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끝이 선선하면서도 아직 더위의 느낌이 남아있는 늦여름입니다. 이 여름의 느낌을 간직해보려 천천히 산책을 나서보니 배롱나무의 꽃은 아직도 한창입니다. 붉은색과 흰색의 꽃도 예쁘고 분홍색 꽃도 예쁘네요. 그런데 꽃은 떨어져도 꽃이군요. 분홍색 꽃잎이 떨어진 땅바닥이 캔버스가 된 느낌입니다.
언덕의 산수국은 꽃이 지고 씨앗이 커가고 있네요. 작은 꽃의 바깥쪽에 피어있던 헛꽃은 방향이 뒤집혀 있습니다. 이제 벌들보고 다른 꽃으로 옮겨가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여기저기서 매미소리가 한창이네요. 새소리도 들려오고요. 산들바람에 하늘 거리며 향기를 날리고 있는 박주가리를 보며 매미 소리를 담아봅니다. 매미들의 합창이 제법 크게 울려옵니다.
야외 카페 앞의 버베나는 붉은색 꽃이 마치 불이 타는 듯한 느낌입니다. 정말 빨갛네요.
카페의 파라솔 아래에는 채송화가 허공에 매달려있습니다. 깃발이 아니고 꽃이 매달려있군요. 카페 사장님의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길게 늘어진 로즈메리의 흰 꽃과 초록의 잎도 산뜻합니다.
카페에 들러 매미소리를 들으며 뜨거운 커피를 테이크 아웃합니다. 진한 향이 올라오는 커피는 맛있고 어느 늦여름의 아침은 고요합니다. 살짝 흐렸던 구름이 걷히며 이제 파란 하늘이 나오고 있네요. 천천히 다시 천천히 걸으며 계속해서 보아왔던 꽃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꽃잎이 떨어지는 칡꽃은 이제 절정을 지난 듯합니다. 하지만 향기는 여전하네요. 주위에 달콤한 향기가 가득합니다. 스치듯 지나치는 어떤 여인의 익숙한 향기 같은 칡꽃의 향기는 점점 멀어지는군요. 그런데 다가오는 산사나무 열매는 뭔가 색깔이 변하고 있습니다. 연두색이 약간 노르스름한 듯 붉어지는 듯합니다. 특유의 주근깨도 선명해지고 있군요. 커다란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감이 제법 커졌습니다. 햇살을 받으며 단맛을 더하고 있을 듯합니다.
지난봄에 보라색 꽃을 피웠던 꽃창포의 씨앗이 진한 갈색으로 익어가네요. 왠지 진한 커피의 향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보라색의 작은 맥문동 꽃은 피고 또 지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꽃이 진 곳에서는 둥근 씨방이 연두색의 구슬처럼 커가고 있군요. 진한 잎새 사이마다 초록의 보석이 점점 많아지는 듯합니다. 쉬땅나무의 꽃은 거의 지고 씨앗이 진한 갈색으로 익어가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아직도 꽃이 남아있기도 하네요. 어쩌면 올해는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는 듯도 하는 하얀 꽃의 긴 꽃술에서 힘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길게 늘어진 커다란 잎과 붉은색의 줄기에서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습니다. 줄기를 따라 미국 자리공의 초록의 열매가 진한 보라색으로 익어가는 모습에서 다시 계절의 변화를 느껴봅니다.
연못의 비단잉어들도 한가로운 모습입니다. 다들 각자의 화려한 색깔을 뽐내며 유유히 헤엄치고 있습니다. 온통 붉기도 하고, 노랗게 빛나는 듯도 하고, 알록달록 하기도 한 비단잉어들의 몸놀림이 매끈한 느낌입니다. 마치 비단옷을 입고 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부드러운 율동을 보는 듯합니다. 서로 모여서 뭔가 대화를 하는 듯도 하고요. 그런데 연못에는 하늘도 담겨있고 나무들도 담겨있군요.
여름은 여름의 색깔과 멋이 있네요. 이 여름의 색깔들과 소리들을 간직하며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를 들어봅니다. 늦여름의 풍경이 고요하게 흐르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