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날씨가 기분을 상쾌하게 합니다. 비가 오거나 햇살이 환한 날씨도 좋지만 지나치게 습하지도 않고 너무 뜨겁지도 않은 이런 선선한 날씨도 좋습니다.
가까운 야산의 숲길을 걷기로 하는데 어디선가 향긋한 내음이 밀려옵니다. 향기를 따라 가보니 무성한 칡넝쿨과 넓은 초록의 잎 사이로 붉은 꽃들이 여기저기에서 피어납니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듯한 꽃들에서 향기가 가득 날아오는군요. 왠지 여름의 향기 같습니다.
얼마 전에 몇 송이가 피었더니 이제는 이 줄기 저 줄기에서 연달아 피어나는군요. 아마도 지금이 절정인 듯한데 긴 꽃봉오리의 아래쪽부터 점점 피어오르는군요. 길게 늘어진 줄기에도 산뜻하게 피어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분홍과 빨강과 자주색이 섞인 꽃이 멋진 색감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꽃잎의 안쪽이 노란색이군요.
연두색으로 커가는 꽃봉오리, 피어나는 붉은 꽃들 그리고 연두와 초록의 잎이 모여있는 이곳에는 향기도 가득하네요. 칡꽃 가족의 화사한 미소와 함께 진한 향기에 취해봅니다. 그 모습은 사진으로 간직할 수 있지만 향기는 기억 속에 담아 가야겠습니다. 깊게 심호흡을 하며 다시 한번 향기를 맡아봅니다.
바람이 잠잠한 숲 속에는 파리풀의 꽃도 산뜻하게 피어있습니다. 안쪽의 하얀 꽃잎과 바깥쪽의 진한 자주색이 초록의 배경과 멋지게 어울리네요. 그런데 꽃들은 점점 씨앗이 되고 있군요.
안쪽으로 걸어가니 이곳은 싸리나무 마을이네요. 분홍색의 싸리 꽃들이 작은 가지마다 화사하게 피어있습니다. 한 송이, 두 송이 그리고 여러 송이들이 멋지게 어울리며 피어납니다. 어느 붉은 꽃은 산책자의 품으로 날아옵니다. 마치 어떤 향기가 내려앉는 듯합니다.
수풀에서 긴 원통형의 노란 꽃을 만납니다. 긴 원통형의 꽃에서는 향기가 배어 나오는 듯합니다. 그런데 지는 꽃잎의 안쪽에서는 씨방이 커가고 있군요. 올롤 볼록한 씨방들이 제법 크네요. 이름을 알아보니 노란 염주괴불주머니라고 합니다. 괴불주머니는 여인들과 아이들이 한복의 주머니 끈 끝에 차고 다니던 노리개라고 하던데, 염주라는 이름이 추가된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초록의 잎들이 가득한 나무숲에서는 매미소리가 한창입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조금씩 다른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옵니다. 매미에도 여러 종이 있던 것 같은데 여러 가지 소리는 중창단을 생각나게 하는군요. 사랑을 부르는 매미의 노래일까요? 이런 생각을 하며 숲을 내려오는데 이번에는 산새들의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옵니다. 어쩌면 이제 부화한 새끼들이 엄마에게 먹이를 달라고 하는 중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숲 안에는 매미소리와 산새 소리가 가득하네요. 어쩌면 여름의 소리는 생각보다 크고 또 힘차네요.
바위틈에는 초록의 이끼가 촉촉하게 자라고 있고 이름 모를 붉은 버섯도 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햇살이 비치는 숲 속에 노랗게 변한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니 계절이 바뀌고 있는 느낌입니다. 오늘이 입추이니 절기상 가을이 시작되는 것은 맞는 것이겠죠?
여름에 피어나는 꽃들의 향기를 맡고 숲 속에서 울려오는 매미와 산새들의 소리도 들어본 산책길이었습니다. 여름에는 여름의 향기와 여름의 소리가 있군요. 왠지 향기롭고 씩씩하게 자라나는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이제 여름의 향기가 번져오고 여름의 소리가 들려오는 숲 속에서 음악도 한곡 들어봅니다.
초록 나무 위로 흰구름이 흘러가는 파란 하늘을 보며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 중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Ombra mai fu)'를 들으니 더욱 편안해집니다. 소프라노 파트리치아 야네치코바의 달콤한 목소리가 잔잔한 바람을 타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날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