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가을이었습니다. 그녀의 인상은 약간 거칠어진 피부에 연한 보라색의 발그레한 모습으로 기억합니다. 첫 만남은 잠깐의 인사만을 남기고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눈에 들어온 것은 잎들이 점점 떨어져 가는 늦가을이었습니다. 점점 물들어가는 나뭇가지에 길게 늘어선 고즈넉한 모습이었죠. 그리고 그녀는 많은 이야기와 기억을 남긴 채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나는 안타까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봄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죠. 그래서 새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봄이 되어도 그녀는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매화가 피고 벚꽃이 지고 장미마저 질 무렵이 되어서야 그녀는 살짝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밝은 하늘 아래 흰 구름이 떠다니던 어느 날, 맑은 새순이 돋아 오르는 것을 보고 나는 그녀를 알아차렸습니다. 나는 반갑게 인사했지만 그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군요. 아, 그녀는 내가 알던 그녀가 아니고 그녀의 딸이었네요.
나를 정중하게 소개하고 지난가을에 그녀의 삶을 지켜보며 얼마나 많은 대화를 했는가를 오랫동안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어 작고 하얀 꽃송이로 나에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나는 또 가슴이 설레며 그녀를 바라보았고요. 사실 나는 그녀의 어린 시절은 처음 보았거든요. 그녀들이 어떻게 꽃을 피우고 어떻게 자라 가며 열매를 맺어갈지가 무척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금방 친해졌습니다. 그녀는 파란 하늘 아래 멋진 미소와 함께 아름다운 춤사위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녀와 함께 커피도 마시고 음악도 들려주기도 하였고요. 그녀도 모차르트를 좋아하네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2악장의 달콤한 선율 속에 그녀의 미소가 점점 커지는 듯합니다. 저도 덩달아 미소가 지어지고요. '로맨스'라서 더 그럴까요?
그런데 그녀들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얼굴도 예뻤지만 향기 또한 정말 좋았습니다. 맑은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듯한 피아노의 선율과 함께 그녀들의 진한 향기는 저를 좀 어지럽게도 하였죠. 가까이 갈수록 강하게 느껴지는 향기에 저는 그저 헤벌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그녀들이 점점 웃어가자 정원에는 화사한 미소와 함께 향기가 가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들을 좋아하는 한 것은 저만이 아니었네요. 벌과 나비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곤충들이 그녀들 주변에 가득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질투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저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좋아할 뿐이었거든요.
어느 날 문득 그녀에게 변화가 생겼습니다. 진한 색으로 말라 가는 꽃 아래에서 작고 예쁜 아이들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너무 신기하고 또 주근깨 같은 흰 점들마저 예뻐 보이더군요. 나는 새로운 생명을 키워가는 그녀들이 대견하여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그녀는 기뻐하는 듯하였습니다. 크게 함박웃음을 웃으며 그 진한 향기를 풍겨주더군요. 저 역시 마음이 환해지고 그 하얀 미소와 향기에 점점 취해가게 되고요.
때로는 고요한 미소와 함께 잔잔한 향기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연한 분홍빛이 감도는 미소를 보여주기도 하더군요. 그녀의 맑은 미소와 진한 향기와 함께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5번 1악장을 듣습니다. 그녀의 웃음소리에서도 바이올린의 현에서도 힘찬 생기가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