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문 앞에서는 어떤 대답을 내놓아도 프리패스다.
가난을 비하하고 싶진 않지만 가난 때문에 초라해지는 순간을 극복하지 못했다.
8남매.
친척이 보내준 소포에 가득 담긴 옷가지들을 풀어 헤치며 나에게 맞는 옷, 새 옷처럼 보여지는 옷을 찾아야 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 내 옷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옷은 바로 교복.
언니들도 교복을 물려입었지만 왜 나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을까?
입학하고 첫 중간고사 시험을 보고 나자 내가 어디에 속했는지 알게 되었다.
숫자란 그런 것이다.
평가지표.
상위권에서 발견한 나의 이름에 기대감을 가졌다.
여기에 더해 공부가 재미있었으니까.
반의 몇몇친구들은 학원가기 싫다, 공부하기 싫다 투정부렸지만 나는 그런 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이 싫어하는 것을 나는 간절히 원했고
그들이 가고 싶어 하지 않은 곳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이었다.
시험기간에는 공부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새벽녘까지 부엌에 상을 펴고 조용한 시간에 공부하는 나만의 시간. 사각거리는 연필소리만이 가득 채워주는 안정감.
내가 한만큼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그대로 결과가 나오는 시험이 좋았다.
시간이 지나고 3학년이 되자 반 친구들이 진학문제로 이야기할 때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
인문계열로 진학해 공부를 더 할 수 있겠지.
선생님은 내 성적이 아깝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대차게 거절당했고 실업계로 진학했다.
속상했지만 속상한 티를 내지 못했던 건 나를 위해 싸워준 언니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집과 가까운 곳이면 되었다.
그곳으로 나를 보내려고 했지만 언니들이 싸우고, 울고, 욕먹으며 아빠를 막아주며 나의 길을 열어주었다.
아까운 내 성적은 나를 입학하게 될 학교의 학생 대표자리로 올려주었다.
그 소식을 들은 작은아버지께서는 공부를 시키지 않은 아빠에게 쓴소리를 하셨다.
안타까운 마음에 번듯한 교복한벌 사 입으라고 쥐어 주었던 20만원을 아직도 기억한다.
엄마는 나에게서 20만원만 가져간 것이 아니다.
위로를 가져가며 우리의 처지를 돌려주었다.
3년을 내리 입은 교복을 물려 입은 나는 3년을 먼저 헤묵은 사람이 되었다.
블라우스만이라도 구매해주지.
무엇이 아까웠을까.
그날 가장 높은 단상에 올라간 나는 높지 않았다.
가장 낮은 곳에서 모두의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무거웠다.
가난속에서도 가난을 보지 않고 희망을 보는 방법이 나에게 있었을까?
없다.
우리집에서는 공부도 희망이 될 수 없었다.
희망과 어울리지 않는곳.
엄마는 새 교복이 희망이라고 여겼던 것일까?
그 모습을,,, 부모님은 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