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밥먹고 삽니다 15

단단하지만 한없이 부드러운

by Mistral

그림책 <엘리엇의 특별한 요리책>의 주인공 엘리엇은 집 열쇠를 잃어버린 날 음식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이웃 스텔라 할머니를 만나 깊고 넓은 요리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간단하고 기초적인 조리법부터 근사한 한 상을 차려내는 방법, 한 가지 재료를 다양하게 조리하는 법뿐만 아니라 영양과 환경, 분배의 문제까지 알려주는 할머니. 엘리엇이 배운 건 그것만이 아니다. 할머니를 통해 함께 나누고 먹는 기쁨도 알게 된 엘리엇은 친구와 채소를 기르고, 이웃을 위한 만찬 모임을 만들고, 도시락을 꾸려 소풍을 떠나기도 한다.

이 그림책은 줄거리도 음식 레시피도 그렇지만 유럽 가정집의 풍경과 푸근한 할머니를 담은 일러스트 덕분에 늘 나의 한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내게도 이런 친구 같고 선생님 같은 할머니가 있었다.


카르멘 할머니는 스페인에서 지낸 일 년 중 세 달 동안 머문 하숙집의 주인 할머니다. 스무 살에 결혼한 할머니는 자식도 없이 한량에다 지독한 마초, 카사노바에 축구광인 남편 뒤치다거리에 평생 속을 끓이며 살았다. 그나마 할머니의 숨 쉴 구멍은 자신의 집에서 머무는 각국의 하숙생들을 재우고 먹이는 일이었다.

할머니의 집은 말라가 시 중심가 라리오스 거리와 말라게타 해변, 메르섿 광장과 피카소 미술관을 걸어서 10분 내에 갈 수 있는 구 도심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다. 위치 보다 더 매력적인 건 ‘솜씨 좋은 주인 할머니가 요리한 스페인 전통 세 끼 가정식’이었다. 그러니 ‘놀기도, 먹기도 좋은’ 집인 것.

한데 세 끼 밥값을 포함한 하숙비가 너무 비쌌다. 고민 끝에 나는 한 끼만 하숙집 밥을 먹는 것으로, 그 한 끼는 조식(早食)의 민족답게 아침을 선택하기로 했다. 점심이야 어차피 학교에서 먹게 될 테고 저녁에는 사람들과 어울리느라 건너뛰는 날이 많을 것이므로. 그렇게 선택하자 한 달 하숙비는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시절은 바야흐로 IMF 외환 위기였고, 아빠가 돌아가신 직후였으므로 돈을 아껴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던 때였다. 경제적이고도 합리적이라 자부한 이 선택이 대단한 오판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할머니의 집에 도착한 지 불과 24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1999년 12월의 어느 토요일 1시, 온갖 짐을 이고지고 첫발을 디딘 카르멘 할머니의 하숙집. 무표정에 무뚝뚝한 할머니의 첫 인상에 나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방에 대충 짐을 부려놓고 침대에 몸을 던졌는데 구수한 음식 냄새가 풍겨왔다. 홀린 듯 냄새를 따라 간 곳은 할머니의 거대한 주방이었다. 거실만큼 넓은 주방에는 가스레인지와 화덕과 오븐이 차례로 놓여 있었는데, 화구마다 음식들이 끓고 있었다.

‘점심 먹는구나!’

재빨리 거실로 이동했다. 하얀 자수 식탁보가 깔린 거대하고 오래된 식탁 위로 은 식기와 냅킨과 크리스탈 저그가 차례로 놓이더니, 이내 할머니가 처음 보는 갖가지 음식들을 들고 나타났다.

“멀리 오느라 수고했다. 여행하느라 몇 주 동안 제대로 못 먹었지? 너는 아침만 신청했지만 첫날이니까 우리랑 같이 점심을 먹자꾸나.”

내심 기대하고 있던 이런 말은 …… 없었다.

“점심은 어디서 먹을 거니? 이 건물 1층 바의 점심 메뉴도 나쁘지 않을 거다.”

아, 그곳은 밥 인심 넉넉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었다. 돈을 낸 만큼만 밥을 주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아무렴 어때. 점심이 저 정도면 아침은 말해 뭐해. 내일 아침에 배부르게 먹으면 되지.


다음 날 아침, 그 거대하고 오래된 식탁에 차려진 아침상을 보고 나는 눈을 비비고 또 비빌 수 밖에 없었다. 하얀 자수 식탁보와 은 식기, 크리스탈 저그는 그대로이건만 그 위로 놓인 것은 걸쭉한 초콜릿과 바짝 튀긴 추로스, 과일 뿐이었다. 어젠 분명 여덟 명이었는데 식탁에 앉은 사람도 나와 브라질 하숙생 브루냐 달랑 둘뿐이었다.

“아침도 코스 요리야?”

“코스 요리?”

“왜 이것 밖에 없어? 어제 점심이랑 저녁이랑 너무 달라서.”

“아침은 원래 이래. 수프랑 빵 아니면 과일이나 샐러드 정도인데, 오늘은 할머니가 너 새로 왔다고 특별히 추로스 튀긴 거 같은데?”

아뿔싸, 그제야 문화사 시간에 배운 내용이 생각났다. 스페인의 정찬은 점심이고, 아침은 건너뛰거나 카페나 바에서 최대한 간단하게 먹는다고. 브루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덟 명의 하숙생 중 아침을 먹는 건 우리 둘 뿐이고, 점심을 안 먹는 건 나뿐이라고 했다.

아침 대신 점심을 먹는 것으로 바꿀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 화려하고 근사한 밥상은 아침상과 저녁상을 합친 것보다 비쌌고, 점심을 먹으려고 학교에서 집까지 오가는 교통비도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이 정도 아침상이라면 카페에서 먹는 것이 돈을 아끼는 길이겠다 싶어, 결국 일주일 뒤 나는 할머니에게 아침도 먹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주방을 쓰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한국에서도 스스로 밥을 지어 먹었으니 이곳이라고 못할 소냐. 나는 매일 아침과 약속이 없는 저녁, 주말의 밥을 직접 지어 먹기 시작했다. 혼자 사는 집이 아니라 양념이 강한 한국 음식을 해 먹을 수도 없고 비싼 재료를 맘껏 살 수도 없으니 매끼 단조롭고 간소한 음식이었지만 마음과 주머니 사정은 편했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을 때 할머니가 한 가지 제안을 해 왔다. 알뜰하게 생활하는 것도 좋지만, 스페인에 왔으면 이곳의 식문화도 충분히 즐기고 한 집 사는 사람들과 안부도 나누어야 하지 않겠냐고. 주말에 찬거리를 사다 주고 요리를 도와주면 주말 이틀의 식사를 제공해 주겠노라고.

돈도 아끼고 말도 늘고 요리도 배울 수 있는 일석삼조의 기회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주말 아침마다 식재료 목록을 들고 식료품점과 시장, 백화점을 드나들었다. 익숙한 재료와 다 아는 말, 똑같이 생긴 사람들로 가득한 서울의 시장이 불편했던 스무 살의 나는 어디로 가고, 생경한 재료와 그보다 더 낯선 단어들, 동양인이라고는 나 혼자임에도 이국의 시장을 즐기는 스물둘의 내가 그곳에 있었다.

장보기보다 더 즐거운 것은 요리하는 시간이었다. 커다란 오븐과 화덕에서 음식이 지글거리며 익어가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흥분과 수십 가지 생소한 향신료 냄새가 주는 몽롱함, 레스토랑에서 한두 번 먹어본 음식이 눈앞에서 만들어지는 짜릿함, 익숙한 재료가 낯선 맛과 모양의 음식이 되었을 때의 놀라움, 그 음식을 예쁘게 담아 차려냈을 때의 뿌듯함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어려서는 큰 식당집 딸로, 나이 들어서는 이십 년 넘게 하숙집을 운영하며 하루도 요리를 쉬어 본 적 없는 할머니는 요리 초보인 나에게 실력과 인내심을 두루 갖춘 선생님이었다. 주방에서 만난 할머니는 평소와는 달리 다정하고 수다스럽고 마음 여린 여자였고, 내 어리고 서툰 고민을 조용히 들어 주던 사려 깊은 상담자이기도 했다. 할머니의 아들 같고 손자 같은 알레한드로가 나를 질투할 정도로 우리는 짧은기간이지만 차곡차곡 음식과 이야기와 우정을 쌓았다.


스페인하면 떠오르는 음식인 간단한 타파스부터 파에야나 가스파초, 상그리아까지, 할머니에게 배운 음식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도라다 아 라 살’, 우리말로는 도미 소금 반죽 구이 정도가 되겠다. 그간에 배운 음식들은 한번쯤은 먹어봤거나 누군가에게 들어봤거나 책이나 식당에서 본 적이라도 있었는데, 이건 셋 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게다가 할머니는 결혼하기 전날 친정 어머니가 해 준 특별하고 애틋한 요리라고 하며 내 기대를 잔뜩 부풀렸다.

기대만큼 공도 많이 드는 음식이었다. 장보기부터 쉽지 않았다. 손질도 안 된 커다란 흑도미 다섯 마리와 도미 무게만큼의 소금을 양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기분이란. 할머니는 늘 손질 안 된 생선을 사다가 직접 해체쇼를 벌였는데, 신선도와 위생 때문이라고 했다. 주방에서는 늘 다정하고 섬세하다가도 고기나 생선 앞에서는 언제나 전사 같았다. 동그랗게 눈을 뜬 도미 오 총사의 억센 등지느러미를 도려내고 비늘을 정리하고 배를 갈라 주저 없이 내장을 꺼내는 모습은 보지 않는 편이 좋을 뻔했다. 그 사이 엄청난 양의 굵은 소금에 수십 개의 달걀 흰자를 섞어 촉촉하게 만들고, 커다란 오븐 팬에 그 소금 반죽의 반을 평평하게 까는 것은 내 몫이었다. 생선 요리라고는 구이 아니면 조림 정도만 먹어 본 나로서는 도대체 무슨 음식이기에 이 소금을 다 쓰나 궁금했다. 할머니는 한참 화이트 와인에 담가둔 도미를 꺼내 배 사이사이에 월계수 잎과 레몬 조각을 차곡차곡 넣고는 소금 위에 나란히 도미를 올렸다. 그러고는 마치 눈 축제의 조각상인 양 남은 소금으로 도미를 모양 그대로 덮고 단단히 다졌다.


소금 옷을 입은 도미 오 총사는 이십여 분의 불가마 찜질 끝에 점심 식탁에 올랐다. 그날 식탁에는 나이프와 포크, 스푼 말고도 도구가 하나 더 올라왔는데, 그건 바로 딱딱하게 익은 소금 반죽을 깨기 위한 작은 나무 망치였다. 망치로 탕탕 한참을 두드려 소금 반죽을 깨고 도미 껍질을 벗기자 뽀얀 속살이 드러났다. 기름기와 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도미살은 레몬과 월계수 덕분에 비리지도, 소금 옷 덕분에 싱겁지도 않았다. 구운 감자와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먹은 그날의 부드럽고 담백한 도미는 지금까지도 혀끝에 그 식감과 풍미가 맴돈다.

이 음식을 잊을 수 없는 건 온갖 풍파로 겉은 단단하게 다져졌지만 속은 한없이 여린 카르멘 할머니 같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그날이 하숙집에 머무는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갑내기였고 옆방을 쓰고 같은 수업을 듣던 브라질 친구 브루냐와 나는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이십 분쯤 가면 나오는 바닷가 바로 앞의 아파트를 구해 살기로 의기투합했다. 주방에서 요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할머니보다는 바와 클럽에서 함께 술 마시고 춤추는 또래 친구가 더 좋았던 스물두 살이었다.


그렇게 카르멘 할머니와 보낸 세 달을 뒤로 하고 아홉 달을 더 말라가에 머물면서도 나는 한 번도 할머니를 찾아가지 않았다. 다음에, 다음에 하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인사도 없이 한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뒤로도 출장길이나 여행길에 들린 스페인에서 말라가와 할머니의 집은 늘 후순위로 밀려났다. 그렇게 한동안 잊고 있다가 스페인 음식을 할 때마다, 한 번씩 꿈을 꿀 때마다 카르멘 할머니가 궁금해졌다. 현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금세 소식을 알 수 있겠지만 그간에는 안부를 챙기지 못한 게 죄송해서, 이제는 세월이 너무 지났다는 게 두려워서 차마 알아볼 수가 없다.


바다 건너든 하늘 너머든 나의 안부가 이 글로 전해지기를 바란다. 인사 못 드리고 와서 죄송하다고, 요리 가르쳐 주셔서 고맙다고, 어디서든 평안하시라고, 할머니처럼 겉은 단단하고 속은 부드러운 사람이 되겠다고, 올해 겨울에는 아주 오랜만에 도라다 아 라 살을 만들어 보겠다고.


*이글을 쓴 해 겨울에 나는 도라다 아 라 살을 해 먹었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도 전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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