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당신이 "친구"라고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그 친구라고 한다면 오래본 사이인가? 혹은 자주 본 사이인가? 나에게는 그런 정의에 부합하지 않아도, 단 한번의 만남으로 깊은 대화가 오갔다면, 그리고 그 이후 쭉 한결같다면 가끔은 실망하고 가끔은 상처받을 일이 있어도 그 친구는 내게 평생의 친구이다. 그 친구가 뒤에서 내 욕을 하거나 실망한 이야기들을 전달하고, 그 것들을 설령 알더라도 계속 내 친구다. 내게는 그정도로 각별한 친구가 몇 있는데, 사실 사회성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닌지라 "내 또래"의 친구가 많지 않다. 어쩌면 나만 일방적으로 그 친구가 각별히 생각하는 다른 친구들이 있음에도 홀로 친구라고 정의하는 몇안되는 목록이 있다.
그런 친구들 중 한 명에게 생일 초대를 받았다. 6년 전, 가장 아끼는 디자이너 언니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았었다.
"사온이, 서른이 되면 우리 같이 서른 파티를 하자!"
그 때 나는, 당연히 원하는 음악학교에 합격해 자랑스럽게 졸업하고 어느정도 안정을 찾아 결혼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고, 최선을 다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으며, 어떤 시련이 들이닥치더라도 나의 역량과 노력을 누군가 분명히 알아줄 것이라고 믿고있었다. 그래서 언니에게, "꼭 성공해서 그 때 그리스에 언니 비행기 값을 보태 초대할거야!" 하고 말했다.
그 계획이, 내가 아닌 내 친구의 소원으로 성취된 것 만으로 나는 매우 기뻤다. 물론 친구는 다른 전공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 친구의 초대를 받자마자, 돌아가신 시리우스 아저씨가 떠올랐다.
"네가 기도하는게 말야, 꼭 널 위해서 이뤄지지 않을 때가 있어. 그 기도의 방향이 희한하게 다른 방향으로 보내진단 말이지. 반대로, 네가 누군가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잖아? 그럼 거꾸로 그 기도가 너에게 가기도해. 그게 참 이상하지, 난 종교가 없지만 신을 믿어. 신은 네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데, 너의 간절한 바람은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에게 반영돼."
어떤 사람은 여행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고 한다. 도착한 목적지에서 배회하다보면, “어차피 혼자라서” 재미가 없다거나, “함께하는 사람이 없어서” 의미가 없다는 것을 비롯하여, 비포장 도로에서의 짐 운반은 너무나 고생스럽고, 때로는 어떤 여행지가 기후적으로 너무 몸을 지치게 만들어서 고생만하고 돌아온다는 이유이다. 또, 유럽에 좀 살면 어딜가도 늘 비슷한 광경에 권태를 느낀다는 이유다. 돈이 아깝다거나, 시간이 아깝다거나, 하는 것도 포함이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도 몇년 전부터 그런 권태가 찾아왔었고, 이동으로 인한 더이상의 고생을 최소화하고 어떻게든 요령있는 여행을 선호했는지라, 돈을 좀 더 들이더라도 두번다시 무언가를 잃고 손해보는 경험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들어서있었다. 그래서 독일까지 가는 ice 기차의 1 클라스를 예약했다. 기차에서의 1등석과 2등석이라고 해봐야 10-20유로의 차이이고, 정체불명의 사람이 내게 괜한 부탁을 하는 것이 부담이 되었던 적이 많아서 되도록 편안한 여행을 원했다.
ansbach 까지 가는 기차에 타고 몇시간을 달리다보니, 5년 전 독일과 파리를 오가며 피아노 레슨을 받았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먼 길을 여행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생각이 많아졌던 그 때의 나는 지금에서야 느끼건대, 이런 이동중의 “멈춤” 마저 없었더라면 단 한순간도 강제휴식이 없었을 것이며, 날 되돌아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아 그 길로 귀국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 나는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여행이 자신의 현실을 모두 내려놓고 해야만하는 것인가? 언젠가부터 색다른 경험은 “호랑이를 만지는 것”, 혹은 ”퐁뇌프의 연인들“에 감흥이 생겨 그 곳을 보러 가서 실망하고 돌아오는 곳, 소매치기와 지저분한 현지의 상태에 ”차라리 우리나라가 낫지 나가면 고생이구나“ 하고 깨닫고 돌아오는 것이 여행의 본질이 된 것만 같다. 혹은, 쥐뿔 없는 사람이 낭만에 차올라 의미없는 소비를 하고 돌아와서 자기변명을 하는 것일지도. 차라리 그런 이유라면, 이동 하는 생활이 성격에 맞지 않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9시간동안 버스를 타는 선택을 했는데, 버스표를 예매할 때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예전엔 굳이 덜 먹고, 굳이 더 걸어가며 조금이라도 아끼는 선택을 해왔는데, 그렇게 할수록 시간이 더 소요되고 식비나 숙박면에서 돈이 더 들거나, 떨어진 체력 탓에 기차 승강장을 헷갈리는 경우도 생기면서 무리한 계획은 피하게 되었다. 그런데 웬걸, 플릭스버스를 탔더니, 몇년 사이에 정책이 바뀌어 각 칸마다 충전할 수 있는 곳과 여유공간이 더 생겼고, 의자를 조금만 뒤로 젖히면 뒷사람이 아주 불편해지는 구조도 모조리 바뀌었다.
화장실이 고장났다거나, 휴지나 물이 없어서 고생한다거나, 너무 많은 승객들로 인해 7시간 이상을 낑겨 타서 가야하는 상황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바뀌었어야 하는 것이, 서양인들은 체격이 동양인에 비해 평균적으로 크기 때문에 자리가 넓직하지 않으면 공간이 비좁아질 뿐만 아니라, 여러사람의 들숨과 날숨이 섞이면서 산소가 적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특히 겨울에는 창문을 닫고 운행되기 때문에 나처럼 예민한 승객들은 아주 곤욕스러워진다. 그런데 버스 안에서 물과 맥주까지 팔다니, 탑승 전 만발의 준비를 했던 나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개선이 되어있었다.
이렇게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도 간과한 채,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하면서 걱정을 앞세우며 살아왔던 지난 몇년의 움츠러듦이 겸연쩍어진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20대 때의 여행과 30대 지금의 여행은 너무나 다른데, 같은 곳을 왔는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돌아다녀야 에너지를 아낄지, 얼마나 소비할지, 무엇을 먹어야 후회를 덜할지 굳이 세세한 플랜을 안짜도 수월하다. 여유가 있어서 온 것도 아닌데 희한하게 5년 전과는 너무 다른 기분이다.
20대의 나는 굳이 더 걷고 굳이 덜 먹으며 늘 쫓기는 기분이였고, 실제로도 놓친게 많다. 매일 보는 광경인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다 눈에 담으려했다. 그럼에도 지금 내가 누리는 단 하루만의 낭만이 없었달까… 딱 한끼만 먹고 사탕 몇알로 가볍게 걸어도 체력에 무리가 가진 않는다 - 아직 살아있구나, 30대는 늦은 나이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외국어나 문화, 교통 등에 적응을 한 상태여서일지도.) 이것저것 감사할 일이 많아진다.
4박 5일간의 독일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어쩐지 5년 전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며 어떤 사이클 안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지난 5-6년간의 유럽살이가 한순간으로 요약되어서 내게 재방송을 하는 기분이였달까. 프라이부르크부터 메르딩겐까지의 거리는 어학원까지 약 1시간 이상의 거리로, 버스와 트램 각각 한번씩 갈아타야하는 꽤나 먼 거리였다. 지금이라면 나는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장소다. 이 곳을 매일 매일, 오로지 피아노를 놓을 수 있다는 조건에 감사하며 통학했다는 사실을 깨닳으니 그 때의 나를 꽉 안아주고 싶어졌다.
이제는 안정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더이상의 이동과 이사로 인해 여러가지 피보는 상황을 마주하고싶지 않아,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서, 스스로의 선택에 의심을 하던 요즘이였다. 그러던 중 소중한 친구의 초대를 받아 다시 독일로 가고, 처음 유럽에 도착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떠올리면서, 기차와 버스 안에서 그림을 그리고, 연착된 상황임에도 도착만을 그리며 비탄하지 않았던 그 순간과, 이동 중 강제로라도 다른 생각이나 일을 할 수 없이 그 안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로 무한 상상력을 이어나가던 그 시절. 그리고, 창문 밖을 지켜보며 생각을 정리했던 순간들을 다시 돌이켜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사랑하는지 다시 돌이켜볼 수 있었다.
마치, 한번씩 찾아오는 되감기 후 빨리감기 버튼을 누른 것과 같은 그런 순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