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stral Jun 08. 2024

그림책으로 밥 먹고 삽니다 7

세상의 모든 배고픔이 사라진 날

  

알맞게 산다고 샀는데 해먹을 만큼 해먹었는데, 냉장고며 냉동실이며 수납장에까지 남는 식재료가 한가득이다. 냉장고 털기를 주기적으로 하고 기간이 임박한 신선 식품들은 다듬어서 냉동실에 얼리고 저장 식품들도 최대한 활용해 보지만, 결국 못 먹고 버리게 되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음식 버리면 저승에서 천벌 받는다고, 버린 음식 지옥 가서 다 먹는다는 어른들의 협박에 코웃음을 치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그 협박을 내 아이에게 하는 어른이 되고 보니 이건 전혀 코웃음 칠 일이 아니었다.

밤낮없이 일해도 당장의 끼니 걱정을 하는 고단한 삶, 총성을 피해 주린 배를 움켜쥐고 바다를 건너는 위태로운 삶, 배고픔에 잠 못 드는 어린 삶들 앞에서 넘치는 식재료와 음식을 쉽게 버리고 화려하고 다양한 음식으로 소셜미디어를 장식한 내 심장은 아누비스의 저울 위에서 얼마나 무거울 것인지.


“엄마 배고파요, 일어나요.”

이보다 더 양육자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모닝콜이 있을까. 그림책 <세상의 모든 돈이 사라진 날>은 이렇게 시작한다. 퀭한 눈과 텅 빈 찬장, 한 푼도 남지 않은 저금통이 이들 모녀의 고달픈 생활을 짐작케 한다. 마지막 식빵 한 조각으로 배를 채운 모녀는 이런저런 놀이를 하며 버텨보지만 배고픔을 이겨 내기란 쉽지 않다. 긴 하루 끝에 모녀는 푸드 뱅크로 간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 그리고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살아 내야 하는 엄마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지만, 음식도 대화도 고픈 어린이의 표정은 그 어떤 놀이를 할 때 보다 밝다. 푸드 뱅크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고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꿈꾸며 잠자리에 드는 어린이와,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웃는 얼굴로 어린이를 다정하게 보듬어 주는 엄마의 모습에 가슴께가 뻐근하다.


모녀가 이렇게라도 기댈 곳이 있으니 그걸로 행복한 결말인 건가. 좋아하는 시리얼을 찾는 어린이에게 책 속 봉사자가 건넨 한 마디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마음 좋은 사람들이 가져오는 것만 나눠 줄 수 있단다.’

요리쇼나 먹방 프로그램에 나오는 스타의 냉장고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진귀한 식재료들이 등장하고, 소셜 미디어에서는 소비하는 음식으로 안락한 삶을 과시하는 포스팅이 줄을 잇는다. 시장이나 마트에서는 수십 수백 가지 식재료 앞에서 무엇을 살까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가득한데. 왜 책 속 어린이는 고작 좋아하는 시리얼 한 상자도 가져올 수 없는 걸까?


푸드 뱅크는 식품을 생산하고 판매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남는 먹거리들을 소외 계층에 지원하자는 취지로 1960년대에 미국에서 생겨난 단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생겨났고, 지금은 450여 개나 되는 푸드 뱅크가 운영되고 있다. 저소득층이나 독거 노인, 이재민이나 난민 등 사회 취약 계층이 이곳에서 음식과 생필품을 무상으로 공급받는다.  


푸드 뱅크를 채우는 물품들은 일부 제조나 유통 기업의 기부에서 비롯된다. 생산 단계에서부터 기부를 계획하는 착한 기업이 있는 반면, 그야말로 버리자니 아깝고 유통하자니 기한이 임박한 재고 물품을 제공하는 기업도 많다. 개인 기부도 가능하지만 아직은 미국이나 유럽처럼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다. 나조차도 푸드 뱅크에 개인 기부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러니 푸드 뱅크 진열장의 품목은 늘 한정적일 수밖에 없고, 고작 시리얼 한 상자를 향한 어린이의 작은 바람 같은 건 충족되기 힘들다. 게다가 이 품목들은 통조림이나 즉석조리 식품, 편의 식품 같은 가공식품이 대부분이다. 보관과 안전상의 문제로 과일이나 채소, 생선과 고기 같은 신선 식품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뜻있는 기업과 기관이 나서 환경과 품목 개선에 힘을 모으고 있음에도, 소박하지만 신선한 재료로 그때그때 따순 밥을 해먹고 싶은 이용자들의 장바구니를 다양하게 채우기란 아직 요원해 보인다.긴긴 감염병의 터널과 치솟는 물가 때문에 기부는 줄고 푸드 뱅크의 진열장은 비어 가고 이용자들의 밥상은 점점 작아져만 간다.


이제는 여가 활동이 되어 버린 식문화 속에서, 신선하고 새로운 재료와 맛에 열광하는 식문화 속에서 누군가는 최소한의 결정권도 통제당한 밥상을 받는다는 것이 씁쓸하다. 푸드 뱅크에서 음식을 구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최소한의 선택조차 사치인가. 내가 선택한 양질의 음식을 규칙적으로 즐겁고 든든하게 먹는 것이야말로 모두가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닌가.


식비를 조금 덜어 푸드 뱅크에 현금을 기부하기로 했다. 어느 양육자의 하루가 배고픈 어린이 걱정으로 채워지지 않도록, 어느 어린이의 밥상이 먹고 싶은 음식으로 채워질 수 있도록, 누군가의 밥상과 내 밥상이 그리 다른 모습이지 않도록, 내일이 오늘과는 다른 모습일 수 있도록, 세상의 모든 배고픔이 사라지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작가의 이전글 그림책으로 밥 먹고 삽니다 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