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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 하루

팥을 제대로 삶고 싶어

by 불친절한 은자씨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하지 않는가.

십여 년이 넘는 해외살이에 좋은 점이라고 해야 하나, 필요한 것이 생기면 내가 어떻게든 해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음식에 있어서는 그 욕구가 최대치로 발휘된다.

참 희한하기도 하지.

예전에는 입에 대지도 않던 각종 나물류 특히 달래나 쑥 같은, 이곳에서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도 없는 그런 것들이 생뚱맞게 먹고 싶어진다. 그럴 때마다 대충 비슷한 재료를 사다가 해 먹다보니 이젠 왠만한 음식은 자급자족이 된다. 김치는 기본, 탕수육이나 짜장, 곰탕, 각종 분식류 심지어 도토리묵까지 , 보통 한식당에서 먹는 요리는 제법 할 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정복하지 못한게 있는데 그것은 바로 팥이 들어간 음식이다. 시루떡이나 단팥빵 같은 것 말이다. 빵도 종종 만드는데 팥이 들어간 것은 영락없이 실패. 팥을 제대로 삶지 못해서이다. 유튜브 속 수많은 “실패없이 팥 삶는 법”을 따라해보았지만 하는 족족 실패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팥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팥빵도 그렇고 시루떡이나 팥죽 심지어 한여름 남들이 모두 먹는 팥빙수도 딱히 찾아 먹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아예 파는 음식이 아니어서인지 올 겨울에는 유난히 팥빵이 생각나는게 아닌가.

어떡하면 쉅게 팥을 삶을 수 있을까. 팥만 제대로 삶으면 되는데….사람의 집착이 무섭다. 며칠내내 이생각을 팥 삶는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 뭔가 떠올랐다.


삶아진 팥을 사면 되는거 아닌가???


유레카!

아마존에서 “cotto azuki”를 검색했다.

삶은 팥.

빙고!!

3캔 묶음에 10유로도 안한다. 게다가 유기농이야.

주문을 하고 받아보니 삶아진 팥이었다.

나는 거기에 동량의 설탕을 넣어 졸여서 팥앙금을 만들었다. 그리고 단팥빵도 만들어 먹고 붕어빵도 만들어 먹었다.



이 일은 나에게 근래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되었다.

단팥빵 그것 안먹어도 되는건데,

뭐랄까. 봉착한 문제를 아예 다르게 바라보고 해결한데서 온 쾌감이랄까.

생각의 전환에서 뿌듯함.

그런 기분이었다.

역시 문제해결능력을 키워야 하는 법이야

내가 만든 붕어빵과 단팥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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