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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정 Jan 03. 2023

물품선정위원회 운영에 대한 고뇌


지난 12월 초 교육청에 제안서를 제출했다.


학교 현장에서 거의 형식적으로 운영 중인 '물품선정위원회' 업무를 개선하여 행정업무 간소화를 요구한 것이다.


한 달 만에 관련 공문이 시행되었다.


제안서의 구체적인 내용은 우선 물품선정위원회 제도 자체를 폐지하라는 것이었다.

차선책으로 폐지가 불가능할 경우, 물품선정위원회 운영 대상을 현재의 수의계약 금액에 맞추어 상향조정할 것을 제안했다.


교육현장의 행정 업무를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이번에 시행된 내용을 살펴보니 여러 측면에서 아쉬움이 크다.

개인적인 관점임을 전제한다.


우선, 교육청은 형식적으로 운영 중인 물품선정위원회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교육청은 나의 제안에 대해 폭넓은 의견수렴, 진지한 검토와 고민을 전혀 하지 않았다.  


교육청에서 통보한 공문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물품 구입 방법과 금액을 고려하여 특정 조건에 해당할 경우, 

학교에서는 물품을 구매할 때마다 위원회를 구성하고, 회의를 개최하며, 그 결과를 기록하여 첨부해야 한다.


개선점이 있긴 하다. 

물품선정위원회 운영 대상이 일반물품 구매 시 총액기준 기존 5백만 원에서 1천만 원 이상으로 조정되었다.

아울러, 나라장터와 학교장터를 이용하거나 장애인 생산품을 구매할 경우에는 2천만 원 이상일 때 운영 대상이 된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금액을 상향하면서 별도의 심사기준표 등을 첨부하게 하여 학생들의 교육활동에 전념해야 할 교사들에게 잡무라 여겨지는 일을 더 늘린 점이 매우 아쉽다.


이러한 이유로 교육청의 제도 개선에도 불구하고 행정업무 감축 효과는 미미하고, 만족스럽지 않다.


또한, 물품선정위원회를 구성하고 개최하여 논의했다고 해서, 공정하게 물품이 선정된 것인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학교의 교직원은 물품선정위원회라는 것에 대하여 '서면만 갖추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이미 널리 팽배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행정실장 입장에서 '위원회를 왜 제대로 운영하지 않느냐?'라고 형식과 내용을 물어가면서 관리감독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나는 교육청과 생각이 완전히 다르다.


물품선정위원회라는 제도 자체가 필요하다고 치자. 그러나 목적 달성 방법을 학교에 맞길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민과 공무원의 관심사인 인사, 예산, 감사 등의 문제도 그렇지만,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시스템을 만들고, 그 시스템을 활용하며, 과정과 결과를 공개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교육청은 이러한 관점의 전환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직 기존의 제도를 정비하는데만 집중했다.


즉, 교사 등 학교업무 경감이라는 추진 방향 설정은 했지만, 구현 방법에 그 어떤 정성이나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제안을 해본다.

물품선정위원회에 대한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그곳에서 대상과 관계자 의견이 취합되며, 공개되는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전남교육청에서는 '온라인 물품선정위원회'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다.


자세한 내용을 알 길은 없으나, 주무 부서에서 참고했으면 좋겠다.



두 번째로 아쉬운 점은 애초부터 교육청은 관계공무원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며, 적용 대상을 잘못 판단했다.


그래서 이 제도를 없애지 못했고, 대상 금액을 상향하면서도 물품 선정 평가 기준 등의 서류를 추가하도록 안내한 것이다.


즉, 물품 선정과정에서 교육청의 엄정한 통제나 지휘가 없을 경우, 크나큰 부정부패가 발생한다고 여기는 관점 자체가 문제다.


제도를 처음 도입한 2011년 이전에는 현재와 다르게 물품선정 관련 사건사고가 자주 있었다.

교육청 단위에서 암암리에 사적 이익 추구 등의 이유로 특정 제품을 선정하고, 그 대가로 리베이트를 받는 일이 있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울산지검 특수부는 2004년 10월에 기자재 납품업체와 조경업체, 칠판납품업체 등의 사무실 압수수색, 계좌추적 등을 벌였는데, 교육청 고위간부들과 납품업자들과의 골프 해외여행 등에서 비롯되었다. 아울러, 리베이트 정기 상납 등과 관련하여 부산도시개발공사와 울산우체국 회계팀장 등의 금품수수 등도 언급되었다.


90년대 중반부터 교육지원청에 근무했던 나도 동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여럿이다. 

울산, 부산 등의 사건과 비슷한 일명 칠판 사건, 창호 사건 등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은 모두 학교가 아닌 지역이나 본청 단위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의 계약담당 공무원과 담당 부서 직원들은 검찰청 출두 조사 등으로 혹독한 처벌과 징계를 받았다.


범죄자는 학교 근무자가 아닌 교육청 단위의 공무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청은 그 책임을 학교에 떠넘겼다.


그래서 이 제도의 도입 취지나 목적을 고려할 때에 운영 대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의 아쉬운 점은, 물품선정위원회란 제도가 시대와 맞지 않다는 관점을 갖지 못한 점이다.


제도 도입 당시의 상황에서는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가 크게 요구되었다고 치자.

그러나,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학교의 모든 교직원은 고도화된 인터넷 쇼핑몰을 활용한다.

가격비교 사이트도 비일비재하다.


즉, 인터넷 쇼핑, 구매와 배달 시스템 등이 현재와 같지 않은 시대였다.

교육청에서 제안에 따른 검토와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한 점은 이해하지만,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라는 인식을 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개인적으로 너무 아쉽다. 



(결론)

공정성과 투명성의 확보는 다른 말로 하면 물품 구매 시 관계 공무원의 부정부패 예방이다.


즉, 물품구매 선정 과정에서 혹시라도 있을 특정 업체 등의 청탁, 사적 이익 추구  등이 개입될 여지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서 학교 현장에 서류 작성만을 요구하는 제도의 운영은 바람직하지 않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교육청 단위의 프로그램 구축과 공개로 시대를 앞서가는 해결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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