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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Aug 20. 2022

살구색이 아니라서 한국인이 아니라니요? (1)

몰랐다. 내 남편의 눈이 푸른색인 줄.


남편 시준은 미국 애리조나 투손에 거주한 지난 6년 동안 푸른 눈동자의 소유자였다. 물론 그는 평범한 동양인이고, 미용렌즈는커녕 시력 교정 렌즈 한 번 껴 본 적이 없다. 발단은 ID, 즉 운전면허증이었다.


한국의 운전면허증과는 다르게 미국의 운전면허증에는 키, 몸무게가 명시되어있다. 심지어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까지 말이다. 시준의 ID 눈동자 색이 ‘BLU’(Blue, 파란색 약어)로 기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바로 발견하지 못했다. 운전면허증 발급 신청서류에 검은 눈동자라 썼으니 당연히 검은 눈동자라고 적혀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뜻밖의 벽안이라니. ID 갱신을 위해 다시 찾아간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시준은 눈동자 색을 적는 칸에 또박또박 ‘BLACK’이라고 썼다. 심지어 이전 운전면허증의 눈동자 색이 잘못 적혔으니 수정해 달라고 직접 직원에게 언급까지 했다. 그러나 몇 주 뒤 우편으로 받아 본 시준의 운전면허증은 여전히 그가 푸른 눈동자라고 우기고 있었다.


웃긴 건 그 누구도 딴지를 걸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맥주를 파는 펍에서 종업원에게 보여줬을 때도, 국내선 탑승구 앞에서 승무원에게 여권 대신 내밀었을 때도, 심지어 멕시코와 인접한 국경 검문소에서 방탄조끼와 권총으로 무장한 군인에게 제시했을 때도 말이다.


‘네 녀석이 BLUE EYES? 재밌군’ 정도로 여기고 지나갔던 걸까, 학생비자를 소지한 아시아인의 범죄율이 눈동자 색깔을 꼼꼼히 따져야 할 정도로 높지 않아서일까. 아무튼 별 탈은 없었고, 시준도 검은 눈동자로 돌아가기 위해 발급비 30달러를 내고 ID를 재신청하는 도박을 (이번엔 초록 눈동자로 바꿔줄지도) 택하지 않았다.


백두산보다 높은 Mt. Lemmon 구름 속 드라이브 (사진=박인정)



대체로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로 구성된 한국과 달리, 미국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제외하고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연합국가다. 2020년 기준, 인구의 57.8%를 차지하는 백인의 경우만 봐도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 색이 제각각 다르고, XS부터 XXXXX XL까지 존재하는 옷 치수가 대변하듯 3억이 넘는 미국 사람들의 키와 체형도 천차만별이다.


그렇게 보면 개인정보 유출에 그 어느 나라보다 민감하고 엄격한 미국이 ID에 키와 몸무게까지 적어 넣는 이유가 이해된다. 이왕 적을 거면 피부색도 적지라는 질문이 따라오는데, 피부색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인종차별이기 때문에 제외한 게 아닌가 싶다. 추가로 버지니아, 텍사스 등 일부 주에선 운전면허증에 몸무게를 적지 않는다고 한다. 곧 우리 부부가 살게 될 텍사스에선 내 몸무게를 비밀로 해도 되니 기쁠 따름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영월매일에 동시 연재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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