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살 것인가

2022. 1. 30.

by midsunset


(제목을 쓰면서 유명한 작가가 쓴 책 제목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그이만큼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라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참 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본디의 주거지가 아주 오랫동안 한 곳인 사람들이 있고, 나처럼 도통 한 곳에 잘 머무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어릴 때 틈만 나면 돌아다니고 싶어 해서 외할머니가 ‘저 아이는 역마살이 있나’ 하셨을 때 그게 무엇인지 몰라 ㅇㅇ맛살과 같이 맛있는 것이냐고 엄마에게 묻기도 했었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를 읽을 때는 가슴이 얼마나 설레고 아렸는지 모른다. 가끔은 이러다 팔도 유랑단 같은 곳에 들어가는 게 아닐까 싶어질 정도로 가 보고 싶은 곳이 많아서 학창시절 뷰티잡지보다 여행잡지를 끼고 살았다. 늘, 여기 갈까 저기 갈까 생각을 하는 일만으로도 신바람이 불고 엉덩이가 들썩거려서 시기 미정의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자 일탈 방식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고 집에서 빈둥대는 일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도 너무 좋은데, 사실은 늘 그렇기를 꿈꾼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보면 안정감 속에 변화를 기대하는 재미를 놓칠 수 없어서 호기심과 갈증이 마르지 않도록 늘 탐색하는 인생이다.


대학생 때 잠시 호주에서 지냈던 시절에 가장 좋았던 일 중의 하나가 내가 원래 지내던 곳을 그리워하는 일이었다. 얼마나 이상한가, 윤슬이 너울대는 시드니의 항구 앞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보고 싶은 친구에게 엽서를 쓰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낭만적이고 멋있어서 심장이 마구 뛰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엽서에도 썼다. 나 지금, 이런 내가 너무 마음에 들어. 하하하하하하.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는, 그곳을 그리워했다. 떠나고 싶고, 떠난 곳을 그리워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 제주에 있다. 딱히 이것이 나만을 위해, 내 갈증으로 인한 극적인 변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살아보고 싶다고 꿈꿔온 곳이다. 어찌 되었건 이삼십 대를 지낸 서울을 떠나 이곳에 있다. 제주 생활을 시작한 지 2년 남짓의 시간이 흐르고, 가끔은 그리움이 밀려온다. 가족들과 노을이 지던 한강변을 걷던 시간, 친구들을 만나 속사포로 수다를 쏟아내고 돌아오던 밤들, 가까이 살던 친척들과 함께 하던 시간, 익숙한 얼굴을 자주 보며 생활하던 동네의 산책길과 가게들이, 아주 넓은 바다 건너에, 당장은 달려갈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이 그리움이 간절한 날에는 실감이 난다.


다시 들썩거린다. 개인적으로 다시 또 변화를 고려해볼 만한 계기가 충분히 있었기도 하고, 나 역시 또 어디에 살아볼까, 들썩이고 싶은 때였다. 충동적인 결정은 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신중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런 생각을 품고 사는 요즘인데, 운동하러 가는 곳 가까운 바다를 지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예쁜 에메랄드색 바다를 보고 싶은 날 못 보게 되는 것은 너무 아쉬울 것 같네, 하는 생각. 언제든지 이런 멋진 곳에 달려올 수 있는 대단한 곳에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과연 이곳을 떠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어딘가 가고 싶은데 이곳이 너무 좋은 이 고민의 끝은 무엇으로 결정될지 나도 모르겠다. 몇 년 후에는 어디에 살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늘 기대하며 살아온 것처럼, 그저 어딘가에서 또 변화를 꿈꾸며 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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