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 1. 31.

by midsunset


처음으로 명절 음식을 주문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 틈에 끼어 동그랑땡 만들고 산적 꼬지 끼워가며 깔깔 웃는 전 부치기를 즐기던, 약간은 특이한 취향의 나로서는 굳이 이 재밌는 것들을 남에게 맡길 필요가 있나, 했었다. 나의 시댁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데다가 지금은 제주에 있어서 여럿이 모여 음식을 준비할 일이 없는 명절을 맞이했는데 그래도 알록달록 명절 음식이 없는 것은 허전한데 혼자서 감당할 자신은 없어서 처음으로 명절 음식을 주문하게 되었다.


작년에 시켜봤는데 참 괜찮았다던 지인의 후기를 듣고 나도 꼭 주문해봐야지 염두에 둔 곳이 있었다. 시부모님께서 제주에 오실 예정이라, 넉넉한 양으로 주문을 했다. 어머님께 음식을 조금 주문해두었다고, 혼자 할 자신은 없고 그래도 명절 기분은 내고 싶어서 그랬으니 며느리가 손수 차린 것 아니라고 서운해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님께서는 요즘에 누가 명절에 음식을 하냐고, 너무 잘했다고 말씀해주셔서 마음이 편해졌다.


약속한 명절 전날이 되어 음식을 가지고 곧 도착한다는 사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셔서 점퍼만 걸치고 잠옷 바람으로 내려갔다. 머리가 희끗하고 눈가에 주름이 선하게 잡힌 할머니 사장님께서 주문한 것보다 좀 더 넉넉히 담았다고 하시며 음식 상자가 든 가방을 건네주셨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명절 잘 보내세요, 서로 인사를 나누고 들어와 상자를 열어봤다.


세상에, 이렇게 예쁘고 정성스러운 음식이라니, 처음 주문한 명절 음식이 만족스러워서 한참을 보고 있었다. 어머님께서 오시더니, 너무 예쁘다, 얘, 사진을 좀 찍어두자, 하시며 이건 음식 만드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 분이 만든 음식이구나, 하셨다.


내심, 직접 만들지 않고 주문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만든 것보다 훨씬 예쁘고 맛도 있으니 괜히 당당해졌다.


‘주문 감사합니다, 무엇이든 문의하시고, 건강하세요’ 하고 온 메시지에 ‘사장님, 음식 예쁘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참 좋은 명절이다. 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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