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피아노를 시작한 건 성당 언니의 소개 덕분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레슨을 받았고, 기본기를 따라 연습하며 선생님의 칭찬도 받았다. 피아노 앞에 가자마자 얼마나 설레였는지, 가는 매일매일이 즐겁고 행복했다. 실력도 빠르게 늘었다. 선생님은 자신이 출강하는 학교에 입학하라 하셨다. 그 곳에서 서울권 음악대학 편입을 목표로 삼자고 제안하셨다. 실제로 그 곳에서는 믿을 수 없는 실력으로 상위대학에 편입한 사례가 많았다. 나는 그렇게 그 학교에 입학했다.
어느 순간부터 음악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프레이징이나 해석에 대한 지시는 점점 이해하기 어려웠고, 내가 음악에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됐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은, 많은 학생들이 수많은 교사를 거치며, 그 과정에서 가끔은 부당한 상황을 겪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나의 경우, 교수법은 맞지 않았으나 선생님의 인품은 매우 훌륭하셨다. 하지만 현실은 인품과 인맥을 너머, 음악의 본질적인 것이였다.
장시간 연습해도 그저 "열심히 연습한 연주"가 되는 것, 말그대로 그렇게 연습하지 않으면 다른 음악적이해가 불가능한 수준에 머물 수 밖에 없는 방식의 접근으로 정형화된 티칭이 부지기수였다. 반면에 훌륭한 이력과 퀄리티 있다고 알려진 티칭의 경우, 그 접근성이 매우 열악하며 가격이 상당했다. 또한 비싸고 좋은 선생님을 순회해봤자 애초에 당사자에게 재능이 없으면 말짱도루묵이란 것 역시 누군가에게는 맞는 말이지만, 그 것이 또다른 강사들에게는 영업을 위한 통제 수단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나는 특별히 영리한 학생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조금만 다정하게 다가오면 금세 마음을 열고, 그 사람에게 순종하듯 따라가버리는 편이었다. 그래서 늘, ‘교수님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만 하면 다 가능해질거야,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되면 내가 부족해서지' 라는 편리한 생각에 안주하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학교 안에서 사레슨을 병행하거나, 편입을 준비하며 다른 교수에게 지도를 받는 선배들의 현실을 보며 점점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음악을 배우는 구조는 늘 이중, 삼중으로 돈이 들어가는 구조였고, 그 안에서 가난과 열등감이 쌓여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예종 학생의 시니컬한 한줄 소개가 담긴 과외 공고를 보고는, 레슨 중 이해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종이에 적어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나의 두번째 상경이 이뤄졌다. 선생님은 날 환영해주셨다. 알고보니, 나와 비슷한 의문점과 회의감에 고민을 해왔던 분이셨다. 예고를 다닐 적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 학교에 출석만 하고 점심만 먹고 집으로 돌아오거나, 조기유학자라는 이유로 선배들의 눈에 들어 화장실에서 두들겨 맞은 이야기들을 하시면서 내 혼란을 모두 이해해주셨다.
그렇게 선생님께 레슨을 받았고, 실력은 믿을 수 없게 늘어버렸다. 여태까지 배운 "쪼"를 모두 없애는 발판이 되었다. 배웠던 것들을 모두 초기화시키고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마음이였다. 학교 교수님은 내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했다면서 아주 기뻐하셨다. 한예종 선생님의 공이 그렇게 그 분의 실력으로 되어가는 것이다. 난 그렇게 휴학을 신청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로지 선생님의 수업을 듣기 위해 서울에서 연습실을 구하고, 그 근처 고시원에서 부터 서울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알바를 겸하고 있었고, 예종 선생님은 내게 무료로 레슨을 해주셨다. 고작 3살 위였던 학생 선생님의 존재가 그 어떤 교수님보다 훨씬 컸다. 최상위권의 대학을 보내주겠다며 거액의 마스터클래스를 권하던 모 학원의 원장님과 그렇게 비좁은 관문을 통과하고 두명이나 입학을 하게 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 와중에 나는 입시곡이 아닌 예종 학생이 권한 곡들을 연습하고 있으니, 방배동 연습실의 사장님은 혹시 유학을 준비하냐 묻기에 이르렀다.
사장님은 나의 그동안의 사정을 듣고는, 내가 악세사리를 만들어서 판다는 것을 도와주고 싶어하셨다. 서래마을을 비롯한 방배동 등지에 거주하는 연습실 사장님의 친구분들을 소개해주시며, 악세사리 수리를 하게 연결도 해주셨고 가끔 나는 그 분들의 망가진 쥬얼리는 고쳐드렸다. 좀 더 살갑게 다가가서 먼저 연락하고 친하게 지냈다면 돈벌이도 찾고 잘 지냈을텐데, 그 때는 너무 어려서 그런 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한예종 선생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군대를 가셨다. 내게, 꼭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더라도 해외경험은 꼭 해보라고 말씀하시면서, 꿈을 꼭 이뤘음 좋겠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부재는 꽤나 헛헛했다. 더이상 선생님을 찾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독일로 향했다.
독일의 한 작은 마을, 관객이 열 명도 되지 않는 콘서트에서 나는 마침내 내가 오래도록 찾아 헤맸던 음악을 연주하는 한 피아니스트를 만났다. 난 그에게 피아노 레슨을 해줄 수 있냐고 물었는데, 알고보니 그는 독일인이 아닌 프랑스인이였다. 그는 정중하게 말하길, 자신은 레슨을 하지 않지만 대신 자신의 선생을 소개해주겠다고 했고, 그렇게 달에 두어번씩 짐을 싸들고 파리로 향하게 되었다.
프랑스인 선생님은 내 터치부터 다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그분은 시간을 재지 않으셨고, 한 번 레슨을 시작하면 반나절 이상을 쏟아부으시곤 했다. 그분의 스승은 바로, 이본 르푀뷔르. 알프레드 코르토의 제자이자, 가브리엘 포레의 마지막 세대 직계 제자인 그녀는 프랑스풍 터치와 음색 자체의 해석에 정통한 사람이다.
대개는 절차부터 만들고 과정을 밟지만, 나는 늘 교수의 연주를 직접 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기에 모든 것이 더뎠다. 그 탓에 몇 달, 어쩌면 1년 가까이 연습을 거의 못한 시기도 있었다. 독일이 아닌 파리에 머물 때에는 피아니스트 친구의 집에 머물렀고, 그 곳에는 때때로 그가 초대한 다른 앙상블 팀의 일원들이나 다른 친구들과 묵기도 했다. 음악인들과 함께 지낸다는 건, 생각보다 피로한 일이었다. 몇 시간 단위로 불협이 터져 나왔다. 나, 피아니스트 친구, 그리고 그 친구의 주변 음악인들 모두가 서로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하다가 갑자기 등을 돌리고, 몸져누우며 끙끙 앓는 우스꽝스러운 연극을 반복했다. 그럼에도 내게는 파리에 머물러야만 하는 명백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
20세기 피아니즘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70세 후반의 늙은 여류 피아니스트. 그녀의 티칭을 받은 이후로 난 내게 분명한 음악성이 있다는 것을 더 확신하게 되었다. 난 때때로 그녀의 집에 머물렀고, 파리는 늘 아름다웠다. 가는 날마다 꾸는 꿈 역시 범상치 않았다. 고래떼가 바다 위해서 솟구치고, 공작새들이 하늘을 날았다. 그러나 그녀는 보름달이 뜨면 정신이 혼미해진다는 속설을 정말 가진 분으로, 경계선 인격장애와 더불어 노환때문에 나라는 존재를 종종 잊어버리시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주기적인 레슨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르며 다시 다른 교수를 찾아 방황했다. 대가에게 받는 레슨은 오디션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유명세와 상관 없이 유럽의 숨은 거장들은 모두가 돈보다 연주자의 역량과 태도를 우선시한다. 물론 그들 중 돈이 없어보이는 학생은 처음부터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떤 교수는 내 사정을 알아차리고 '시간이 많냐'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 질문에는 음악 외의 사정도 보이려면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난 오디숑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대부분은, 학생을 상대로 한타임에 100유로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이후 "받아주는" 선생님과도 컨택을 하기도 했으나, 어쩐지 교수법이 맞지 않아 한국에서처럼 될까봐 내가 더이상 컨택을 안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정말 내가 배우고싶은 음악을 연주한 것들의 녹음본을 업로드한 선생님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와는 지금까지도 계속 함께 공부를 하는 중이다. 그 분 역시, 한 번 레슨하면 기본이 두시간을 넘어가는 분이지만, 그 전의 정신이 혼미한 선생님보다는 체계가 잡혀있어 반나절을 진행하지는 않으신다.
그녀는 내 이메일을 처음 받았을 때, 하마터면 내가 남학생인 줄 알았다고 했다. 문장의 구조와 태도가 여학생 같지 않다는 이유였다. 아마도 처음 사귄 남자 피아니스트 친구에게 배운 유럽식 문체와 예절이 무의식적으로 묻어난 영향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어쩌면, 내 안에는 본능적으로 남성성 자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고보니 그녀 역시 이본 르풰뷔르의 제자였던 것은, 이 모든 과정이 내 선택이 더이상 아니였음을 어느순간 깨닫게 한다. 오래된 플레이옐 피아노가 제대로 관리되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어려운 선택을 하고, 남부의 성으로 보내기까지 겪은 모든 것들까지...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의해 영속해야만할 어떤 것과 그 것을 향한 의지를,
그리고 인식하는 것을,
그런 가치있는 것들을 지키게 하는 선택들 말이다.
무언가 오래된 질서의 명령과 같은 것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