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남자

- 사계절 내내 힘들었지만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by 조희정

도시의 평범한 직장인이 보내는 사계절은 이렇지 않을까? 봄이 오면 새싹이 돋고 각종 꽃들이 핀다. 산보하기 좋고, 책을 보기도 좋은 계절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기운을 펼쳐내 주말과 여가를 이용해 산으로 바다로 마음껏 돌아다닌다. 여름에는 몹시 더운 날씨 속에서 잠시 쉬어 가기 위해 휴가를 계획한다. 가을이 무르익는 요즘 같은 날에는 평소 좋아했던 책을 보고 쓰고 싶었던 글에 더욱 집중한다. 겨울이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이 좋고 느슨해진 체력 관리를 위해 여기저기 명산을 찾아 등산을 즐긴다. 단조롭게 묘사를 했지만 이런 양태는 지금의 내가 사계절을 보내는 모습이다.


아버지의 사계절은 어땠을까? 온 힘을 다해 그야말로 뼈 빠지게 일을 해야만 하는 노동이라는 측면 하나를 놓고 보면, 산골에서 어린 자녀와 함께 농사를 지을 때가 더 좋았노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겨울이면 조금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


50대 중반이 되어 인천이라는 거대한 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겼을 때부터의 사계절은 늘 같게 되었다. 건설 현장 잡부가 되어 여기저기서 온갖 시다 일을 다녔기 때문이다. 2~30대인 나도 아버지를 통하여 일명 막노동은 계절과 무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인가 여쭈어본 적이 있다. "아버지, 막노동은 언제 쉬어요? 너무 힘들게 일하는 거 같아서요." 그랬더니 "비 오는 날만 쉰다."라고 덤덤히 말해주셨다.


시골살이 때는 겨울에도 경제 활동을 이어가려 여러모로 노력했다. 동네 친지와 지인분들이 새벽부터 구들장에 이글거리는 장작불을 지피고, 뜨끈뜨끈한 아래 목에 하루 종일 누워 엉덩이를 지져대던 겨울날, 아버지는 일과 돈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중 하나가 겨울마다 연례행사처럼 벌인 사업이 갈대 빗자루의 제작과 판매였다.


순창 복흥면 대방리는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가 여럿이다. 신적산, 왕 바우산, 무덤골, 안골 등 지명도 가지가지다. 산이 험하고 그 사이로 난 고갯길도 멀다 보니 곳곳에 오래되어 썩은 나무와 갈대가 무성하다. 아버지는 눈이 하얗게 쌓인 겨울이면 두 가지 일에 몰입하셨다. 첫 번째는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작 등 땔감을 비축하는 일이고, 두 번째는 빗자루 제작 원료인 갈대를 꺾어 오는 일이다.


추월산 등 멀고 험한 곳까지 원정을 다니면서 2~3일간 튼실한 갈대를 모아 온다. 빗자루용으로 손 질을 한 갈대는 쇠죽을 끓이는 가마솥에서 소금과 함께 살짝 데쳐낸다. 물기를 빼고 잘 말린 후에 빗자루 제작에 들어간다. 빨강, 주황, 노랑 등 오색 빛깔의 나일론 끈을 이용해 보기 좋게 묶으면 빗자루가 만들어진다. 실내외에서 사용하는 갈대 빗자루인데, 지금도 시골 5일장에 가면 간혹 볼 수 있다. 갈대가 달아 없어질 때까지 쓸 수 있어서 꽤 오랜 기간 사용이 가능하다.


이렇게 3~4일간 50여 벌의 빗자루를 만들면, 판매를 하러 가신다. 대중교통이 변변치 않아서인지, 버스비를 아끼려 했는지는 모르겠다. 빗자루를 지게에 가득 담아 담양이나 정읍 시장을 향해 새벽 4시쯤 출발했고, 하루 종일 시장을 누비며 소매 장사를 하셨다.


후일 들은 이야기지만, 날이 저물어 더 이상 판매가 불가능하면 남은 빗자루가 얼마 큼이든지 상점에 헐값으로 넘긴다고 했다. 2천 원 받던 것을 천 원 정도의 반값으로 후려치는데, 어쩔 수 없이 그리한다고 하셨다. 이렇게 몇 만 원의 돈을 벌어 가족과 명절을 보내고, 새 학기에 필요한 학용품도 사주셨다.


겨울철 경제 활동은 그뿐이 아니었다. 어떤 해는 대나무 광주리와 소쿠리를 제작하여 담양과 정읍 시내를 다니며 팔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소품들의 제작과 장사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소득도 보잘것없이 미미했다.


그래서 계절마다 고민과 번뇌가 이어지셨다. 그러다가 40대 중반부터 10여 년간 복흥면 5일장에 뛰어들었다. 살림살이에 사용하는 각종 소품, 즉 가위, 칼, 비누, 칫솔, 치약 등을 판매하는 잡파상이었다. 큰돈이 되지는 않았으나 시장에서의 장사를 즐거워하셨다. 생전 처음으로 5일마다 정기적인 현금이 들어오고, 푼돈이지만 예금이라는 개념도 알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사계절을 줄기찬 노동으로 이어가며 어떻게든지 가난을 이겨보려 했지만,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배움이 없었고,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컸으며, 친지나 친구 등 기댈 곳도 없었다.


오직 튼실한 몸 하나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외로운 늑대 같은 남자였다. 아버지의 사계절은 그야말로 고독하고 힘든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자식을 비롯한 가족의 온전한 부양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냈고,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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