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조트에서 풀라 구시가는 불과 차로 15분 거리이다. 반나절 정도 구시가를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오전에 길을 나선다. 몇 년전 크로아티아의 유명도시들-자다르,스플리트,두브로브니크 여행을 했는데, 이 지역이 로마문화권이었다는 것은 그 당시 많은 유적들을 봤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 성벽이나 도로의 형태, 아레나 등 많은 유적이 이탈리아의 곳곳과 판박이였다. 스플리트의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을 보고 과거 로마문화권의 영향력이 얼마나 넓게 장악하고 있었던건가 하며 감탄했던 기억도 난다.
그 당시 사용하고 남아있는 크로아티아 화폐 쿠나를 가지고 왔는데 가격 표기를 쿠나와 유로로 표기만 할 뿐 지금은 유로만 취급하고 있다. 알고보니 올해부터 크로아티아도 유로를 사용한다고 한다. 어쨌든 과거 동유럽 국가였고 이탈리아보다 GDP도 낮기 때문에 물가도 낮을거라 생각했는데 풀라의 식당이나 마트는 생각만큼 싸지는 않았다. 과거 쿠나 사용했을 때보다는 확실하게 많이 오른 것 같다.
사실 이 지역은 이탈리아와 바로 국경을 맞닿아있어 언어는 크로아티아어와 이탈리아어가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어 여행을 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심지어 식당 메뉴도 이탈리안 식당과 비슷한데 맛만 살짝 2% 부족하달까. 그래도 여행객들이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이 많아 만족스러웠다.
풀라 구시가의 첫인상은 청량함이었다. 유럽 다른 나라들처럼 작은 구시가지만 길가에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게다가 고개를 돌리면 바다가 눈에 들어오니 시야가 트인다. 여행의 8할은 날씨라고 하지 않던가. 40도가 넘는 폭염과 돌발성 폭우를 겪고 왔던지라 크로아티아의 맑고 온화한 기후가 너무 반가웠다. 바닷가가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밀라노에서 내 몸에 계쏙 붙어 다니던 모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공영주차장은 꽉찼지만 운좋게 아레나 옆 노상주차에 빈 곳을 발견하고 주차를 할 수 있었다. 관광지답게 주차비가 시간당 4유로나 된다.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아레나-원형극장이 눈 앞에 보인다. 형태가 영락없이 로마의 콜로세움과 똑같다. 얼마 전 9학년 때 로마에 스쿨트립을 다녀 온 둘째 딸이 바로 콜로세움과 똑같다며 콜로세움 미니어쳐 버전이란다.
베로나의 아레나가 오페라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듯이 이 곳도 큰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오페라같은 공연이 올려지고 있는 듯하다. 로마 콜로세움보다 높이나 규모가 작지만 밖에서 충분히 볼 수 있어 한 바퀴를 둘러보며 구경을 했다. 구글 맵을 통해 이 지역의 유적지를 보니 세르게이우스 개선문, 아우구스투스 신전, 아레나가 대표적이다. 30분이면 충분히 다니며 볼 수 있다. 모든 유적들이 이탈리아에서 보던 것들과 똑같은데 규모만 작았다. 마치 로마의 일부분을 작게 만들어 놓은 듯했다.
휴가시즌이지만 이탈리아만큼 빽빽하게 사람이 많지는 않아서 설렁설렁 돌아다니기 좋았다.
목이말라 아이들과 젤라토 하나씩 사먹고 설렁설렁 주차자리로 돌아왔더니 5분 늦은 사이에 딱지가 얌전하게 놓여있다. 72유로란다. 남편이 어이없어했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다소 억울하게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즐거웠던 관광을 마쳤다. 청량하고 깨끗한 첫인상이 이 딱지 하나 때문에 싹 사라져버렸다.
설마했는데 보기좋게 큰 거 하나 당한 기분이었다.
* 주차딱지는 경찰이 끊는게 아니고 사설업체에서 끊는 듯 합니다. 5일 이내에는 50%금액으로 깎아주는데 티켓에 적힌 주차업체에 가서 지불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