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꽃잎 그리고 '곡강(曲江)'과 '가을'
노란 씀바귀 꽃이 피어있는 돌계단을 조심해서 내려옵니다. 그런데 장미의 꽃잎 한 장이 떨어져 있는 게 보이네요. 주변을 돌아보니 아주 많이 떨어져 있군요. 이제 장미의 계절이 가버리는 것일까요?
문득 두보의 곡강(曲江)의 첫 구절이 생각납니다. 잠시 시를 찾아서 다시 읽어봅니다.
一片花飛減卻春
風飄萬點正愁人
꽃잎 한 조각 날려도 봄빛이 줄어들건만
바람결에 나부끼는 수많은 꽃송이, 나는 수심에 휩싸이네.
물론 시인은 한 가지 꽃이 지면 또 다른 꽃이 피어나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수심에 잠기는 것은 봄날이 가버리는 아쉬운 마음 때문이겠지요. 왠지 시인의 삶의 어려움도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오늘도 날씨는 화창하다 못해 뜨겁게 느껴집니다. 여름은 이렇게 후끈하게 다가오나 봅니다. 뜨거운 햇살을 헤치며 잠시 걸어봅니다. 그런데 따갑게 내리쬐는 햇빛에도 식물들은 씩씩하게 꽃이 피고 열매는 또 붉게 익어갑니다.
야외 카페의 화분에는 여러 꽃들이 활짝 피어있습니다. 빨간 체리 세이지의 긴 줄기가 바람에 흔들거립니다. 온기 가득한 바람에도 지지치 않고 밝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며 피어있네요. 옆에는 분홍색의 사계 국화와 보라색의 로벨리아가 화사하게 피어있습니다.
빨간 버베나는 정말 빨갛네요. 잠시 그늘이 져도 뜨거운 듯합니다. 자주색 버베나도 있군요. 뒤쪽의 흰색 버베나와 함께 산뜻하게 피어있습니다. 그늘진 곳의 흰색 버베나는 조금 시원한 모습이네요. 햇살이 비추어도 그늘이 져도 각각의 색감은 예쁘기만 합니다.
비덴스는 뜨거운 햇살에 좀 더 진해 보이는 노란색 꽃이 초록 잎과 멋지게 어울립니다. 활짝 핀 보라색 라벤더도 바람에 산들거리며 향기를 날리고 있네요. 마치 보라색 향기가 흔들리며 솟아오르는 듯합니다.
딸기도 붉게 익어가네요. 연두색이 노랗게 변하고 주황색을 띠는가 싶더니 다시 빨갛게 익어갑니다. 잘 익은 빨간 딸기에는 단맛이 가득하겠지요. 그런데 초록의 잎 사이에는 아직 진한 분홍색의 꽃이 피어 있습니다.
익어가는 앵두는 따가운 햇살에 더욱 붉어지나 봅니다. 탱글탱글한 느낌이 드는 앵두가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다들 하나 둘 탐스럽게 익어갑니다. 뒤쪽에는 분수의 하얀 물줄기가 솟아오르는데 한낮의 열기를 조금 식혀주는 듯합니다.
그런데 날씨가 더워지니 아이스커피와 뜨거운 커피 사이에서 잠시 망설이게 되는군요. 요즘 듣고 있는 인문학 강의 중 오늘 들은 라파엘로와 모차르트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이 세상에서 라파엘로는 37년을 살았고 모차르트는 35년간 살았습니다. 그런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라파엘로는 그릴 그림은 다 그리고, 모차르트는 작곡할 음악은 다 작곡했다’라던 강사의 말이 기억에 남는군요. 비록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이 두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들을 극찬하는 말로 이해됩니다. 나이를 생각해보니 다시 두보의 곡강(曲江) 두 번째 수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來稀
외상 술값은 가는 곳마다 있기 마련이지만
인생 칠십 살기는 예부터 드문 일이라네.
시인도 약주를 즐기셨나 봅니다. 그런데 시인은 58세까지 사셨네요. 시인의 말처럼 인생 칠십은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었던가 봅니다. 하지만 시인도 쓸 시는 다 쓰시지 않으셨을까요? 그런데 그 시대는 인심이 후했던가 봅니다. 지금은 오히려 외상 술값이 드문 일이 아닐까요?
커피를 들고 아까 강의 시간에 친구에게서 온 메시지를 읽어보니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네요. ‘오늘 저녁에 만나면 뭘 먹고 싶냐?’는 물음에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뜨거운 날씨에도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들을 바라보며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 1악장을 들어봅니다. 오늘은 산들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꽃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네요. 어쩌면 인생은 사는 햇수가 아니고 충만한 기쁨이 더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