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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 피란

by 불친절한 은자씨

돌아오는 길에 슬로베니아 피란에 들리기로 한다. 크로아티아와 이탈리아의 국경사이에 아주 조금 슬로베니아의 땅이 있는데 그곳에 피란이라는 바닷가 마을이 있다. 지도를 보면 이 쪽이 유일하게 슬로베니아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인접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국경으로 나뉘어졌지만 사실 이 쪽 지역의 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는 비슷한 어촌마을이자 유럽인의 휴양지이다.

피란은 몇 년 전 한국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에서 배경으로 나와 한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실 크로아티아도 그렇고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TV에서 드라마나 예능의 배경으로 방송을 타면 알려지기 시작하고 한국인들에게 관광지로 급부상하게 되는데, 이곳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파란하늘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붉은 지붕의 모습은 이 지역 어디서든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광이다. 그렇지만 고층건물로 둘러싸인 한국의 도심에서는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유니크하게 보이는 것 같다.


풀라에서 거리는 100km가 채 되지 않지만 산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구릉들 사이에 건설된 1차선 고가다리를 건널 수 밖에 없기에 2시간 가량 걸렸다. 게다가 피란으로 진입하는 차량이 굉장히 많아 사실 놀랐다. 집으로 바로 돌아가기 아쉬워 중간 지점에서 점심이나 해결하고 슬렁슬렁 구경 좀 할 심산이었는데 영 틀린 생각같다.

그저 작은 어촌마을이라 생각했는데 PIRAN/PIRANO 푯말이 보이는 지점부터 해안가가 시작되는데 그곳이 휴양을 즐기는 사람들로 꽉차 있는게 아닌가. 청명한 파란 하늘아래 푸른 바다를 마주보며 타월 하나 깔아놓고 드러누운 사람들, 수영복만 입은 채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우리처럼 관광하는 사람들 천지다.

성벽에서 본 피란 마을(좌) 광장(우)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피란으로 들어가려면 주차장에 들어가는 주차바가 있어 강제적으로 주차티켓을 끊고 들어가야한다. 아침시간이지만 이미 마을 주차는 불가능하고 마을에서 떨어진 10분 거리에 주차빌딩이 있어 그곳에 주차를 해야한다.

겨우 주차를 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대충 근처 식당에 들어가 앉는다. 오랜시간 빈 속으로 있어 너무 어지러웠던 탓에 무엇이든 뱃속을 채워넣어야 한다. 현금만 받는다고 하지만 어디 멀리 돌아다닐 기운도 없으니 그냥 여기서 먹기로 한다. 게다가 식당이름이 SARAJEVO 84라니 뭔가 스토리가 있을 것만 같다. 이름처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이다. 주인의 추천 음식으로 주문했는데 아이들 입맛에도 맞는지 접시를 싹 다 비웠다.

본능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가는 방향으로 5분 정도 걸었더니 광장이 나온다. 작은 배들이 촘촘하게 세워진 선착장과 광장은 불과 몇 걸음 밖에 되지 않는다. 광장 뒤쪽길로 계속 오르막길을 따라가니 이 마을 주위를 두르고 있는 성벽이 나온다. 한창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2시에 이 길을 걷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오늘아니면 언제 여기를 다시와볼까 싶어 아이들을 다독거리며 걸으며 피란의 모습을 내려다본다. 교회를 가로질러 가보니 반대편에도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있다. 아마도 이 지점에서 보이는 건너편 육지가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 근처인듯하다.

두어시간이면 충분히 마을을 둘러볼 수 있었다. 골목마다 에코백이나 엽서를 파는 소품가게가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마을 관광을 보는 재미를 만들어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심하며 마그넷을 고르고 피란을 떠나는 것으로 이번 여행을 끝낸다.

피타 빵 사이에 고기 나 소세지를 넣어 먹는다 .

여행의 목적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누군가는 휴양으로 누군가는 학문적 욕구충족을 위해.

나는 여행을 가면 평소에는 아이들이나 나나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시간만 보내던 일상이 우리 가족의 공동의 공간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는 마법을 경험하는 것 같다. 고등학생 사춘기 아이들이 평소에는 빡빡하고 예민한 신경이 바다나 산같은 풍광을 보고, 일상과 다른 환경에 놓여지면 누그러진다. 서로에게 말 한마디 섞지않다가도 여행을 가면 대화도 많아지고 장난도 많이친다. 그럴 때마다 Familyship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안좋은 경험을 하더라도 금세 잊어버리고 다시 짐을 싸는 게 아닐까.


-2023년 7월 말

크로아티아 풀라/슬로베니아 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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