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내린 눈은 이제 다 녹고, 다시 갈색이 된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은 잠시 겨울 나그네가 됩니다. 하지만 매화나무의 마른 가지에는 꽃눈이 달려있습니다. 꽃눈은 이미 가을에 돋기 시작하여 추운 겨울을 견뎌내며 봄이 되면 마침내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긴 시간은 인내의 기간이겠지만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즐거움도 있을 듯하네요.
마른 가지의 야광나무에는 아직 검붉은 열매가 달려있습니다. 비록 많이 쭈글쭈글해졌지만 무언가 그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지난 계절의 꽃과 초록의 열매가 붉게 익어가던 많은 시간을 그 안에 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또한 산들바람과 비와 햇빛이 가득 담겨있는 듯도 합니다. 그래서 그 안에는 단단한 생명의 씨앗이 익어있겠지요.
영하의 날씨지만 파란 하늘 아래 다가오는 아침 햇살이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진한 색깔의 야광나무 열매도 햇빛을 받으며 밝은 색감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햇빛은 생각보다 빨리 멀어져 가고 야광나무 열매는 조금 더 진한 색깔이 됩니다. 그늘이 지니 조금 더 그윽한 느낌도 드는군요.
저 검붉은 열매 안에 담겨있는 지난 계절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봄이 되니 초록의 잎 사이에서 진한 분홍색의 꽃봉오리가 돋아나더군요. 그리고는 이내 피어나는 하얀 꽃들은 싱그럽기만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꽃은 열매가 되고, 작은 열매는 햇빛을 받고 비도 맞고 바람도 맞으며 조금씩 커져갔습니다.
초록의 열매는 그 안에 한 여름의 강렬한 햇살을 담고 가을비에 세수도 하며 점점 커집니다. 뭔가 조금씩 색깔이 바뀌는 듯한 열매가 빗방울을 담고 있으니 더욱 맑은 느낌이 듭니다.
가을 햇살이 점점 스며들자 열매들은 어느새 붉은 색깔로 반짝입니다. 풋풋했던 초록의 미소가 매혹적인 붉은 웃음으로 바뀌어가는 듯하네요.
분홍색 꽃봉오리, 하얀 꽃, 초록의 열매 그리고 붉게 익어가는 열매도 모두 아름답습니다. 검붉어지고 주름진 열매까지도 말입니다. 각각의 모습에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각각의 매력이 담겨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야광나무가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이니까요. 그런데 반드시 하나의 모습만을 고르라며 어떤 것을 골라야 할까요? 음... 아마도 불가능할 듯합니다.
하얀 김이 올라오는 뜨거운 커피의 향이 달콤합니다. 한 모금 마셔보니 입안에 커피의 맛이 가득해집니다. 천천히 한 모금씩 음미하며 시간을 연장해 봅니다. 마지막 한 모금이 조금 식었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네요. 이렇게 천천히 마시는 커피는 이미 나의 것이 되었고 길어진 시간은 나의 즐거움을 연장해 주었으니까요.
'그러므로 즐거워하자'는 'Gaudeamus Igitur'를 테너 마리오 란자의 매끈한 목소리로 들어봅니다. 그는 '그러므로 즐거워하자, 젊은 동안에. 즐거운 젊음이 지나고, 힘든 노년이 지나면, 땅은 우리를 가질 것이니'라고 노래하는군요. 그런데 우리 안에는 어린 시절도 있고, 젊은 시절도 있고, 중년의 시절도 담겨있으니까 어쩌면 '삶의 모든 시절을 즐거워하라'라고 느껴봐도 좋지 않을까요?
또 다른 라틴어 경구인 'Carpe diem'을 생각해 봅니다.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 말처럼 짧은 인생이라면 내일에의 기대를 줄이고 이제 와인을 따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어쩌면 어제에 대한 아쉬움도 줄이고 현재 안에 남아있는 즐거운 기억을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그런다면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조금 멀어질 듯도 합니다. 그리고 그리하여 달라졌을지도 모를 어떤 상태를 상상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지금 현재의 삶이 오롯이 나의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지금 이 순간에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둘러본다면, 곳곳에서 삶의 즐거움과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듯합니다. 여러 방향으로 천천히 걷는 길에는 의외로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 길에는 지금 나의 발걸음도 쌓여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