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한달 넘는 시간
고통과 나를 알아가는 그 시간
최근에 새벽녘에 어머니 집에서 화장실을 가다가,
그리 높지 않다 느끼던 높이에 턱에 불을 다 켜놓고도,
넘어졌다.
장애는 단지, 불편함이 아니라 , 걱정해주시던 사고후 지금까지
나를 봐주니는 교수님들이 건넨 말이였다.
다행히 뼈와 인대는 다치지 않고 ,심한 염좌정도 왼쪽 발목,복숭아 뼈
위까지 가지고 있었다.
조심한다고 조심할수 있는게 아니였다.
높이 가늠이 되지 않아, 내려가는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벽에 등을 붙이고 아기가 기어가듯이 내려간다면 불가능도
아니긴 하지만, 평편한 길과 올라가는것 대비 사고시 다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생명을 담보로 할만한 행동이다.
최대한 한주 가량 움직이지 않고, 계속 냉찜질 하고, 온찜질을 하였다.
붓기빠질때 까지는 이겨울에 실내라고 해도, 냉찜질을 하다보니
추웠다.
Small step도 못하고,책도 눈에 안들어오고, 우울함에 쉬이 글도
쓰지 못했다. 이 모든것이 나의 게으름에 핑계라 말해도 나는
할말이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한것은 아니다.
내가 할줄 알지만, 못했던 외국어를 구연동화 수준에 외국 유튜버가
읽어주는 ,영상을 듣고,따라하고 찜질하며, 뭐라도 해보자고
하려는 모습이 걱정 되셨는지, 어머니는 늘 안쓰러워 하셨다.
그렇게 하다보니, 나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장애를 통해, 시각 그중에서도 시야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 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감각에 한부분이 문제가 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시간,에너지 ,돈을 투자해 얻은 지식과 경험은 다행히
남아있다. 후유증을 최소화 하게 정적인 스트레칭 부터 수영을 다시할수
있는 날 까지 꾸준히 만보와 small step,죽밥 프로젝트를 이어가야 하고,
그이후 한발짝 더 나아간 small step과 죽밥 프로젝트를 해냈다는
사실을 근거로, 자존과 자신감을 많이 얻을것 이라 확신한다.
외국어는 언어이고, 그 문화와 사상과 이념에 기반이 된 최고에 인문학
이라고, 여긴다.
나는 그 외국어 실력을 0 부터 다지고 있는중 이다.
시험을 필요한 외국어 라기 보다는, 외국어 자체를 잘하고,
나랑 교류 하는 많은 외국 친구들 에게 예의라는 생각에 시작한 듣기,
따라하기 시각(시야) 장애인 에게 이 이상에 외국어 학습법은 없다고
여겨진다.
나의 외국인 친구들은 한국어를 한마디라도 배우려고 노력을 한다.
나는 그저 영어로 대화할뿐, 그 친구들 국가,문화권에 집약체인
그들에 모국어에 큰 관심을 갖지 않은게 미안했다.
현대,삼성 창립자가 태어난곳이 일제강점기라서, 해외 검색 사이트에
더러, 일본인이 만든 기업 으로 표기한 부분들이 일본해 만큼 많다.
대한민국 정부,외교부 그리고, 해당 기업들은 생각보다 적극적 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사관,영사관도 강제력이 없다는 이유로 정식 항의,정정. 요청을
시도하지 않는 모습에, 일본에 대하여, 특히, 서구권에 가지는 이미지를
애써서 바꾸지 않는것 같다는 질문도 받았던 사실이 빈번하다.
그 앞에서 한국과 일본 관계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북유럽,네덜란드 ,그 주변국들이 도자기 그릇이 유독 유명하고,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국가가 대부분인 이지역에서 도공들을 상당히 대우하고,
관리를 해준다.
누가 보아도 조선시대초,양난 전 도자기 형태에 북유럽권 국가들 특유에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설명은 일본인 도공들이 만들기 시작했고,
그 후손들중 가업을 이어 사는 자들이 많다는 사실 이였다.
더 충격적 인것은 그들에 신분이 노예 였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에서 배운적 없지만,양난 이후, 서구권 노예시장에서 노예
가격이 폭락 했다는 기록을 해외 박물관 에서 접했다.
일본이 임진왜란,정유재란후 메이지 유신까지 조선인 포로들은
그들에게 빨리 현금화 될수 있는 수단 이였고, 순도 높은 금과은을
못 다루던 그들이 금괴,은괴를 만들어 네덜란드 등과 제한적이지만,
꾸준히 교류하고, 부를 창출하고,메이지 유신에
주력인 이들 상당수가 이 영향을 통하여, 정한론을 더 주장하는 형태라,
그들은 보고 있다.
슬펐고, 내 능력은 아무것도 할수 없고, 지난일 이라 치부하기에 아픈
그들에 삶에 일본이란, 단어가 죽어서도 따라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비통했다.
이것 하나, 정정 못하면서, 지식인 이라 스스로 자부했던 나는
그날 이후로, 배움에 갈증이 더 생기는것 같다.
현재 대다수 일본 국민에 대한 혐오는 아니다.
하지만, 제때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은, 국가 수반들과 내각들에 문제라
생각한다. 물론, 화 라는 정신으로 충돌을 피하고, 물려줄게 없어,
업을 물려받는게 당연하다 여기는 그들, 개인적으로 부끄러움과
송구함을 가진 일본인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정치에 무관심 하다. 대한민국 20,30대도 비슷하다.
권불십년 이라 하는데,
3선 이상 이라면, 미래를 책임질 의무가 있는 20,30대 에게 스스로
운명을 선택할 기회를 주는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대통령과 같이 단임제를 할 필요성도 더러 있다고 생각한다.
4,5년 단임으로 정책 실현,그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히 어렵다면,
4년,1번 재임은 적절 하다고 본다.
나는 좌,우 어느쪽도 아닌 ,국민이다.
정치,경제,외교,국방,사법 그리고 입법은 나의 의식주와 직결되었다 확신한다.
나는 지역구 물려준다는 말을 혐오한다. 그것은 아직 우리가 민주주의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발언이다.
그리고. 모두 국민이 선택한 선출직 공직자들 이다.
국민에게 제한된 국가력을 허락받고, 국민에 대표 이다.
그들 스스로도 언행에 있어, 서로 존중할 필요서이 있다고 여긴다.
잘먹고,잘살고 ,공평하지 않아도 최소한 비교적 공정한 경쟁을
만들수 있고,판단하고 ,집행하는 직접적 문제에 대하여,
토의를 하는게 맞다고 여긴다.
비평과 비난에 다름을 모르는 분들이 많다.
선거철이 다가온다는것을 국민들이 느끼지 않고, 꾸준한 위정자
국민이 바라는 위정자에 행동은 그 정도 이다.
자신에 행동에 비평과 ox이분법적 이지 않은 토의가 이루어지는
건강한 환경에 국가를 조성하기를 바란다.
사족이 길었다.
확실한것은 내가 외국인 친구들 에게 예의를 지키는 방법중
큰것은 그들에 언어로 일상생활, 토의 ,협상이 가능할 정도가
되는것 이다.
그리고, 아픈 역사와 현재 관계를 구분 할 필요성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긴다.
다만, 물질적 보상 이전에,진심어린 그들에 사과가 반드시 전제 되어야만 한다.
독일 에서는 나치 그관련. 혹은 인종을 나누는 그자체에 대하여,
심각하게 여기고, 언제든 진지하게 사과할 용기가 있었다.
후손이라는 개인이 아닌, 국가적 진심이 담긴 진정한
사과와 피해에 대한, 복구를 돕는것에 대한 적극성이 필요하다는것 이다.
그것이 아무리,자본주의라 해도, 돈으로 모든것이 청산될 국가적 문제는 아니다.
나는 모난돌,야인으로 누군가들에 고마운 배려와 도움을 통해,
떠들고 다니고 싶다 여긴다.
그래서,더 배우고 싶고, 더 익히고 싶고, 소통하고,토의하여,
협의점을 진지하게 찾고 싶다.
사고전,후
나의 삶의 모양,외형,장애에 대한 태도 변화가 정 반대였고,
앞으로도 나는 감각 하나를 잃은 사실에 힘들어 할것이다.
매일,비현실적이다.
물론, 5분정도 집천장을 빤히 쳐다보고, 인정하고,일상을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현실적으로 생활에서 일반적인 경우도
위험할때가 사실 너무 많다. 그리고, 보이는 부분,정도는 눈뜨면
바로 느껴진다. 후천적으로 장애를 겪는 사람들 대부분, 느끼는 바 라고
나는 여긴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것은 온고지신,실사구시,경세제민,산업보국,교육입국
이란, 신념과 가치관 이다.
나는 어쩌면, 이 시대 실학자,통합가로 살고 싶은가 보다.
장애를 가졌다고 ,못할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기술의 혁신 ,기계의 변화
등이 늘 가르쳐준다. 그리고,온감각으로 느끼게 해준다.
그 변화에 물결에 미흡하지만, 나의 노력들이 잔잔한 의미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랄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