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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제이 Jul 15. 2024

06. 때로는 몰라도 괜찮은 것들.

살아가다 보면 꼭 알아야 하는 것도 있지만, 때로는 몰라도 괜찮은 것들이 있다.

알아서 더욱 힘든 적도 있고, 몰라서 오히려 속이 편한 적도 있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나.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몰라도 괜찮은 게 하나 생겼다. 아니 모르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쪽도 남편 쪽도 페닐케톤뇨증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에게 페닐케톤뇨증 아이가 태어났을까?


병원에 갔는데 선생님께서 유전자 검사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셨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대답은 같았다. "저희는 유전자 검사는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고 다시 묻지는 않으셨다. 


어떻게 페닐케톤뇨증 아이가 태어난 거야?라고 하긴 했지만, 누구의 유전자 때문에 페닐케톤뇨증 아이가 태어난 것인지 알고 싶지는 않았다. 모르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남편도 같은 생각이었다. 정확히 알면 연구 결과나 이런 것들에 좀 도움도 되고, 여러모로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_ 딱 하나. 우리에게는 그다지 좋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나중에 혹여라도 나쁜 생각을 할 것 같았다. 부부싸움이라도 하는 날에는 서로 상대방의 탓을 할 것 같았고, 저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괜찮았을까? 하는 그런 별로인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았다. 나는 그게 싫었는데 남편도 그렇다더라. 유전자 검사를 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그저 상황을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고 했다.

또, 만약 본인의 유전자에서 나왔다고 했을 경우에는 아이에게도 배우자에게도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 매일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것 같았다. 


사람들은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던데 우리는 몰라도 되겠다는 선택을 했고, 지금까지 그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만약 우리가 유전자 검사를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지만, 우리에게 딱히 좋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매일이 슬프고 미안한 나날이었을 것이다. 때로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아는 것보다 좀 모르는 게, 나를 위해서 모두를 위해서 괜찮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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