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年 中心
지금 떨어지는 나뭇잎으로부터 또 하나의 계절이 왔음을 전해 듣는다. 가을, 그들의 전갈은 생존의 의미와 풍요의 근원을 떠나서도 더 크게 다가온다. 가을은 나뭇잎들로 가리어진 하늘의 공간을 조금씩 할애받는 데서 시작된다. 그 사실만으로도 가을이 오고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마당 넓은 집에는 제법 많은 나무들이 있었다. 여름에는 늘 초록의 세계를 부여받지만 이렇듯 계절이 바뀌어 갈 때면 나뭇잎들이 모체(母體)로부터 이별을 하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그만큼씩 나뭇잎들이 마당에 쌓이기 시작한다. 한 여름 내내 그들이 가졌던 영예도, 황홀의 모습도, 또 그들이 서로 부대끼며 나누었던 언어가 모두 마당에 떨어져 죽은 자의 모습으로 바람에 밀리고 있을 때에는 문득문득 대단한 인생론자가 되기도 한다. 샤르트르, 니체, 까뮈의 가슴으로…
봄, 창문을 열면 목련은 서넛의 보송한 봉오리를 빼놓고는 모두를 활짝 웃고 더러는 성급하게 땅 위에 누워 있는다. 왼편에 있는 라일락이 숱 많은 얼굴에 싸-한 향(香)을 담고 있을 무렵, 창문을 열어 놓고 잠을 청하는 버릇은 라일락의 방문을 받기 위함이었다.
꽃이 피고, 지고 또 다른 꽃이 피고, 사라지는 순환은 늘 바람과 함께 한다. 그들은 바람과 동무하며 시(詩)가 되어서 봄을 살고, 여름을 견디며, 가을에 소멸한다.
무더웠던 여름날이 달력 뒤로 숨어버릴 때, 그들은 무성한 언어로만 곁에 있을 듯이 숱하게 많은 동료들과 밤과 낮을 거듭 겪는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점차 색 바랜 얼굴로 땅 위에서, 나무 끝 가지에서 바람과 얘기하고 있다.
가을이 깊을 무렵엔 그들 모두가 종류를 모르는 일체(一切)의 죽음의 형상으로 마당에 흩어지며, 더러는 긴 골목길을 배회한다. 목련이며, 후박이며, 벚꽃이며, 라일락이며, 장미 하며... 모두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아! 가슴 뿌듯한 그들의 잔존(殘存), 이를 어찌하겠는가.
밤의 고요를 닮은 그들은 지금 바람에 흔들리며 생존의 미(美)를 가르쳐 준다. 그들은 아름다우며, 내일 또 다른 친구들에게 얘기하리라. “어제가 오늘로 이어지듯 우리는 죽음으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며 다시 ‘나’의 모습을 보기 위함이라고....”
그들이 떠남으로 해서 남겨진 이 하늘. 이 작은 공간이 자꾸 넓혀지고 있을 때 문득 지난 계절에 그들이 가져다준 메시지를 생각해 본다. 새로운 후예(後裔)들을 바람으로 보내주는 또 다른 계절이 올 때 나는 무엇이어야 하나?
꽃의 향기와 나뭇잎이 무성했던 계절이 지난 지금, 그들은 줄곧 침묵하고 있으며 그 누구도 새로운 기적을 보이려 하지 않으면서 그저 순리대로 있을 뿐이다. 더러는 그냥 붙어 있을 뿐이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짐멜처럼 이 계절이면 항상 ‘하얀 도망자’가 된다. 모든 걸 비우고 달아나는 까닭으로, 나목(裸木)의 모습으로 도망을 한다. 다시 이 날에 시도하지 않는다면 언제 도망할 수 있을까?
송 부장은 팀이 해체되면서 동료들이 회사를 떠나고, 명예퇴직의 바람이 온 회사를 감싸고 있을 즈음,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여름날의 뜨거운 태양을 닮았던 송 부장은 결국 그 해 가을을 보지 못했다.
중년, 가슴 시리도록 한참 좋은 나이였다.