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가리의 하루 그리고 여름날의 즐거움

by 블루윈드

아침 바람이 산들 하게 불어옵니다. 바람 끝에는 뭔가 서늘한 느낌이 묻어있는 듯한데 아침 햇살은 따갑게 비쳐옵니다. 하늘은 파랗고 초록의 정원은 한가롭게 느껴집니다. 파란 하늘을 향해 박주가리의 가는 줄기가 힘차게 뻗어가고 박주가리 꽃과 잎이 하늘거립니다. 그런데 진한 꽃향기가 날아옵니다.


별 모양으로 피어나는 하얀 꽃들이 초록 잎 사이에서 아침 햇빛을 가득 받고 있습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꽃들이 눈이 부신 듯 반짝이는데 진한 향기가 퍼져옵니다. 여름날에 화사하게 피어있는 하얀 꽃들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 집니다.


가는 솜털이 가득한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은 꽃들이 모여 피어있는데 전체적으로는 동그란 구형이네요. 꽃들도 모여 피고 향기는 섞이며 아름다운 미소와 함께 진한 향기를 느끼게 합니다. 조금 더 다가가자 진한 향기가 콧속으로 훅하고 들어옵니다. 산책자는 그저 황홀할 뿐입니다.


구불구불 뻗어가는 줄기의 초록 잎 사이에 하얀 꽃들이 피어있고 또 초록의 열매들이 자라납니다. 어느 열매의 끝에는 지는 꽃잎이 아직 달려있기도 하네요. 뜨거운 햇살을 받으면서도 박주가리는 탐스럽게 커갑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햇빛은 강렬하고 꽃과 열매는 빛나는데 햇빛이 강할수록 더 힘차게 자라는 것일까요?


이 무더운 여름에 이런 예쁜 꽃을 볼 수 있을 줄 몰랐습니다. 지난가을에 우연히 박주가리 열매를 본 후 박이 터지며 씨앗을 날리는 것을 보았었죠. 그리고 이 봄에 새순이 나고 잎이 커가고 꽃봉오리가 맺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아직도 작년의 그 줄기에는 빈 박주가리 껍질이 달려있기도 하네요. 이제 향기 가득한 꽃과 커가는 열매를 보게 된 게 행운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시 한번 진한 향기를 맡아봅니다. 약간 어찔한 느낌입니다.


아직 작고 굳게 입을 다문 봉오리, 조금씩 힘이 느껴지며 벌어지는 봉오리, 솜털과 함께 활짝 피어나는 봉오리들이 각각의 시간의 차이를 느끼게도 하는군요. 시간의 차이는 또 있습니다. 피어나는 꽃봉오리 옆에는 이제 씨앗을 다 날려버린 텅 빈 박주가리 껍질이 아직도 달려있습니다. 지난가을에도 그렇게 느꼈지만 여전히 어떤 텅 빈 충만함이 느껴지네요.


이제 한낮의 햇살은 따갑기는 하지만 박주가리 꽃은 여전히 향기를 날리고 있습니다. 초록 잎 사이에서 커가는 열매들도 햇살에 반짝입니다. 작은 주근깨가 박혀있는 초록의 열매가 점점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저녁 무렵이 되니 바람 끝이 다시 좀 더 선선해집니다. 해는 이제 저물어도 박주가리 꽃은 여전히 예쁘게 피어있습니다. 열매도 커가고요. 저녁 햇빛을 받으니 꽃도 붉어지는 느낌이네요. 향기도 붉어질까요?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꽃은 연한 보랏빛을 띠고 안쪽은 좀 더 진해집니다. 역시 색은 빛인 것이지요. 하지만 향기는 여전하네요.


그리고 밤이 되었습니다. 어두운 밤, 이제 세상은 휴식을 합니다. 꽃들도 쉬고 있을까요? 박주가리의 하얀 꽃들은 여전히 활짝 피어 산책자를 반겨줍니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듯한 벤치에 기대어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별은 보이지 않지만 별 모양의 꽃은 향기와 함께 산책자를 행복하게 해 줍니다.


밤에도 피어있는 그녀들과 함께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소프라노 조수미의 목소리로 들어봅니다. 그녀들이 날리는 향기처럼 아름다운 노래가 여름 밤하늘에 조용히 퍼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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