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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정 Jan 18. 2024

오른손만이 옳은 건 아니니까

열네 번의 우물우물- 네 번째 긷기


오래간만에 꺼낸 색연필과 파스텔을 향해 절로 손이 간다. 올바른 방향으로 지정되어 많은 사람들이 쓰는 쪽이다. 어린 내가 어떻게 오른손을 쓰게 됐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다 할머니한테 호되게 혼나 눈물을 삼키던 둘째 동생의 얼굴은 지금도 또렷하다.



어디로 엇나갈까, 무작정 집어든 파스텔은 신중하게 움직인다. 느리지만 망설임 없이 단 한 획에 꽃 한 송이를 그려낸다. 마치 오른손으로 잘 그린 꽃그림 같지만 왼손이 해낸 일이다. 잃어버린 형제와 상봉한 느낌으로 나는 색색의 채색도구를 왼손으로 쥐어본다. 서툴고 어색한 감각이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모두가 옳다는 방향이 때론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올바른 손이 아니라고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직접 파스텔을 들고 나서야 나는 그 말들이 온전히 체화된다. 종종 이 손으로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가끔은 엇나갈 선과 면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마음으로.


#무해함일기 #CQ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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