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포르투갈 남부 해안으로 떠나는 날이다. 떠나기 전에 벨렝탑과 더불어 유명한 제로니모스 수도원을 보기로 한다. 관광객이 별로 없을거라 생각해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았더니 이미 줄이 수도원 한쪽을 채우고 코너를 돌아 길게 늘어져 있다.
“ 거봐 예약을 하자니까”
“한여름도 아닌데 뭘 기다리면 되지”
별 거 아닌 일로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게 여행인데 내 투덜거림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남편덕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예상보다 다행히 오래지않아 입장할 수 있었다. 박물관이 아니라서 관람시간이 길지 않아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빨랐나보다.
이 수도원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건축물인데 1500년대 바스코 다 가마의 항해를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그 당시 포르투갈은 부유했기 때문에 수고원을 짓는게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는데 건축물을 장식하는 조각들을 보면 바로 수긍이 된다. 굉장히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한 조각들이 수도원 외관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원이라고 하는데 어쩜 이렇게 화려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수도원으로 들어와 내부 정원을 보며 회랑을 거닐다보니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이 생각난다. 바르셀로나에서 살던 시절 마지막 여름 휴가 때 40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꼭 가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꼬맹이 둘 끌고 갔었는데 너무 더워 기대에 부풀었던 헤네랄리페 정원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연히 알함브라 궁전과 이 수도원은 전혀 다르다. 가끔씩 어떤 장소는 머릿 속 깊은 곳의 잊고있던 기억을 끄집어 낸다. 그 당시 뱃속에 있던 셋째가 이제는 내 손도 필요하지 않을 정도가 되어 이 곳을 거니는 모습을 보니 그 시절 양 손에 꼬맹이 둘을 잡고 다니던 모습이 떠올랐나보다.
수도원 내부는 여느 성당처럼 미사를 보는 예배당은 물론 바스코 다 가마의 묘가 있었다. 포르투갈하면 연관검색어처럼 자동으로 나오는 인물의 묘가 이곳에 있다니 포르투갈인에게는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과 같은 존재와 같겠다.
넓찍한 수도원을 다 둘러보니 마치 숙제를 끝마친 기분이다. 이제 여행지 남부 알부페이라로 서둘러 떠나보자.
이왕 남부 해안지역으로 가보기로 결정했을 때 리조트느낌의 숙소에서 묵어보기로 했다. 아직 극성수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좋은 가격의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포르투갈 남부는 라고스, 파로와 더불어 우리가 가는 알부페이라가 휴양지로 유명하다. 숙소 검색을 하다보니 호텔과 리조트가 굉장히 많아 가족 단위의 휴양관광객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부페이라 근처에 다다르니 거리의 분위기가 확 바뀐다. 키 높은 야자수며 넓직하게 잘 구획된 도로에 길 양 옆이 모두 프라이빗 빌라촌이 줄 지어있다. 호텔에 도착해보니 전형적인 리조트형 호텔이다. 좀 더 기온이 올랐으면 바깥 수영장에서 선탠할 수 있을텐데 이번 여행 내내 부는 바람이 도와주지 않는다. 짐을 부리고 우리는 근처 바다를 찾아 나서본다. 새파란 하늘에 눈이 뜨여지지 않는다. 거센 바람도 당연하다.
이 지역은 작정하고 휴양지로 만들어진 듯하다. 모든 호텔이며 숙소가 바다를 마주보며 세워져 있고, dock마다 보트와 요트가 한가득 정박해 있다. 게다가 길가 상점은 모조리 식당, 카페, 그리고 부동산이 전부이다. 그러고 보면 유럽의 해안가는 약간의 차이만 있을뿐 거의 모두 휴양을 위한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는 것 같다. 이탈리아, 스페인, 크로아티아, 그리스 그리고 포르투갈에 이르기까지. 특이하게 포르투갈은 과거 대항해 영광의 시대는 아주 오래 전 이야기일 뿐 이런 지역의 개발은 모두 부유한 서유럽 국가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듯하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영국식 펍과 식당메뉴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영국의 자본이 닿지 않았던 곳이 세계에 있긴 있었을까싶다. 그들의 자본에 의해 개발되고 그들에 의해 소비되지 않으면 지역경제가 활성화되지 않게 되었다. 자본의 힘에 씁쓸해진다.
여행은 내가 평소에 생각하지 않았던 지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신비한 힘이 있다. 멀고 먼 포르투갈 이 평화로운 휴양지에 와서 국가 간 자본 권력차이가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실 이번 포르투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장소는 일몰을 보러 갔던 바닷가이다.
“ 그래도 대서양이고 바다가 이렇게 끝없이 펼쳐지는데 일출이든 일몰이든 멋진 데가 있을거야”
남편이 구글맵을 뒤적이며 한 마디하고는
“여기 가보자!”
이제 막 해가 지고 있었는지 사방이 다른 색으로 변하고 있는 찰나였다. 푸르렀던 하늘과 바다가 점점 주황빛 검은 빛으로 변해간다. 서서히 그리고 순식간에 바뀌는 장관을 보고 아이들도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지고 있는 해는 내일도 모레도 어김없이 뜨고 질텐데 나는 지금이 아니면 해가 없어져버릴 것만 같은 기분으로 지는 해를 계속 바라본다. 내 마음 속 모든 걱정과 잡념이 다 사라지는 듯한 순간이었다.
석양을 보니 정말 여행이 완벽하게 마무리된 느낌이었다. 이번에도 무사히 사고없이 여행을 마치는구나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비록 밀라노로 돌아가는 공항이 너무 작아 앉을 곳 하나 없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맥도날드가 우리를 구했다.
2022년 4월 부활절 방학
-포르투갈 여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