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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OSONO Sep 25. 2023

어쩌다, 유럽

제 3의 고향- 스페인 바르셀로나

 일요일 아침이면 좀 늘어져도 괜찮은데 이제는 6시가 가까워질 때면 눈이 절로 떠진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아이들 재워두고 나 홀로 자유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눈이 번쩍 뜨였는데 이제는 저녁 9시를 넘기면 눈꺼풀이 점점 내려앉는다. 10,11학년인 큰 애들이 공부하는 동안에는 자지않고 깨어있으려 몇 번 시도했지만, 늦게 잠들면 다음 날 생활의 질이 확 떨어지길래 그냥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오늘도 그랬다. 어김없이 어제 10시에 잠들고 6시 전에 눈이 뜨였다. 충분히 잔 셈이다. 거실로 나와보니 큰 애가 공부하다 잠들었는지 거실 쇼파에 안경쓴 채 누워있다. 

"방에 들어가서 더 자"

아이에게 살살 얘기하고 방에 들어가서 더 자도록 둔다. 

 거실 밖 하늘은 아직도 검푸른 색이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이 시간 마당은 훤했는데...느닷없이 가을이 금세 문턱 앞에 들어왔다. 지난하게 덥고 끈적했던 여름의 기운이 불과 며칠 전까지 남아있었는데 두어 차례 내린 비로 기온이 훅 떨어졌다. 햇살도 옷을 갈아 입었는지 여름 햇살이 아니다. 눈 부신 것은 매 한가지이만 그 뜨거움이 여름의 해보다는 훨씬 덜하다. 

 맨손체조와 스트레칭으로 밤새 굳어있던 몸을 살살 깨워본다. 부드럽고 천천히 팔벌리기나 다리에 손닿기 등 쉬운 동작을 해야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나서 따뜻한 레몬차를 한 잔 만들어 마시는게 내 아침 루틴이다. 조금 있으니 남편도 일어나서 자고있는 아이들이 깰까봐 조용히 거실로 나온다. 


 주말은 이렇게 나와 남편 둘이서 한참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아이들이 눈을 뜬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했는데 이제는 아이들과 같이 주말 아침을 같이 먹는 시간이 간절해진다. 

이렇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사진첩을 자꾸 들춰보게 된다. 


 오늘은 큰 아이가 4살, 둘째 딸이 2살일 때 바르셀로나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 사진을 들춰보았다. 밀라노에서 바르셀로나로 남편이 이동발령이 나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 당시 바르셀로나는 밀라노보다 더 모던하고 개방적인 국제도시의 분위기였다. 얇은 패딩이면 겨울을 날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한 데다 바르셀로나 비치가 가까이 있어 휴양지의 느낌도 나는 도시였다. 

 사진폴더의 사진 화일을 한장씩 열어볼 때마다 아이들 어렸을 때 그곳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4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면 5월과 6월까지 온갖 장미가 만발하던 세르반테스 장미공원. 그곳은 우리 집 바로 옆이라 시간 날 때면 아이들과 그곳에서 자주 산책을 했다. 그리고 코스모 caixa 뮤지엄, 75번 버스를 타면 이 뮤지엄에 15분이 채 안걸려 도착하는데 일종의 자연과학박물관이라 할 일 없을 때면 무작정 시간 때우러 애들과 자즈 갔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린 몬주익 스테디움에서 아이들은 종종 자전거를 탔고, 날씨가 조금만 더우면 어김없이 비치로 향했다. 큰 애의 유치원 생활을 이곳에서 한 셈인데, 아이 둘 모두 유치원을 보내서 내 시간이 많이 생기고 여유로워져서 그런지 그 시절은 그저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이다. 

세르반테스 장미공원
바르셀로네타 비치에서 자전거 타던 아이들(좌), 아이들과 나(우)

 

 생각해보면 그렇게 좋은 시절을 좋은 도시에서 보냈던 그 시절의 내가 행운이었다 싶다. 누군가는 여행으로도 오기 쉽지 않은데 나는 그곳에서 3년이나 살았으니까. 거주했던 기간으로 치면 태어나고 자란 제주도가 제 1의 고향이고 10여년 넘게 산 밀라노가 제 2의고향, 그리고 바르셀로나가 제 3의 고향인 셈이다. 그 당시에는 남편이 눈코 뜰새 없이 바빠 나 홀로 해외에서 힘들게 독박육아 하는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그 시절을 회상해보니 그래도 참 좋았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싶다. 적당히 손이 덜 가지만 여전히 내 품에 있던 아이들이며, 어느 정도 내 시간도 있고, 남편과 나도 의욕이 넘쳤다. 아이들도 시험과 대학, 그리고 미래에 대해 고민이 필요없고, 나와 남편도 앞으로의 우리 미래를 장미빛으로만 그렸으니까. 아이들 어리고 내 손으로 밥 해먹일 때가 정신없었어도 뒤돌아보면 가장 행복할 시절이라고 말씀하신 친정엄마의 말이 새삼 동조하게 된다. 

 계절 바뀜이 크게 느껴져서 그런가. 오늘따라 기분이 멜랑꼴리하다. 저 당시에 나는 10년 뒤에 이런 모습으로 밀라노에서 살고 있을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10년이 더 흐르고 나면 그 때의 나는 어떤 순간의 사진을 뒤적거리고 추억을 회상하고 있을까. 새삼 시간은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쌓아올려갈 때 제대로 된 삶을 사는게 아닐까 싶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걸까.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십춘기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닌 듯 하다. 사진첩 하나 들춰봤을 뿐인데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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