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작년 한 해는 지금껏 살아온 사십 몇 해 동안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암으로 3여년 동안 투병하셨던 아빠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을 때 아빠가 암판정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쩌면 좋냐며 한참 우시던 엄마의 목소리와 달리 아빠는 담담하셨다. 치료받으면 된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되려 다독이셨다.
- 아이들이나 잘 키우고 있어. 아빠는 병원가서 치료받으면 되지.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3년만에 작년에 한국에 들어갔다. 서울 아산병원에서 아빠를 만나러 갔을 때가 생각난다. 너무 떨리는 마음에 진료시간보다 훨씬 일찍 병원에 도착해 아빠를 기다렸다. 공항에서 택시타고 오시는 아빠가 언제쯤 도착할까 병원 앞 택시 하차장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계속 지켜보았다.
저 멀리 아빠라 느릿느릿 걸어오시는 모습을 보고 달려가 아빠를 부둥켜안았다. 마스크 너머 아빠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 괜찮아. 울지마. 아빠 괜찮아.
다시 밀라노로 돌아오고 9월 아빠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랴부랴 나 홀로 한국으로 다시 들어갔고 아빠는 일주일 뒤 돌아가셨다. 그렇게 아빠가 내 곁에서 떠나가셨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마음에 폭풍이 휘몰아치는 기분이 이런거구나. 그 파도가 넘치고 넘쳐 눈물이 되는게 아닐까 싶었다. 울면서 애들 도시락을 싸고, 울면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울면서 빨래를 널었다. 그렇게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슬픔에 잠식되어 갔다. 아이들과 남편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면은 항상 슬픔속에 허우적거렸다. 항상 아빠가 그리웠다. 너무 슬픈 날은 가지고 온 아빠 자켓을 끌어안고 아빠 냄새를 더듬어 떠올리려 했다. 그러다 생각이 났다. 아빠는 항상 나에게 글을 써보라고 하셨던 것을...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내가 책읽고 글쓰는 것을 좋아하셨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워드를 띄워놓고 무엇을 써야할지 막막했다. 그날 그날 내 기분을 쓰기 시작했다. 한두문장으로 시작했던 글이 어느새 한단락으로 늘고, 한 페이지까지 써지기 시작했다. 내 머릿 속을 떠다니던 단어들이 글로 문장으로 변환되니 마음이 평안해졌다. 일렁거리던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 뒤로 우울할 때는 우울한 대로, 즐거울 때는 즐거운 대로 그저 썼다. 어느새 글을 쓰면서 내 슬픔이 밖으로 흘려보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니 착각이 아닐수도 있겠다. 글을 쓰면서 시도때도없이 나오던 눈물이 많이 줄었으니까 말이다.
아마 매해 9월이면 나는 여전히 많이 슬퍼질 것 같다. 그렇지만 슬픔에 잠식되지는 않겠지. 딸이 슬픔 속에 허우적거리지 말라고 아빠가 알려준 글쓰기를 계속 할 테니까.
- 글을 써봐. 마음이 어지럽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글을 써보는 거야. 그러면 신기하게 마음이 평안해지고 네가 모르던 게 떠오르기도 하는 거야.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글을 써보라고. 그렇게 슬픈 마음을 위로해보라고.
그래서 오늘도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며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