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겪은 말 같지도 않은 일들, 그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될 감정들을 느끼고 체감하며, 그것을 자기 세계로 재해석해 살아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작품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결코 배워서 되는 일이 아니다. 같은 경험을 해도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건 아니니까.
얼마전 모 작가님께서 내 글에 “유기농 작가”라는 댓글을 달아주셨다. 말장난처럼 붙인 말이었지만, 나는 그 표현이 너무 좋았다. 그 말을 보는 순간, 천연기념물처럼 조용히 숨어서 꾸준히 글을 써내려가는 어떤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나와 전혀 다른 입장과 처지에 있는 사람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줄 수 있다고 쉽게 믿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많이 아파본 사람이 가장 있는 그대로를 봐준다. 비뚫어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마도 타인이 자신을 그렇게 바라봐주길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학벌이 높다거나, 특정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믿는 태도는 안타깝다. 나에게 있어서, “모자라거나 불쌍해서 봐준다”는 식의 시혜적인 태도는 없다. 그럴 자격, 그러지 못할 자격은 필드 위에서 모두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믿는다. 책을 좋아하면 좋아할 수 있고, 클래식 음악을 사랑한다면 사랑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을 좋아한다고 해서 허영으로 가득 찬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내 주제에 다소 고급스러울 수 있는 것들에 매료되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전시를 하나 꼽자면, 2017년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테이트 누드전'을 맨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 곳에서 나는 루이즈 부르조아를 처음 만났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본 최고의 큐레이션이였다.
태어나 처음 사귄 사람은 프랑스인이다. 평균이라 말하기엔 조금 다를 수 있는, 묘한 배경을 지닌 사람이었다. 어쩌면 내 피아노는 지금쯤 도빌 어딘가의 오래된 호텔방에 머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독특한만큼 쉽사리 꺼내놓기 어렵다.
우리는 때때로 노르망디 바다에 갔고, 어느날 나는 그와 더이상 만나고싶지 않아졌다. 그렇게 그를 떠나기로 결심할 때, 내게 호텔방의 열쇠 하나를 건네주면서 그 곳에서 살지 않겠냐 제안했다. 내가 프랑스에 온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니였다. 그 무렵 나는 독일에서 방도 아직 정리하지 못한 상태였다.
도빌은 아름웠지만 썩 즐거웠던 기억 없다. 돌아오는 길 파리 동역에서 매번 울었다. 유럽에서 처음 사귄 친구, 첫 남자친구, 의미있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그렇게 유럽의 북서쪽 끝으로 향했다, 아시아 중에서도 동쪽의 끝자락, 한국의 정반대편으로. 그리고 글로스터를 거쳐 캠브리지 근방으로 옮겨갔고, 그러다 런던에 들렀다. 그리고 그렇게, 테이트 모던을 찾았다. 서울에서 처음 미술을 체험하게 했던 바로 그 전시의 원래 무대.
얼굴이 산산조각나서 울고있는 여인의 초상앞에서 멈춰섰다. <우는 여인>.
그렇게 피카소를 만났다.
아방가르드.
수치심과 연민, 원망과 그리움, 모멸감과 애착, 안도와 집착, 두려움과 환상, 실망과 미련, 혐오와 기대... 충돌하면서 공존 가능한 여인의 마음을 그렇게 치열하게 이해한 사람이 기어코 사람을 극단으로 내몬 뒤 고스란히 화면에 새겨 넣었다는 사실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피카소의 《우는 여인》은 전쟁의 고통을 표현한 작품이라 알려져 있지만, 내게는 여인의 고통만 보였다. 누군가는 내게 지나친 해석이고 그림을 볼 줄도 모르면서 무언가를 느꼈다고 착각한다 할지도 모른다- 아, 차라리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란다. 나는 대체로 배경지식 없이 작품을 먼저 감상하는 편이라,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느끼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것이 나름대로 감상의 자유이자 미학이라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중요한 감상 포인트를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늘 따라온다.
그래서 감상 후 그림에 대한 비하인드를 읽는데, 작품의 모델은 도라마르, 연인인 피카소에게 느끼는 감정을 다양한 얼굴로 조각내 박제한 것이 사실이였다. - 하지만 작가의 역량을 저평가하지 않는다 - 또 이 관계를 쉽게 윤리적 잣대로 판단하고 싶지도 않다.
실제로 유명세를 위해 뮤즈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여성이 많았으며 실상, 예술가의 뮤즈가 된다는 것은 유명세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고, 도라 역시 피카소 못지않게 상황을 이용할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피카소의 작품들에서 성윤리에 어긋나는 노골적인 폭력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만약 그가 정말 혐오스러웠다면, 도라에게 그를 떠날 선택권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수동적인 여자가 아니였다.
아르바이트 중 쉬는 시간에 책을 읽으면 못마땅하게 보던 사람들, 클래식을 좋아한다고 하면 진심이냐고 의심하던 사람들, 미술관에 가거나 조금 독특한 옷을 입으면 이상하게 보던 고향 친구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시간이 지나 내가 걷던 트랙을 따라 무언가를 시작하고, 결국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죄수들이 떠오른다. <피가로의 결혼> 속 아리아가 울려 퍼지자, 멍하니 그 음악에 잠식되는 장면. 그 장면을 본다면, 더 이상의 냉소는 지워질 것이다.
“네가 느낀 게 틀렸어.”
라고 말하는 문장이 수십 줄로 이어질수록,
“나도 못 느끼는 걸 네가 어떻게 느꼈다고 할 건데?”
라는 식으로 들린다.
내 기준에서는 고학벌자의 자극적인 기사보다,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았더라도 이미 무언가를 꿰뚫고 있는 사람의 한두 마디가 더 숨 쉬게 만든다. 그 말은 뼈를 건드리고, 살갗을 따갑게 한다.
진정성과 절대적 가치라는 것은 입증 가능한 절차적 기준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때로는 그 사람의 이력이, 혹은 겪어온 서사가 되기도 하며, 그 서사를 풀어내는 예술적 테크닉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허구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일지라도, 그 안에 진짜가 있다면, 나는 그것이야말로 당사자의 능력이라고 믿는다.
당신은 단 한 번이라도, 당신과 전혀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본 적이 있는가?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내 자신에게도 묻는다. 나는 과연, 나와 다른 출신과 배경을 가진 사람에게 편견 없이 다가간 적이 있었는가?
쳇 베이커를 좋아하는 사람들, 요즘 정말 많다. 예전에는 재즈 애호가들 사이에서 마일스 데이비스가 손꼽혔다. 어느순간부터, 사람들의 취향이 쳇 베이커 쪽으로 급격히 쏠리기 시작했다. 그 기호가 마치 어느순간부터 마티스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몰리면서 인스타 속 사진이 순식간에 유통되어 눈에 익숙해지고, 무엇이든지 이야기했을 때 누구라도 떠올릴 수 있는 패션 소품처럼 전락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네가 진정으로 재즈를 좋아하느냐” “아무나 재즈 덕후라고 하는 거 좀 그렇다”는 식의 말을 하는 대형 스트리머가 떠오른다. 그런데 사실 그 스트리머는 내가 익명으로 남긴 글귀와 생각들을 그대로 가져다 방송 콘텐츠에 활용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 취향 중 하나는, 내가 쳇 베이커를 좋아한다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그 사람에게 경고를 했다. 자유로운 공간이라고 해도 한 사람의 모든 포스팅을 추적해 콘텐츠로 소비하는 일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이후, 본인이 “말을 하는 직업”이다 보니 내가 겪은 것인지, 자신이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술자리에서, 바로 앞에 앉아있는 사람의 경험담을 마치 자신의 경험담처럼 꺼냈다가 상대가 자신을 이상하게 보더라는 말로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승화하여 비유에 그치지 않는 표현으로 일축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 후에도 그는 내가 쓰는 에세이의 주제를 슬쩍 가져다 콘텐츠로 만들었다. 지금은 그 행보가 눈에 띄게 줄었는데, 아마도 이제는 내가 어느 정도 신원을 드러내고 정식으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한때 재즈 역사와 이론을 간략히 강의로 접한 적이 있다. 세부 기억은 많이 유실되었지만, 어느 날 교수님의 사연이 섞인 팟캐스트를 들으며 마음 깊이 파고들었던 음악들이 쌓여갔다.
“취향을 인위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정말로 마음에 와닿는 것을 좇았다.”
쳇 베이커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클래식의 요소가 반영된 쿨재즈의 세련되고 담담한 뉘앙스 때문일 것이다. 그 외에도 나는 라틴 리듬을 좋아한다. 만일 내가 그 사람에게 당신은 재즈에 대한 것을 대학에서 제대로 배운적이 없으니, 그 것에 대해 제대로 알고있지 않고, 그 것이 당신의 취향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당신은 단 한 번이라도, 당신과 전혀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 본 적이 있는가?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내 자신에게도 묻는다. 나는 과연, 나와 다른 출신과 배경을 가진 사람에게 편견 없이 다가간 적이 있었는가?
말과 글이란 것은 허구의 세계일수록 쓰는 사람 자신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어떤 작가의 취향 역시 쳇 베이커라고 한다. 다른 정보는 없다. 그에 대한 에세이는 없어 소개글만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지만, 그녀의 소설에 흐르는 냉소적인 기류는 결국 자신 역시 조소의 대상이 된 세계의 일부임을 증명해버린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열정이나 서툰 취향을 비웃는 듯한 태도를 보일 때면, 나는 차라리 하루키의 글을 읽고 싶어진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으로 세계를 채운 것.
예술에 미쳐있는 사람을 향한 조소.
정말 모든 사람이 그녀의 소설 속 장면에 제대로 공감할 수 있을까?
그것이 진짜 허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일까? 아니면, 자신의 열망을 직접적으로 마주하지 않는 방어기제일까.
그 회피는 일종의 위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예술을 욕망하지 않는 태도는 우아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고고함은 때로는 무릎을 꿇고 허공에 손을 뻗는 사람 앞에서는 차갑기만 하다. 감히 다가가는 자가 있다면 누군가의 눈에는 서툴지언정 가장 인간적인 고백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진심어린 맨얼굴은 욕망을 하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