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의 취향
나를 보면 무슨 색깔이 떠올라?
나는 물컹한 복숭아를 좋아한다.
하지만 나의 남편은 딱딱한 복숭아를 좋아한다.
복숭아를 두 가지나 사기에는 돈이 아깝다.
그냥 딱딱한 복숭아를 집어 들었다.
옷 쇼핑을 하러 가면 아이들 옷이 너무나도 예쁘다. 특히 딸아이에게 입히고 싶은 옷들이 많다.
스커트, 블라우스, 바지, 원피스.
신발도 구두, 샌들, 부츠, 운동화 등.
딸 인형 놀이에 심취해서 신나게 고르기 시작한다.
옷 몇 개만 골랐는데도 돈 10만 원 넘어가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나의 옷은 아이 등원시킬 때 입는 티셔츠,
외출할 때 입는 원피스를 교복처럼
세탁해 가며 입고 있다.
내 옷도 골라보다가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살이 쪄서 옷 입어도 예쁘지도 않아서
내 옷을 사는 건 의미 없다 생각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아이 학원하나
더 보내는 것이 나은 선택이다.
아가씨 때는 나도 옷을 참 좋아했었다.
한껏 꾸미고 나가서 거리를 배회하다가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셀카 찍는 것을 좋아했다.
옷의 취향도 확실했다.
나는 레이스 달리고 샤랄라 한 옷은
좋아하지 않았다.
미니스커트에 롱부츠 신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에게 옷은 아무 의미가 없다.
아이 데리고 미니스커트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심지어 하얀색 티셔츠도 안된다.
하얀색 티셔츠를 입었다가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난 뒤, 옷에 무엇이 묻을지 모른다.
회색, 아니면 검은색 티셔츠만 너무 입었나?
나도 내가 입은 옷처럼 점점 무채색이 되는 것 같다.
나의 색깔이 없어졌다.
활력이 가득했던 나의 색깔이 없어졌다.
연애 시절 남편에게
"나를 보면 무슨 색깔이 떠올라?"
물었을 때 남편이 "노란색."이라고 대답했다.
활동적이고 웃음이 많았던 나는
항상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었고,
애교와 말도 많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애교는 부릴 여유가 없다.
아이들에게서 받은 스트레스.
그 투정과 심술을 괜히 남편에게 퍼붓고 있다.
활력? 화난 모습이 아니면 다행일까?
미간에 주름만 생기고 있다.
지금 남편에게 다시
"나를 보면 무슨 색깔이 떠올라?"라고
묻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
"검은색."이라고 할까 봐 괜스레 겁이 난다.
거울을 볼 때마다 기미로 얼굴을 까맣게 덮인
칙칙한 아줌마 한 명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도 여자인데, 여자인 나를 너무 방치했었나 보다.
여자인 나에게 갑자기 미안해진다.
거울 보며 비비 크림에 립밤 바르기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흰색은 안되지만,
검은색 블라우스라도 하나 사야지.
물컹한 복숭아도 왠지 꼭 먹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