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포르투갈 신트라,호카곶

by 불친절한 은자씨

리스본과 포르토 사이에서 리스본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신트라와 호카곶이 리스본에서 가는게 훨씬 가까웠기 때문이다. 바닷가 도시들은 어디를 가도 바르셀로나와 비슷한 분위기일것이라 생각했고, 신트라의 미스테리한 헤갈레이라 별장과 대서양 끝이라는 호카곶이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아침 일찍 공항으로 예약해둔 렌트카를 타고 우리는 리스본에서 서쪽으로 40분 정도 떨어진 호카곶을 향했다. 고속도로를 얼마 타지 않아 구불구불한 산길에 들어선다. 계속 이어질 것 같은 산길은 뜬금없이 마을이 나타나기도 하고 좁고 대충 포장한 듯한 길을 한참가고 나서 Cabo da Roca-호카곶에 도착했다.

어둑한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만 같다. 차 밖을 나오다가 기우뚱 몸이 뒤로 쏠릴 정도로 바람이 거세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이 얼굴에 부딪힐 때마다 따귀를 맞는 느낌이다. 휘청거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관광안내소같은 건물이 보여 들어가 보니 관광지에서 흔하게 판매하는 자석, 볼펜 등 souvenior와 호카곶에 왔다는 증명서를 터무니없는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다. 구미가 당기지 않아 바로 나와 바닷가 가까운 쪽으로 아이들과 거센 바람을 맞아가며 뛰어가본다.


군데군데 선인장 같은 식물들이 땅바닥 울퉁불퉁 커다란 돌틈 사이에 삐죽이 얼굴을 비춘다. 해안가라는 단어보다는 절벽이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경관이다. 날씨가 맑았으면 절경이겠다. 그래도 유라시아 대륙의 끝 대서양 망망대해가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하니 뭔가 웅장한 기분이 절로 든다. 사실 어느 바다를 가도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지점을 주시하다보면 저 너머 무엇이 있는지 이 바다를 따라 가면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기보다 두려움이 더 클 것 같은데 그 시대의 포르투갈인은 어떻게 그렇게 항해를 했던 걸까. 어떤 믿음으로 항해를 지속할 수 있었을까.


제주가 고향이라 그런걸까. 바다는 그것이 아드리아해이든 지증해이든 그리고 대서양이든 상관없이 마주할 때마다 항상 제주 바다가 떠오른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그 곳, 내 부모와 형제가 있는 그 곳. 내 울타리를 만들어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이런 풍광을 보면 고향에 가고 싶어진다. 화창한 날이었으면 또 다른 느낌이었을까 오늘은 시커멓고 거센 바람에 파도까지 세차게 휘몰아치는 바다가 더욱 더 제주 현무암을 연상케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진해지려는 찰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서둘러 상념을 멈추고 다시 차에타고 신트라로 향한다.


신트라는 산 속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데 연관검색어로 항상 같이 나오는 알록달록한 페나왕궁과 헤갈레이라 별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한참 언덕길을 올라가다가 겨우 주차를 하고 내려보니 손바닥만한 광장언덕에 사람이 빼곡하다. 별로 크지 않은 신트라 센터인데 사람이 워낙 많으니 자칫하면 점심을 놓칠 것 같아 바로 식당부터 찾아 들어갔다. 남유럽답게 시원한 파란색과 흰색의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세찬 바람을 많이 맞았던 터라 따뜻한 국물요리와 고기요리를 시킨다. 포르투갈에 와서 먹었던 식당들이 모두 별 맛이 없어서 기대감이 낮았는데 이 식당은 제법 맛있다. 아이들도 제일 낫다며 국물에 빵까지 찍어먹으며 모든 음식을 싹싹 비운다.

기분좋게 점심을 먹고 부지런히 헤갈레이라 별장으로 향한다. 주차장에서 별장까지는 거리가 꽤 되는데 버스시간이 띄엄띄엄있어 소화도 시킬겸 그냥 걸어가기로 한다.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지는 길이라 아이들이 슬슬 징징거린다. 잘 달래가며 30여분을 걷다보니 사람들이 들어가는 건물 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높은 장멱에 둘러싸인 길 끝까지 가니 별장 입구가 보인다. 티켓을 끊고 들어가보니 정원이 일반 공원처럼 크게 조성되어 있었다. 이 별장은 로마네스크,고딕양식등 여러 양식이 혼재되어 있으며 이탈리아의 건축가가 지었다고 한다. 이곳의 유명한 스팟은 우물인데 실제로 들여다보니 마치 중세 영화 속에서 자주 봤던 배경같았다. 중세 연금술이 연상되는 장소라고 하던데 아니나 다를까 타원형 길을 한참 내려가다보니 그런 분위기가 물씬 난다.

IMG_2103.JPEG
IMG_2085.JPEG
IMG_2078.JPEG
헤갈레이라 별장 정면(좌)우물로 내려가는 길(가운데와 좌)

오후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줄어들 기색이 안보인다.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더 돌아보는 것은 힘들지 싶다. 다시 걸어내려가야 하니 이만 보고 슬슬 내려가기로 한다. 다시 신트라 센터로 내려와 에너지 충전을 위해 달다구리를 먹기로 한다. 아이들은 젤라또 하나씩 사 주고 바로 옆에 에그타르트 가게가 있어 나는 에그타르트를 몇 개 사 온다. 그래도 포르투갈 하면 이 에그타르트가 대표음식인데 하나는 먹어봐야지.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걸까. 에그타르트 가게도 사람들로 빼곡하다. 그래도 금세 줄이 빠진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좀 놀랐지만 관광지니까 어쩔 수 없지. 사고 나와 아이들 옆에 길바닥에 철썩 앉아 한 입 먹어본다. 음....아무래도 내가 이탈리아에 살면서 맛있는 돌치를 많이 먹었나보다. 평범한 에그타르트 맛이었다.

더 이상 관광은 하고 싶지 않다는 아이들의 말에 과감히 페나성과 무어인의 성은 포기한다. 이미 많이 큰 아이들이지만 이런 관광지를 다니는 것은 아이들의 집중도가 오래 가지 않는데다 많이 걸어야 하므로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한다. 그렇지않으면 즐거운 여행이 아니라 힘든 현장학습과 다를게 없다. 그렇게 우리는 신트라를 떠나 리스본의 마지막 날을 마무리 한다. 자 내일은 이제 남부 알부페이라로 넘어가는 날이다. 포르투갈의 또 다른 바다를 보러 가자.

keyword
이전 15화포르투갈 리스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