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날 '나의 정원'을 둘러보다.

어느 맑은 가을날입니다. 밝은 햇살을 받으며 여러 색깔로 물들어가던 나뭇잎이 산들바람에 마치 춤을 추듯 날아옵니다. 산책길에는 빨갛고 노랗고 갈색인 나뭇잎들이 제법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가을은 붉게 물들어가는 계절이지만 낙엽의 계절이기도 한가 봅니다.    

  

     

이곳저곳을 천천히 걷는 산책자의 눈에는 익어가는 여러 열매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잎새 사이에는 갸름한 모양의 빨간 열매도 보이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나무에는 둥근 열매도 있습니다. 어느 작은 열매는 보라색으로 익어가는군요. 가을날의 산책길에는 여러 가지 색깔이 어우러져있네요.     

도시에 사는 우리는 가끔 전원생활을 꿈꾸기도 합니다. 자연은 나를 있게 했고 그래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또 멋진 경치를 보러 여행을 가기도 하고요. 어쩌면 자연은 마음의 고향일까요? 그런데 도심에도 작지만 자연이 있네요. 동네의 이곳저곳을 산책하다 보니 작은 꽃밭도 만나고 제법 우거진 나무를 보기도 합니다. 수풀 속에도 많은 꽃들이 피어나고 벌과 나비가 날아옵니다. 도시도 자연 속에 있는 것인가 봅니다.      

오늘은 나의 발길이 머무는 곳들을 '나의 정원'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이곳을 걸으며 활짝 핀 꽃들을 보고 그녀들이 열매가 되어가는 모습도 바라봅니다. 그녀들과 함께 음악을 듣고 커피도 마십니다. 때로는 그녀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춤을 보고 노래를 들으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보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생각들은 마음의 꽃이 되고 열매로 익어가기도 하네요. 가끔은 낙엽이 쌓여가는 벤치에 누워 부드러운 햇살을 받으며 산들 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껴보는 가을날이 참 좋습니다. 어쩌면 나의 정원에서 나의 생각의 정원은 또한 자유롭게 커져가는 듯도 합니다. 

이 가을이 시작될 때는 몰랐던 열매들에게 이제는 이름을 불러줍니다. 그녀들의 이름을 불러주자 나에게 와서 꽃이 되고, 열매가 되고, 의미가 되었습니다. 이제 나의 정원의 그녀들이 맞겠지요? 나의 정원의 그녀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매자의 잎은 마치 꽃처럼 울긋불긋 물들어가고 갸름한 열매는 빨갛게 익어갑니다. 이름이 조금 거칠긴 해도 열매가 보랏빛으로 반짝이는 좀작살나무입니다.      

나뭇가지 사이에서 눈길을 끄는 둥근 낙상홍은 오늘도 붉게 붉게 익어가네요. 마른 조팝나무의 가지를 타고 커가고 있는 박주가리입니다. 갸름한 열매는 마치 새가 앉아있는 듯한데 이제 머지않아 홀씨를 날리는 모습을 보게 될 듯합니다. 지난봄에 노란 꽃을 피우던 산수유는 빨간 열매가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흐드러지게 열려있네요.      

물들어가는 잎새 사이에서 탐스럽게 익어가는 꽃사과도 있습니다. 열매가 진하다 못해 검게 보이는 남정목입니다. 사철나무의 둥근 열매는 익어가며 저절로 벌어지네요. 화살나무 열매도 주황색의 속살을 보여주는군요. 신기합니다. 주목의 열매는 초록 잎 사이에서 빨갛게 익어가네요. 문득 녹의홍상의 신부가 생각납니다.     

천천히 걷는 나의 정원은 초록색, 노란색, 갈색 그리고 붉은색 등이 섞이며 어우러져 있습니다. 다채롭게 물들어가는 가을의 잎과 열매에는 이미 가을이 내려앉아 있는 듯합니다. 연한 색깔로 물들어가는 벚나무에서는 새소리가 들려옵니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나의 정원에서 그녀들과 함께 와인을 마시며 브람스를 듣겠습니다. 브람스의 교향곡 1번 4악장에서 흘러나오는 호른의 솔로가 가을바람을 타고 파란 하늘로 부드럽게 날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