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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휴먼과 아날로그 몬스터

탄생하지 못한 창조물들

by 사온

2024년 어느 가을날, 인스타그램 속 작품들을 구경하는 중, 물속에서 꿈틀대는 하얀 형체가 살아 움직이는 장면을 마주쳤다. 작가 추수의 작업 중 하나인 “아가몬”. 아가몬은 임신 없이 이루어지는 섹스, 그리고 오르가즘의 순간에 수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길을 잃으며 탄생했다. 작품을 마주한 순간,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모든 감각이 곤두섰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한인 여성회 대표이자 재불 청년예술가 협회 대표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유네스코 한국 콘서트에서 안내원으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고, 내가 오래전부터 동경해 온 여가수 소향의 무대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마음은 결정나 있었다.


그 날 공연 뒷풀이에서, 나는 그녀의 음악 활동 너머에 자리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최정상의 자리에서 순수함을 유지하는 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신성을 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미래적인 삶이 이미 요한묵시록에 묘사되어 있어요. 로봇의 형상은 이미 예고되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겼을 이야기였지만, 그 말이 머릿속에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렇게 인공지능 세계가 도래하는 것이 멀지 않았다는 데에 별다른 동요를 느끼지 않던 나도, 그때부터는 조금씩 경각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 이어진 한인 예술가들과의 모임에서도, 우연처럼 계속해서 AI와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며칠 후, 난 기이한 경험을 했다. 파리의 대형 지하철역 샤틀레에 갇히게 된 것이다. 내가 다가가는 모든 출구가 자동으로 폐쇄되었다. 처음엔 우연이라 생각하고 다른 출구를 찾아 움직였지만 다섯 번, 여섯 번 반복되자 머릿속이 서서히 아득해졌다. 어쩌면 정말로 모든 출구가 닫히고 사람들을 가둬버리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벌금을 내서라도 뛰어넘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 순간, 조롱하듯 문이 다시 열렸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역을 빠져나왔고, 그렇게 잊혀질 수도 있었던 작은 사건은, 그날 밤 또 다른 기묘한 경험과 겹쳐지며 다시 떠올랐다.


우연이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그 헤프닝은 잊혀졌다. 그 날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블랙프라이데이였다. 도둑이 훔쳐간 컴퓨터와 다른 전자기기들을 대체할 다른 장비가 급히 필요했었다.


파리는 그야말로 인파로 가득했다. 아이패드에 연결할 매직키보드를 좋은 가격에 구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 화장품 매장을 들렀다. 샴푸 두 병을 고르고 계산대 줄에 섰는데, 내 차례가 다가오자마자 전산이 멈췄다. 직원들은 10분에서 20분이면 해결될 거라 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시스템은 돌아오지 않았고, 매장 전체가 셔터를 내리고 나를 포함한 몇몇 손님들만 안에 남았다. 1시간 가까이 버텨 마침내 전산이 다시 작동되었을 때, 내가 계산대 앞에 섰고, 그 순간 또다시 시스템이 멈췄다. 다른 계산대로 옮겨도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몇 주가 지난 후, 오래 알고 지내던 한국 방송국 출신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연출과 피디를 함께 맡아왔는데, 방송국 소속 일 이외의 개인작업도 하고싶다며 소액의 예산으로 웹드라마를 제작하려는데 각본을 써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했다. 처음엔 단순한 아르바이트처럼 생각하고 수락했지만, 막상 쓰기 시작하니 이상하게 그동안의 경험들이 하나씩 이야기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추수 작가의 아가몬도 문득문득 떠올랐고, 그 바탕으로 세계를 구축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90분짜리 시나리오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장르는 멜로, 개인의 정체성과 사랑이 기술의 발전과 세계화 속에서 어떻게 충돌하고 변형되는지에 관한 줄거리였다. 어느새 각본은 피디의 의도를 벗어나고 있었고, 결국 우리는 이걸 독립영화로 전환해 더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결정을 내렸다. 다행히 추수 작가에게 시놉시스를 보냈더니 긍정적인 회신이 왔다. 쏟아지는 메일 속에서 우물을 발견한 것처럼 달게 마셨다는 그녀의 말에, 믿기지 않게 기뻤다.


50개가 넘는 씬을 하나하나 쌓아올리다 보니 이 작업이 마치 거대한 아트페어를 준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각 부스마다 다른 조명, 다른 온도, 다른 텍스처의 공기. 매일 내 앞에 새로운 입구가 열렸다가 닫혔다. 괜찮은 것 같다가도 자괴감이 밀려왔고, 나보다 더 많은 경력을 가진 전문가들이 더 나은 여건에서 더 멋진 작업들을 이미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계속 이걸 해도 되는 건지 의심하게 됐다.


잠깐 호흡을 내려놓고, 그동안 미뤄뒀던 집 안의 고장난 것들 부터 하나씩 수습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오래 방치해둔 세탁기를 들어올려보려 했는데, 평소 같으면 들 수 없는 무게가 어느 순간 지렛대처럼 들려올라갔고, 동시에 세탁기 뒤 수도관이 터지며 물이 쏟아졌다. 밸브가 어디 있는지 몰라 헤매는 사이, 온 집안이 홍수처럼 물에 잠겼고, 전기는 자동으로 차단됐다.


인터넷은 끊겼고, 급한 마음에 밖으로 나가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에서 간신히 배관 수리공을 불렀다. 물을 잠근 뒤 수리공들은 청구서도 없이 120만 원가량을 요구했고, 당장 지불하지 않으면 고의로 다시 고장 내겠다는 협박을 퍼부었다. 실내복 차림으로, 머리끝까지 물을 뒤집어쓴 채, 나는 몇 시간을 강추위에 떨며 있었고, 그때서야 이 모든 상황이 현실이라는 감각이 들기 시작했다.


오한이 가시지 않던 그 날, 나는 이것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작품을 위해 미리 짜여진 한 장면이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극한으로 추운 지역을 상상하면서, 러시아 대문호들의 문장이 왜 그토록 단단하고 뜨거운지를 떠올렸다.


Regina sine labe originali concepta, ora pro nobis.

(원죄 없이 잉태되신 모후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시나리오를 쓰다가 우연히 꺼내든 오래된 노트 속에서 발견한 이 라틴어 문장은, 몇 달 전 주일 미사 때 천장에 적힌 글귀를 따라 적어둔 것이었다. 그 문장을 다시 읽는 순간,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튀듯 어떤 연결이 생겨났고, 동시에 아이패드가 멈추면서 방금 썼던 문장이 유실될 뻔했다. 나는 이제 확신할 수 있다. 탄생하지 못한 필연적 창조물은, 분명히 어딘가에서 보호받고 있다. 추수 작가의 아가몬은, 어쩌면 이세계의 어머니로부터—천상의 모후로부터—숨겨지고 보호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까페에서도 잠깐 인터넷 연결이 끊어졌었다. 모든 것이 내가 의식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아닌, 오히려 어딘가에 조종당하고 있는 것처럼, 혹은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이미 쓰여진 시나리오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 우연이 아니라 어떤 필연 같은 것들이 이 모든 걸 이끌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반복되는 오류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며, 그런 일련의 경험들은 기술이 인간을 돕느냐 방해하느냐를 넘어서, 기술이 우리 삶에 말을 걸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처럼 느껴진다. 나는 종종 누군가에게 부탁하거나 상의할 일이 생길 때마다, 그 관계에 존재하는 유대라는 이름의 빚을 어떻게든 감당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걸 실감한다. 그렇게 어느 지역, 어느 나라에 있든 간에 내가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결국 예술 의지로 전환되었고,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이 시나리오 작업은 결과적으로 엎어졌지만, 추수 작가와의 교류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창작적 전환점이 되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반드시 말해야 하는 것들을 세상에 외치고 있었고, 나 역시 그 흐름을 무시할 수 없었다. 바쁜 일정과 타이트한 예산 속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제각기 고난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묻는다. 이건 진짜일까? 우연은 정말 우연일 뿐일까? 영감을 믿어야 할까, 의심해야 할까?



(해당 작품은 아래 링크로.)

https://brunch.co.kr/@6b390b9523364ec/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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