 있었던 것 같다. 직접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지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아픔이 있어도 괜찮아’라고 토닥여주는 관계. 한 때 혹은 오랫동안 그런 관계 속에 내가 속해있다는 것이 불규칙적이지만 수시로 가슴을 몽글몽글 따끈하게 물들인다는 것을, 그것이 내게 또 다음의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 다는 것을 마흔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인생 참 재밌다. 오십에는 무엇을 또 알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